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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기 Jun 02. 2024

순한 맛 회전목마

 재량휴업일을 맞이하여 가족과 함께 오랜만에 놀이공원을 찾았다. 솔직히 침대와 한 몸이 되어 OTT와 친구하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았지만, 이날만 손꼽아 기다렸을 아들 1호와 2호를 생각하니 힘들어도 아버지란 이름의 무게를 견뎌야만 했다.


 놀이공원은 한가하다 못해 한산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국가 차원의 재량 휴업일이 아닌 직장 차원의 재량 휴업일이다 보니 남들은 일하고 있는 시간에 우린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유이용권을 끊고 놀이공원과 전세 계약을 맺은 후 오지게 놀이 기구를 탔다. 아들들의 행복한 미소를 보니 노곤한 육체의 피로도 눈 녹듯 풀리는 것 같았다.


 가족과 더불어 이것저것 어지럽게 타다 보니 슬슬 육체는 방전되었다는 신호를 자꾸 보내왔다. 어딘가에 앉아서 쉬고 싶었지만 아직 아들 1호와 2호의 육체 배터리는 도무지 꺼질 기미가 안 보였다. 자꾸 이것도 타고 저것도 타자며 방방거린다. 평소에 별로 쓸 일이 없는 잔머리에게 긴급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잔머리는 오랜만의 호출에 반가워하며 회전목마를 타는 최상책이라고 넌지시 알려줬다. 잔머리의 권유대로 저 멀리 보이는 회전목마 쪽으로 아들들을 유인하기로 했다.


"저기 빙글빙글 말 타러 가자."


 고작 8살, 6살짜리 아들들은 아버지의 음흉한 계략도 모른 채 그저 좋다고 따라온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목마 무리에 우리 가족은 취향껏 말을 골라잡고 제각기 섞였다. 목마는 너르고 푸른 초원을 한없이 질주하고픈 본능을 애써 누르고 우리를 안락하게 실어 날랐다. 일정한 동심원을 그리면서 목마는 천천히 움직였다. 반경을 크게 벗어나는 일도 없었다.  


 어렸을 적엔 그리 타보고 싶어서 부모님을 졸라댔던 회전목마지만, 이젠 지루한 감이 살짝 밀물처럼 밀려왔다. 휴식 차원에서 고른 놀이기구란 걸 감안해도 돈 주고 타기 아깝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들들은 벌써 말과 친구가 되어 신나 하는데 왜 난 재미가 없지?


 언제부터인가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져 그맛을 가장 맛있는 맛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회전목마는 고속 목마가 아니라 그저 동심원을 그리며 천천히 회전하게끔 만들어진 놀이기구이다. 맛으로 따지만 순한 맛 놀이기구인 셈이다.


 회전목마는 자기의 본질에 충실한 맛을 내고 있을 뿐인데 왜 나는 회전목마가 내는 순한 맛을 맛없다느꼈던 거지? 보다 강렬한 맛을 원했으면 바이킹이나 고속 열차를 탔으면 되는 것을.



매운 맛을 좋아한다고 순한 맛을 싫어하진 마. 순한 맛이 있었기에 매운 맛도 존재하는 거야. 세상엔 다양한 맛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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