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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콘텐츠 이야기

영화관과 OTT

by 마살

최근에 와서야 영화관이나 집에서 영화, 드라마 아니면 예능까지 내 인생을 통틀어 영상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갖고 시청하고 있다. 이렇게 된 거 짧은 감상이라도 기록으로 남겨보고자 블로그를 만들고 싶었다. 꼭 영화라고 작성하지 않은 이유는 영화 외에도 드라마나 예능을 기록하기도 할 계획이라서 그렇다. 또 어떤 평가를 하거나 점수를 매기자고 기록하는 것도 아니니 편하게 글을 작성하고 싶다.


시작은 출발 비디오 여행이었다. 그때 소개 되고 있던 영화는 롤러코스터(2013)였고 그 영화를 시작으로 B급 영화에 흥미가 붙은 나는 그런 영화를 몇 개 찾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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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본 영화는 화성침공(1996). 지구에서 잡힌 우주에서 온 어떤 신호로 지구인들은 곧 화성인들이 지구로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구인들은 화성인들이 매우 친화적이며 그들과 함께 교류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그들을 맞이할 성대한 대면식을 준비한다.

하지만 지구인들의 안일한 예상과는 달리 그들은 대면식을 끔찍한 학살의 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지구는 화성인의 엄청난 무기에 대항할 힘이 없었고 화성인들은 손쉽게 지구를(최소한 미국은) 정복한다. 이때 화성인들은 지구인의 희망처럼 호의적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악의적인 모습으로 그려지지도 않았다. 그들이 지구로 온 이유는 우리야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종족과 평화로운 교류를 위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지구에 호감을 가질 것이라는 상상 자체가 지구인의 대책 없는 낭만이라며 비웃기라도 하듯 화성인들은 지구인을 죽이는 것에 어떤 사명감도 갖지 않은 채, 청소를 해나간다.


여기까지 오면서 나는 '그래, 그래서 어떻게 끝낼 건데?' 하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이런 영화들을 많이 본 건 아니지만 볼 때마다 그 마지막이 궁금했다. 이 궁금증은 서사적 궁금증이 아닌 감독에 대한 인간적인 궁금함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세요?

이 B급 SF 영화의 선택은 상당히 동화 같다고 느꼈다. 미국의 군대와 정부는 바보같이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나가는 동안 속수무책이었으나 누구도 그들의 존재조차 몰랐을 한 할머니가 자주 듣는 올드팝송이 그 해답이었다. 화성인들은 그 올드팝송 앞에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갔고 결국 미국은 또 해답을 찾아낸다. 언제나 그랬듯이. 물론 미국이 해낸다는 걸 보여준 것은 아닐 것이다.


화성인에 대한 지구인의 낭만적인 기대는 비웃었지만 그들을 물리친 또 다른 낭만. 너무 작고 사소해서 이게 나의 답이겠나 싶은 순간에 그게 나의 탈출구가 될 수 있다. 나의 로맨틱하고 말랑말랑해서 유약한 삶이 뭉개져 간다면 너무 큰 꿈은 꾸지 말자. 대신 이젠 찾아 듣는 사람도 많이 없는 옛날 노래 하나가 내 삶을 구원해 줄 수도 있다는 걸 믿자.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닐지라도 그가 만들어낸 이 이야기는 지금의 나에게는 이런 감상을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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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에 몇 편의 영화들이 있었지만 사실 가장 얘기하고 싶은 영화는 렌필드다. 원작 영화 드라큘라의 무려 92년 만의 속편임을 강조하면서 공포영화였던 원작과는 다르게 B급 감성을 지닌 스플래터 무비를 지향하고 있다. 낭자하는 피와 터져 나오는 내장들 속에 나르시시스트 드라큘라 백작에게 가스라이팅 당한 렌필드의 탈출기라는 예상 못한 스토리였다. 주제만 보자면 딥하게 파고들 수 있을 것 같지만 영화는 대신 무자비한 액션을 가볍게 보여주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즐겁게 봤으며 고민 없이 영화관을 선택한 것은 잘된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진지하길 기대한 적이 없으니 연기가 시종일관 과장된 드라큘라 백작과 아무렇지 않게 도대체 왜 나타난 건지 모를 갱이 거슬리지 않았다. 렌필드는 드라큘라에게 인간을 조달하며 간접 살인을 저지르는 인물이지만 평생에 걸친 가스라이팅과 죄책감 속에 현대에 와서는 가스라이팅 피해자들의 모임에 나가기도 한다.

그곳에서 용기를 얻은 렌필드는 자신만의 집을 구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이제야 좀 숨통이 트이나 싶다가도 귀신같이 찾아온 드라큘라에 의해 다시 목이 조이고 만다. 그럼에도 저항할 생각도 못하던 렌필드가 진심으로 달라지기를 소망한 순간은 바로 깊게는 아니지만 정을 붙였던 인간들이 그의 눈앞에서 드라큘라에 의해 죽임을 당하던 순간이었다.

