시아버님 passed away

그곳에서 편히 쉬세요...

by 달님

얼마전까지 계시던 시아버님의 존재가 사라졌다. 시아버님은 이번 해 1월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셨고 동아대학교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한달을 계셨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한달 후 요양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2개월 후 끝끝내 숨을 거두셨다.

옆에 있을때는 모른다. 그 사람의 빈자리를. 상을 치른지 이제 일주일이 지나가고 있지만 슬픔은 너무나도 크고 그 슬픔은 일상에서 조금씩 조금씩 나눠서 드러난다. 평생에 걸쳐 이 슬픔은 그리움, 아쉬움, 살아 있는 자들에 대한 소중함을 상기시킴으로 조금씩 조금씩 무디어져갈 것 같다.

친구의 죽음으로 힘든 학생을 상담할 때,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학생을 상담할 때, 나는 애도 프로세서라는 것을 진행한 적이 있다. 그때는 애도프로세서로 슬픔을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들의 슬픔이 일상에 묻어나온 것일 수 있는데, 계속 슬퍼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슬픔으로 도배되었던 그 날이 바로 내가 상담했던 그 날 일 수 있는데...그때 애도프로세서를 했다니..지금에서야 아차 싶은 생각이 든다.

시아버님에 대한 연민이 컸다. 어머님은 결혼 후 나에게 아버님에 대한 비난을 서슴지 않으셨고 일을 끝내고 돌아온 고단한 내 마음에 무거운 짐을 올려 참담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올때가 많았던 것 같다. 비난의 말을 이리 저리 받아 들이기도 해보고, 이리 저리 돌려보고, 이리저리 해결하고자 하였으나 나의 능력으로는 역부족이었던것 같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 어느 순간 무의식적 학습효과인지 나 또한 어머니에 대한 비난으로 내 마음을 도배질 하고 도배질하다 못해 남편에게도 도배질하는 악순환이 생겨나 결국 난 어머님를 보는 시간을 줄이는 것을 선택했다. 결혼 한 이후 이 집으로 시집온 것이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둠의 그림자가 나에게 드리우는 것 같았고, 그 모든 것의 근원이 어머님의 비난의 습관이라는 생각이 드니 그 원망의 화살을 어머니께 쏘을 수밖에 없었다.

살고자하는 몸부림이 나에게 강했다. 내가 이제 힘들면서까지 그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지쳐가는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닌 듯 했다. 사람과의 관계의 선을 긋고 나를 보호하려는데 안간힘을 다 썼다. 보고 싶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럴수록 더 마음이 편해 지는 것이 아니라 옹졸한 나 자신이 초라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어쩌면 불행의 근원인가? 나를 객관적으로 보고자 노력했지만..노력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냥 물흐르는곳에 내 자신을 맡겼던 적도 있다.

무엇이 나를 이렇듯 옹졸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만들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 답도 없고 우울해지기만 한다. 그래서 이제 내가 원하는 것을 생각해보았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모든것에 감사하며 살고 싶다. 나는 평화롭게 지내고 싶다. 서로에게 서운한 것이 있고 화가 나는 것이 있고 불만족스러운 것이 있지만, 내가 좀 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참고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성숙한 삶을 살고 싶다. 나이가 들면 그에 맞는 옷을 입고 싶다. 상대방이 싫어한다고 말하면 그만 할 줄알고 싶다. 상대방이 지금 시간이 되는지 안되는지 먼저 확인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상대방이 지금 어떤 마음인지 확인하고,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지 적어도 물어보고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렇게 크지 않은 것이다.

아버님은 적어도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한번도 선을 넘어 온 적이 없었다. 감사한 존재였다. 늘 말없이 그 자리에 계셔 주었다. 손자들에게 용돈을 보내주시고, 피자나 치킨과 같은 손자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챙겨주셨다. 내가 좋아하는 막걸리를 명절날 슬그머니 사두시고 꺼내시는 분이었다. 10년간 우리집에 물을 길러주셨다. 내가 필요할 때 전화를 걸어 부탁을 하면 모두 들어주셨다. 우리집 배관도 수리해 주시고 우리집 물 새는 것도 실리콘으로 막아주셨다. 나는 아버님께 큰 신세를 졌고 더 이상 갚을 길이 없다.

아버님이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응급실에 계실 때 나는 시어머님과 함께 병원에 갔다. 어머니는 아주 조그마한 소리로 아버님께 용서를 구하는 듯 했다. 속에서 화가 치밀었다. 20년 이상을 내 앞에서 아버지를 비난하던 그 입이 용서를 구하고 있다. 비로소 의식이 없는 상태의 남편에게,...그 비난으로 괴로웠던 나의 20년의 시간이 분노로 돌변하여 시어머니에 대한 미움이 생겨나고 있다. 아직은 그런 시어머니를 이해하고 싶지 않다. 시어머니로 인해 마음 붙이지 못하고 외로웠을 아버님에 대한 연민으로 매일 눈물이 흐른다. 불쌍한 우리 아버님, 불쌍한 우리 아버님...

주변에서는 말한다. 시어머님이 그래도 막상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허전함이 크실 것이다. 잘 챙겨 드려라. 난 아직 그릇이 크지 못하다. 그러고 싶지 않다. 지금은 아버님에 대한 애도를 더 표하고 싶다. 아버님이 계시지 않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 외로움에 함께 하지 못해 죄송스럽다. 숨을 거두고 가는 길에 손 잡아주지 못하고 혼자 가시게 해서 죄송스럽다. 살아계실 때 더 잘해 드리지 못해 많이 죄송스럽다.

하지만 뿌듯한 것도 있다. 나는 아버님의 유언을 기억했고 아버님이 죽으면 뿌려 달라는 그곳에 가서 아버님의 유해를 정성껏 뿌려드렸다. 아버님의 마지막 말을 지켜드렸다. 이틀 전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이제 아버님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 수 있다. 하지만 아버님은 원하는 곳으로 가셨다. 아버님은 행복해 하실 것 같다. 아버님의 어머니 품과 어머니 옆에서 더 이상 외롭지 않고 행복하게 잠드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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