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자, 출석 부릅니다. 강○○, 국□□......"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기 전,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의 한 구절을 비장하게 읊고 나서 출석을부르기 시작했다. 이름 부르기는 여기에서 끝난 게아니다. 난 수업 시간 내내 집요할 정도로 학생들의 이름을 불러대며 아이들을 괴롭힌다.
"종호야. 그만 좀 자라."
"대진아, 오늘 급식 메뉴 뭐냐?"
"숙영이는 국어 성적 많이 올랐더라."
"자, 유연이가 다음 문단부터 읽어 보세요. 목소리 좋네. 아나운서가 꿈이야?"
출처 : 픽사베이
나에게 이름이란 각별한 기억이자 특별한 의미이다.교생 실습을 나갔을 적의일이다. 교생답게모둠별 협동학습 모형으로 수업지도안을 짰고첫 수업 실연이 운명처럼 다가왔다. 어리숙한 교생의 첫 수업 실연은 내 교직 인생 전체의 색채와 질감을 결정하는 터닝포인트였다.
"자, 이제부터 모둠별 발표를 해보겠습니다. 1모둠에선 어디 보자, 숙자 학생이 발표해 보세요."
숙자(가명)의 발표가 끝난 후 2모둠에선 영희(가명)라는 학생을 지목하여 발표를 시켰다. 영희는 수줍게 일어서더니 모둠결과물을 차분한 어조로 조곤조곤 발표했다. 잘했다는 피드백을 짤막하게 남기니 영희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모둠별로 발표 활동을 마무리하고 첫 수업 실연을 무사히 마쳤다.
홀가분한 기분을 기분 좋게 싸매고 교실을 나섰다. 아까 발표를 시켰던 영희라는 학생이 내 뒤를 졸졸 따라오더니 수줍은 기색을 얼굴에 머금고 날 조용히 불러 세웠다. 여고생이 남자 교생 선생님을 좋아하는 일이 간혹 있다는 말을 들었기에 혹시 나에게 부끄러운고백이라도하려나 같은 학원로맨스물의 한 장면을 살짝 기대했다. 하지만 영희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날의 장르를 학원로맨스물이 아닌, 한 편의 애절한 '인간극장'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버렸다.
"교생 선생님, 저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제 이름 불러준 거 오늘이 처음이었어요. 감사합니다."
거짓말 같은 현실을 맞닥뜨렸다. 차라리 장난이었으면 했다. 하지만 영희의 진심 어린 눈빛과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는 모든 것이 진실임을 은연중에 말하고 있었다. 고작 이름을 불러준 게 감사받을 일인가? 영희는 내 가슴속에 하나의 싹을 더 틔우고 교실로 돌아갔다.
"잘했다는 칭찬도 처음 받아봤어요. 고맙습니다."
대략 11년의 세월 동안 영희는 수업 시간에영희였던 적이, 혹은 발표 잘하는 영희였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저 학생 1이거나 학생 A였겠지.백 번 양보해서 영희가 선생님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임을 전제해도 이건 정말 학생 영희에겐 가혹한 현실이 아니었을까.영희와의 만남을 계기로 나는 하나의 신념을 내 머릿속 깊은 곳에 단단히 심어두었다.
'아이들의 소중한 이름을 최대한 많이 불러주자. 그리고 칭찬해 주자."
예전에 즐겨 봤던 드라마 '하얀 거탑' 속엔 이런 장면이 등장한다. 야망으로 똘똘 뭉친, 의료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외과 과장 장준혁은 내연 관계에 있는 희재라는 여성의 바(Bar)에 방문한다. 둘은 지척에서 마주하며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다.
준혁 : 희재야.
희재 : (흐뭇하게 그저 준혁을 응시한다.)
준혁 : (희재의 시선을 느끼고) 왜?
희재 : 이름 불러줘서. 자기 내 이름 잘 안 부르잖아.
준혁 : (기억을 상기하며) 그랬나?
희재 : 이름을 불러준다는 거 흔한 일 같지만 잘 안그런다? 자기도 잘 생각해 봐. 누가 준혁아, 해 주는지. 그 사람이 바로 자길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일 거야. 왜냐면 타이틀이 생기면 그 타이틀이 내가 되잖아. 무슨 무슨 사장님, 무슨 회장님, 장준혁 과장님. 물론 자긴 그 타이틀 때문에 이런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지만 말이야.
준혁 : (말없이 회상에 잠기며 자신을 준혁아,라고 다정하게 부르는 어머니와 최근 갈등 관계에 있는 친구 도영을 떠올린다. 자신의 타이틀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은 어머니와 도영이란 친구밖에 없다.)
-드라마 '하얀 거탑' 속 대화 인용
오래전 드라마이지만 아직까지 이 장면이 선명하게 뇌리에 찍혀 있다. 꽤 인상적인 장면이었고 당시 이 장면을 보고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봤었다. 내게 붙은 타이틀이 아닌, 날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 내 이름을 온전히 불러주는 사람이 과연 내 주변에 얼마나 있을까.
학교 생활을 하며 가끔 연배가 높으신 선생님들은 종종 날 향해 '어이!'라고 부르곤 했다.'어이'란 사람은 여기 없다고, 굳이 '어의'를 찾고 싶다면 허준한테 가 보라고 꼬집고 싶었지만, 어르신들이 쓰시는 관습적인 표현 중의 하나겠지,라고 치부하며 예의 바르게 응대해 줬던 기억이 난다.
이름이란 건 곧 그 존재의 본질이다. 이름 모를 꽃에도 이름을 붙여줘야 꽃이란 존재로 피어나듯이, 사람에게도 이름이란 것이 존재를 완성시켜 준다. 비록동명이인이 많을지라도, 외형적으로 닮은 사람이 수두룩해도80억 인구 중에 나란 존재는 오직 나 '하나'뿐이다. 그만큼 인류 중에서도난특별하고 고유한존재이다.
존재의 방점은 결국 이름이다. 사람들이 링컨의 업적까진 자세히 모를지라도 링컨이라는 이름은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여 영원히 남아있다. 이름은 곧 그 사람의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소중한 이름을 또박또박 불러 드리고 싶습니다.
제 이름을 불러주세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봐주세요. 그대에게 꽃이 되고 싶어요. 호랑이 가죽이 아닌, 제 이름을 그대 가슴속에 남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