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변해야겠다.
나는 중년을 넘어 가고 있다. 나의 직장에는 20대, 30대, 40대가 함께 어우려져 일하고 있다. 그들을 보며 20대의 나, 30대의 나, 40대의 내가 오버랩 되는 순간이 있다. 나는 어떤 모습의 선배일까? 웃음이 마냥 나온다.
젊은시절 싫어했던 선배교사를 떠올려본다. 소통과 화합이 되지 않고 편애하며 원리와 원칙을 무시하고 오래 근무했다는 이유로 마치 오래된 관행과 관례가 시대가 변해도 옳은 진리마냥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고 현실에 안주해 있던, 마음속으로 그들의 행태를 증오하였다. 그들과 함께 근무하는 것이 소름 돋도록 싫었고 이상한 사람들의 집합체에 내가 섞여 있는 것 같아 탈출하고자 여러번 시도했고, 지금은 탈출 실패로 여전히 이직장에 머물러 있는 듯 하다.
나는 직장에서 어떻게 정년까지 버티어 나가야 할까? 지금 만족스럽지 않거나 불편한 것은 없다. 다행히도 내가 이제 선배 교사가 되어 있고, 증오하고 싫어하는 행태를 수도 없이 반복하던 그들은 이미 다 떠나고 없는 상태이다.
며칠 전 회의에 참여하였다. 그 회의에서 내가 30대 시절 말하던 바를 말하는 후배교사, 내가 40대 시절 말하던 바를 말하던 후배교사가 있는 것이 아닌가? 반가웠다. 그리고 변화를 주고자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옛날의 나와 오버랩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고, 나 자신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원칙대로 하지 않고 있는 부분을 원칙대로 하자고 하는데도, 나는 반대를 표하고 있었다. 회의중 상대방의 말이 끝나지 않았는데 불쑥 튀어오는 후배교사의 태도도 참을 수 없어 제지하였다. 그리고 나에게 중요한 가치를 꿋꿋이 말하고 나왔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곰곰해 생각해 보았다. 한 직장에서 옮겨다니지 않고 오랫동안 근무하다보니 타성에 젖어 있다는 생각, 편하고 싶다는 생각,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을 나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그 중요함이 시대의 변화로 덜 중요한 부분으로 변화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의식이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등 점점 고인물이 되어 섞어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다음 회의에는 좀 더 들어보고 그들의 의견에 찬성을 표해봐야겠다. 그들을 아무 조건없이 한번 따라가봐야겠다. 그들의 가치와 그들의 생각의 소중함을 느껴봐야겠다. 그토록 주장하고 옳다고 소리쳐도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아 답답했던 그 마음을 후배교사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어쩌면 더 신념을 지키고, 원리원칙에 더 맞는 사고를 하고, 중요한 가치를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들이 아닐까?
후배교사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그 목소리에는 답답함이 묻어났다. “아니 공문에 원칙이 나와 있는데, 원칙대로 하지 않고 비정상적으로 하고 있는 부분을 정상적으로 돌리자고 하는데, 왜 그 부분에 대해 주저하십니까? 참 답답하네요.” 라고 30대의 내가 말하고 있는데, 50대의 나는 “물론 그렇기 하지만 그 방법 보다는 지금의 방법이 더 합리적인 방법이고 더 형평성에 맞는 방법이기 때문에 지금 하는대로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라고 하는 모순적인 상황..헛웃음이 나온다.
변해가는 나는 나이가 드니 이렇다고 할 것인가? 더 살아봐라 당신도 이렇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할 것인가? 난 40대의 후배교사들이 예전에 내가 했던 말을 할 때 신기하기도 하지만 웃음이 나온 적이 많다. 예전의 선배교사가 씩씩거리는 나에게 했던 그 말을 내가 하고 있는 모순적인 상황에서 웃음으로 방어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부터 변해야겠다. 그때의 선배 교사의 답변 대신 그렇게 합시다! 선생님 말이 맞습니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