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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잠결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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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피아노쌤 May 16. 2024

"할머니가 자꾸 따라와~" 1편


아~~ 아~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실눈을 뜨니 침대 위 초록색 불빛이 깜빡인다. 손바닥만 한 작은 시계의 숫자가 보인다. 2시 48분이다. 반쯤 뜬눈으로 준석이 자는 왼쪽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본다. 오른쪽으로 몸을 비스듬히 돌려 나랑 마주 보고 있는 아들,  왼쪽 다리 반쯤 접은 상태로 잠들어있다. 숨소리가 고르다. 오늘 밤은 무사히 잠을 자나 보다. 휴우~ 소리 없는 호흡으로 8살 준석의 엉덩이를 두어 번 토닥이며 이내 잠을 청한다. 눈을 감고 다시 자려하니 귓가에 준석이 새근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감은 눈으로 오른손을 뻗어 준석이 이불을 다시 한번 덮어주고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깊이 잠들었는지 꼼짝도 않고 숨소리도 고르다. 얼마 만인가?


오른손 끝에 뭔가 움직임이 느껴지자 반사적으로 실눈을 뜬다. 아이가 몸부림을 치나 보다 하고 어깨를 토닥이는데 손끝이 훌쩍이며 우는 것 같다. 몸을 일으켜 자는 아이 얼굴을 본다. 잠든 아이가 눈물을 흘리며 가볍게 어깨를 들썩이며 잠들어 있다. 또 꿈을 꾸다 싶어 가볍게 준석이 어깨를 흔들어본다. 움찔하더니 몸을 왼쪽 방향으로 돌린다. 어깨를 만지는 느낌이 들었나 보다. 아이의 이마를 쓰다듬으려 하니 땀이 흥건하다. 꿈을 가나 보다. 진땀을 흘리고 있었구나. 머리맡에 두고 자는 30cm 정사각형 작은 수건을 잡으려 손을 뻗는다. 반쯤 뜬눈으로 3시 48분이라는 시계가 눈에 들어온다. 한 시간은 잤나 보다. 


수건으로 아이의 흐른 땀을 닦으며 "우리 진석이 꿈꾸는구나" 혼잣말을 한다. "응 엄마 무서워~" 아이가 대답을 한다. 아이의 대답에 흠칫 놀란다. 


"무서운 꿈이야"  

"자꾸 날 따라와" 희미한 목소리가 또렷하게 귀에 들어온다. 아이를 깨울까 하다가 

"누가 따라와?"  

"할머니가... 외할머니가..." 울먹이는 목소리에 아이를 흔들었다.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볼을 타고 내린다. 

진석이는 부스럭거리며 잠을 깨려 하나보다 몸을 돌려 내 품으로 파고들며 "엄마"를 부른다. 볼에 흐르던 눈물이 반대편으로 흐른다. 들고 있던 작은 수건을 놓고 손바닥으로 눈물을 쓰다듬었다. 촉촉한 눈물이 아직 식지 않은 걸 보니 금방 또 눈물이 흘렀나 보다.


"진석아" 잠에 취한 목소리로 가볍게 불러본다.

"응~~" 잠에 취한 흐릿한 대답이다.

"자니?"

"응"

"깰래?"

"아니"

"또 할머니가 보여"

"응 할머니가 자꾸 따라와~"

"지금도?"

"아니 이젠 안 보여"

"더 잘래~"

"으~응~"

"그럼 자~~"

아이를 가슴으로 당겨 포옥 품에 안고 토닥인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신 지 벌써 4년째다. 진석이가 엄마 꿈을 꾼다고 얘기한 게 벌써 1년이 넘어간다. 가끔 친정엄마를 꿈에서 만나다며 무섭다고 아이가 울면서 말할 땐 "외할머니가 뭐가 무서워~" 그렇게 넘겨버렸다. 그런데 자주 엄마 꿈을 꾼다고 이야기하는 게 뭔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한 건 불과 며칠 전이다.


진땀을 흘리며 허공을 허우적거리고 엄마~라고 부르는 아이를 깨우려다 잠결 대화를 나눈 지 보름 정도 된 것 같다. 잠자는 아이는 질문을 하면 흐릿하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이야길 해준다. 오히려 잠을 깼을 때 보다 더 선명한 대답을 해준다. 


아이의 고른 숨소리에 안심이 되었는데 내가 잠들지 못하고 있다. 병원 상담을 받아볼까? 심리치료? 최면치료? 어디 가서 물어볼까?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안방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린다. 남편이 일어나 화장실을 가나 보다. 아이 방에서 같이 자면서 방문을 반쯤 열어두고 잔다. 반쯤 열린 문으로 남편의 움직임이 들린다. 부스럭거리며 일어나 희미하게 보이는 실루엣으로 남편이 주방으로 걸어가는 게 보인다. 정수기 물을 마시려는지 컵을 찾는 소리 정수기 물을 내리는 소리가 새벽의 고요를 타고 방 안으로 들어온다. 


물을 마신 후 아이 방 문을 연다. 

아들을 안고 누워있는 나를 보고는 "자~" 한마디 한다

"응 자~"

"당신도 자라~"

"응 어서 가 더 자~"

"애는 잘 자지~"

"응~"


남편은 다시 안방으로 돌아간다. 아이가 잠시 꿈꾼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이라도 푹 자야 내일 출근할 테니.

선잠으로 잠을 청하려니 머릿속에 가라앉은 지난날이 떠오른다. 


4년 전이다. 홀로 계신 친정엄마랑 진석이랑 남편이랑 우리 넷이 봄나들이 삼아 경주 불국사를 갔다가 토함산 올라가는 옛길 구불거리는 도로에서 일어난 사고가 떠올랐다. 그날이 아이에게 각인되었는지 늘 피 흘리는 외할머니 꿈을 꾼다고 한다. 할머니가 피를 흘리며 따라온다고 이름을 부르며 따라온다고...


새벽이 밝아온다. 고개를 돌려보니 초록색 불빛 6시 32분이다.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해야겠다. 품에서 아들을 빼고 일어난다. 머리를 두어 번 흔들고 하루를 시작하려 몸을 일으킨다. 핑~ 어지러움이다. 침대 헤드를 잡고 잠시 자세를 고쳐 잡는다. 잠든 아이의 이불을 고쳐 덮어주고 주방으로 향한다. 방문은 반쯤 열어 둔다. 거실로 나와 커튼을 걷으니 세상이 환하다. 하루의 시작이다. 휴~우 오늘도 무사히~ 속으로 기도를 하며 두 손을 모았다 만세를 부르며 기지개를 켠다. 찌뿌둥한 몸이 한결 펴진다. 두 눈을 비비며 잠을 깨우러 화장실로 향한다.





- 1화 상상글쓰기 / 할머니가 자꾸 따라와 - 








                                                                 © grakozy,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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