너무 뻔하고 진부한 동기부여 같지만 사실 영화에선 이 장면도 그다지 감동적으로 그려내진 않았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본다면 렌필드는 계속해서 싸웠다. 설득도 해보고 사표도 내보고(냈던가?) 일방적으로 사라져도 보지만 드라큘라에 의해 전부 실패했다. 그래도 렌필드는 다시 싸웠다. 지난 몇 백 년간 드라큘라가 자신에게 했던 짓을 또다시 습관처럼 반복하더래도 오늘의 렌필드는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결국 날이 밝고 렌필드는 이겨낸다. 사실 이걸 본 나는 어떤 위로나 용기도 얻을 수는 없었다. 계속해서 얘기했듯 이 영화가 자기의 주제를 깊이 파고들진 않았기 때문에 나도 그만큼 깊이 사유하진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이 영화를 보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그때부터 몇 달이 지난 지금 또다시 이 영화로 이렇게 글을 작성하는 지금까지 내 마음에 렌필드를 위한 welcome 발매트를 마련한 것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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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기록할 콘텐츠는 영화가 아닌 예능이다. 트위터를 뜨겁게 달궜던 넷플릭스 시리즈 사이렌 불의 섬. 사실 사람들 얘기에 나도 끼고 싶어서 시작했다. 이런 서바이벌에 관심도 없었고 특히 연예인이 아닌 사람들이 나오는 콘텐츠는 더더욱 피했기 때문에 이걸 본 게 나조차도 의외였다.

이렇게까지 몰입 잘 되고 내용 흐름이 매끄럽게 이해가 가며 악역 하나 없이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게 가능하구나 하는 사실에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여성들은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땀과 눈물을 흘리는가. 이것도 시청한 지 몇 달이 지났기 때문에 한 편 한 편 감상을 쓰기엔 무리가 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기록해 보겠다.


사실상 하이라이트라고 한다면 소방·운동 연합팀과 군인팀의 기지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각 팀의 직업적 특성이 그렇게까지 잘 보일 수가 없었다. 특히 소방팀 리더의 말대로 자신의 기지를 절대로 비우지 않는 군인팀과 위급상황이 온다면 망설임 없이 뛰쳐나가는 소방팀의 대립이 시리즈 내내 관전 포인트였다. 그리고 그날의 기지 전에서 군인팀이 승부욕에 눈이 멀어 룰을 어기고 제작진이 결국 기지전을 중단한다.

여기서 운동팀은 제작진의 중재를 곧바로 받아들이고 흥분을 빠르게 가라앉히는 모습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마치 시합에서 심판의 말에 자신의 승부를 수긍하는 모습이었다. 운동선수니 누구보다 승부욕을 주체하지 못할 거라 생각한 내 오산이 더해져 굉장히 흥분되고 눈이 번쩍 뜨이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 이후 나의 픽은 운동팀이 되었다. 원래 오타쿠는 알 수 없는 자기만의 포인트에서 과몰입한다.

또 다른 포인트는 이 여성들은 아무런 보상도 없이 죽어라고 노력한다는 점이었다. 오로지 내가 몸담은 이 직업군에 있을 또 다른 여성과 자신의 명예만을 위한 피땀눈물이라는 점이 너무하면서도 그거면 충분하지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던 것 같다. 초반에 탈락해 멀리 떨어진 섬에서 생활하면서도 그들은 다시 돌아갈 순간만을 기대한다. 대신 돌아가기 위해 남을 해코지하지 않고 나를 가다듬는다. 누구 하나를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들이고 모두가 이해가 가는 상황들 뿐이다.


이 시리즈를 통해서 이런 생존 시리즈를 처음 경험했지만 보고 난 감상은 익숙했다. 나는 예전에 프로리그가 있는 스포츠의 어떤 팀을 열성적으로 응원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내가 응원하는 팀이 이기기를 바랐고 다른 팀이 상처받지 않기를 바랐다. 내 팀이 1등이어야 하지만 다른 팀이 지는 것도 가슴 아팠던 답도 없는 낭만가였던 나는 자라서 사이렌 불의 섬을 보며 내가 응원하던 운동팀이 우승한 것에 안도하면서도 이길 수 없었던 다른 팀에 마음이 쓰이는 사람이 되었다.

이 시리즈는 경험적으로 좋았던 것 같다. 처음이라거나 이미 익숙하다거나 하는 것보다는 누군가 인간적인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으면서도 충분히 자극적일 수 있다는 경험. 이 이후로 나올 또 다른 사이렌 시리즈나 사이렌에 영향을 받을 또 다른 시리즈들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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