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화수목금 동안 흙수저처럼 일하고 맞이한 금쪽같은 토요일 아침. 아침 댓바람부터 소고기를 사러 장흥에 다녀오자는 아내의 말은 판타지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로 들릴 만큼 현실적이지 않았다. 게으른 감각은 뇌 속 뉴런들에게 비상사태가 일어났다며 다급히 부르짖었다. 막 잠에서 깬 뉴런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신체계엄령에 준하는 이 상황에 대해 시냅스를 이리저리 뻗어가며 약삭빠른 정보처리 활동을 시작했다.
‘소고기는 동네 마트에서도 판다. 굳이 먼 장흥까지 갈 필요는 없어 보인다.’
‘왕복 130여 km + 왕복 2시간 = 연료 낭비이자 시간 낭비이다. 즉, 기회비용이 너무너무 좋지 않다.’
‘주말에 푹 쉬어 줘야 곧 다가올 월화수목금이란 어마무시한 녀석을 대비할 수 있다. 내 삶은 월화수목금금금이 아니라 월화수목금토일을 원한다.’
나름 만족할 만한 출력값이 나오자 뉴런들도 흐뭇해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아내의 말은 애초에 입력값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넌지시 가르쳐 주었다.
“내일 부활절이라, 성도들 식사 대접용으로 사용할 소고기 사러 가는 거야. 동네 마트에도 소고기는 있지만 날도 날이니 이왕이면 좋은 걸로 사야지.”
뇌 속 뉴런들이 민망해지는 순간이었다. 난 아직도 멀었구나. 지금도 상대방을 깊게 헤아리는 마음이 부족하구나. 그렇게 선량하게 살아가자고 다짐, 또 다짐해 봐도 마음이 실천으로 이어지기는 결코 쉬운 게 아니구나. 신경 세포들은 부끄러움을 못 이겼는지 어느새 자취를 감춰버렸고 뉴런들이 도망친 빈자리는 따스한 감정이 두꺼운 방석을 깔고 자리를 잡았다. 아들내미들을 보따리처럼 챙겨서 우리 가족은 장흥에 있는 정남진토요시장으로 향했다.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향하다 보니 벚꽃 나무에 올망졸망 붙어 있는 꽃망울들이 다음 주에 찾아올 찬란한 개화를 위해 저마다 꽃망울을 터뜨릴 스케줄을 분주하게 짜고 있는 듯했다.
정남진토요시장에 도착했다. 탐진강가에 마련된 주차장에 대충 차를 주차해 놓고 아빠와 엄마, 두 아들 녀석은 시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동안 대형마트가 주는 안락함과 편의성에 중독되었는지 전통 시장은 실로 오랜만에 방문한 것 같았다. 명절 때나 돼서야 본가에 들르는 무심한 자식처럼 익숙한 듯하지만 어색한 기분을 장바구니에 담아 시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구수하고 정겨운 사람 냄새가 시장 여기저기를 채우고 있었다.
불고기용 소고기 쇼핑이 끝나자 우리 가족은 뭔가에 홀린 듯 달콤한 기름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서 좀비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곳엔 갓 튀긴 핫도그가 기름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짐을 들어드리기 위해 시장에 따라가면 어머니께선 어린 짐꾼 노동자의 노고를 치하하며 그날의 수당으로 핫도그를 사주셨다. 쫀득한 튀김옷 깊은 곳에 보물처럼 숨어 있는 빨갛고 통통한 소시지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인생은 살만한 것이라고 여겼었다.
잠시 과거 속 시장 프레임에 한눈을 판 사이, 첫째 아들은 콜팝을, 둘째 아들은 핫도그를 사달라고 졸라대고 있었다. 녀석들이 어린 시절의 나처럼 짐꾼 노동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식을 위한 부모의 애틋한 마음은 나로 하여금 흔쾌히 지갑을 열게 했다. 내가 핫도그 마니아인 걸 아는 아내는 오빠 핫도그는 왜 안 사냐고 의아해했지만, 오늘은 날 위한 핫도그가 필요 없는 날이었다. 작은 손에 핫도그를 쥐고 행복한 미소를 흘리고 있는 둘째 녀석을 보자마자 마음의 배가 불러왔기 때문이리라. 내일 성도들에게 대접할 불고기용 소고기가 봉지 가득 담겨 있는 걸 바라보고 있노라니 벌써부터 마음의 살이 쪄오르는 것만 같다.
남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 준다는 것은, 허기진 마음을 살찌게 합니다. 배불리 잘 먹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