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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망 Feb 10. 2022

사라진다

에세이

    주말마다 자취방에 와서 지내는 동생이 일요일 저녁 다시 기숙사로 떠나면 갑자기 혼자가 되는 감각이 이상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느껴지는데, 오늘 문득 그게 동생이 사라지는 것 같다는 감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심리학 수업을 들었을 때, 발달 심리학 단원에서 아주 어린아이들은 그 순간 눈에 보이는 것만 존재한다고 믿는다고 배운 적이 있다. 다른 말로 말하면, 눈에 보이지 않으면 사라진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기들한테 '까꿍'을 할 때 웃는 이유는 사라졌던 사람이 다시 나타나고, 다시 사라졌다가 나타나고 하기 때문이라고. 장난감을 보여주고 이불 밑에 넣는 장면까지 보여줘도 아이들은 장난감이 이불 밑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그냥 사라졌다고 생각한다고 배웠다.

    근데 오늘 내가 마치 그 단계에서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한 아이처럼 생각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시야 밖의 것들은 사라진 것처럼, 그 순간에 보이는 것만 보면서 살지는 않는가? 오랫동안 소식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은 마치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나?


    우리 가족은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미국에서 지냈다. 미국에서 1년 반 동안 지내다가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이미 2년 정도 지난 고등학교 1학년 때의 기억이 불과 몇 개월 전 미국에서의 기억보다 또렷했다. 몇 개월 지나지도 않았는데 미국에서의 생활은 너무 멀고 희미한 기억처럼 느껴져서 그게 이상했다.

    대학에 와서 연극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연극을 6번 정도 올렸는데, 올릴 때마다 프로젝트를 같이 하는 팀들과 엄청난 친근감과 동지애를 느꼈다. 나의 모든 신경은 그때 올리는 연극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럴 때면 마치 그 학생 연극이 내 삶의 아주 중요한 것처럼, 연극을 같이 올리는 사람들은 평생의 친구인 것처럼 느꼈다. 하지만 연극이 끝나면 그 감각은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마치 그런 감정을 느낀 적 없었던 듯이, 사람들과 연락도 잘하지 않게 되었다.


    가끔 소식을 모르는, 오래전 알고 지냈던 친구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요즘 모두가 하는 것 같은 SNS를 안 하는 건지, 내가 못 찾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예 소식을 모르는 친구들이 가끔 떠오른다. 중학생 때 쓰던 폴더폰에만 번호가 저장되어 있었던 친구. 학교 밖에서 따로 만나서 놀 정도로 친하진 않았지만 쉬는 시간마다 수다를 떨던 친구들이 있었다. 국카스텐을 좋아하고 엄격한 부모님 몰래 새벽에 셜록과 닥터 후를 보던 친구나, 어울리는 친구 그룹이 달라서 나랑 따로 연락을 하거나 학교 밖에서 만나지는 않지만 쉬는 시간에 기억나지 않는 이유 때문에 계속 붙어 다녔던, 성당에 다녀서 미사 이야기를 자주 해주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들은 가끔 만나거나 인스타그램에서 계속 소식을 접하는 친구들과 달리 중학생 때의 모습 그대로 기억 속에 멈춰있다. 어느새 10년이 지난 지금 어른의 모습으로 세상 어딘가에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상하다. 마치 그 시절에만 존재하던 기억으로 있어야 할 것처럼.


    기억이라는 건 참 이상하다. 시간이라는 것도 참 이상하다. 매 순간이 새로운 게 낯설다. 죽을 만큼 아프고 힘들던 것도, 눈물이 쏟아질 만큼 행복하던 것도, 불타오르는 것 같던 미움과 영원할 것 같던 사랑도 너무 빠르게 지나가버린다. 그 순간은 없어져버리고 남은 것은 지금 이 순간이다. 아니, 남지 않는다. 그냥 계속해서 사라진다. 나타나고, 사라지고, 나타나고, 사라진다. 그 순간을 증명하는 것은 기억밖에 없다. 너무 희미하고 잘 사라지고 잘 변형되는 이상한 기억밖에 없다. 시간이 흐르는 것은 무섭다. 이걸 잘 생각해보면 조금 소름 끼치기도 한다.

    아마 내가 갑자기 모든 것에 이질감을 느끼고 고독감에 휩싸인 이 순간도 순식간에 없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 소름 끼치는 생각도 별거 아닌 듯이 다시 생각되고, '왜 당연한 것을 그렇게 느꼈지'라는 생각이 들겠지.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흐르고, 나는 사라지는 것들을 외면하며 살아가고, 어느 순간 다시 고독이 기어들어오면 이질감을 다시 느낄 것이다.


...


    라고 마무리를 했다가, 글을 처음 쓴 지 한 달 정도 지나서 다시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기록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교양 시간에 배웠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도 시인의 사명이란(나는 시인은 아니지만) 무상한 것들을 글에 담아내서 영원한 것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내가 소설을 좋아하고 연극을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그런 순간을 기록한 것이라서, 순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남는 것이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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