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교사 13년쯤 되었을 때 과 대표 수업도 여러 번 하고 영어 경시대회에 학생들 입상도 받게 했지만, 입시와 실적 위주의 영어 수업을 하면서 고민도 하며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원하던 교육은 학교에서 행복하고 즐거워야 하는데 나도 안 행복하고 이런 수업은 아닌데... 영어는 내가 아니어도 다른 곳에서 배울 수도 있고... 나는 구 시대 발음과 교육법이네...’ 육아도 힘들지만 나 스스로 교직에서의 보람과 성취감이 줄었다. 미국에서 한 달 연수도 운 좋게 받고 영어과 연수도 부지런히 받았지만 나 자신이 만족할 만한 수업을 못 한다는 우울한 생각이 들었다.
교직 초창기에는 영어 실력이 뛰어난 학생이 빨리 눈에 들어왔지만,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성실하고 심성 착하고 봉사활동 잘 하는 학생들에게 훨씬 호감이 갔다. 사실 그동안 다인수 과밀 학급과 수업 부담에 쫓겨 실제로 일반 학급에는 특수학급에 있지 않을 뿐이지 특별히 교육적 요구가 필요한 학생들이 있다.
학습장애아, 학습부진아, 문제행동아, 부적응아, 영재아, 소외당하는 학생 등 특별히 신체에 뚜렷한 장애가 없지만 사실은 배려해 주고 좀 더 보살펴 주어야 할 학생들이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대구대 특수교육대학원에 입학하여 3년 공부하고 특수교사 자격증을 받고 전과를 신청했지만, 영어교사도 모자란다며 전과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계속 전과 내신을 내며 전과를 포기하였는데, 아이가 고등학교 갈 무렵 운 좋게 특수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어릴 때는 보호와 육아 위주의 돌봄이라면 학창 시절에는 친구 관계가 학교생활에서 가장 중요하다. 스스로 커 갈 수 있도록 독립심을 키워야지만 그러기 위해서 어릴 때부터 가치관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남편은 한 아이만 잘 키우자고 반대하였지만, 나는 관련 책을 읽으며 장애 아이가 있을수록 형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실제로 우리 반 아이들의 형제가 장애 아이에게 도움이 되도록 복지학과, 특수교육과, 간호학과를 간 경우를 많이 보았다.
세 아이를 터울이 있게 띄엄띄엄 낳아서 우스갯소리로
“나는 초등 운동회를 14년 다녔다.”고 농담하였다. 세 아이가 유아에서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으로 커 갈 때 아이가 잘 알아듣던 못 알아듣던 집의 아이들, 특수학급 우리 반 아이들에게 항상 나의 교육 목표를 세뇌(?)시켰다.
첫째, 교육의 최종 목표는 행복(Happiness)이다. 충분히 설명해 주고 나서도 어떤 일이나 공부도 스스로 하기 싫어하면 아이가 행복해하지 않으면 시키지 않았다. 장애 아이라고 특별히 집안일을 안 시키지도 않으며 다른 두 아이들도 똑같이 나누어 일을 하고 용돈도 일을 한 만큼 받았다. 우리 집 가훈과 비록 중고등학생이지만 우리 반 급훈은 똑같다. (어떤 일이나 어떤 순간에도) ‘감사하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것은 너무 즐겁기 때문에 일평생) 배우며, (시간, 물질, 육체적으로 조금이라도 이웃에) 나누자’이다.
하루에 한 번씩 우리 반 아이들이 교실에 오면 표정을 살펴본다. 시무룩하거나 화가 났으면 통합반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침에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서툴더라도 자기표현을 하면 대충 다 알아듣고 아이 말에 일부러 더 흥분하며 맞장구를 치고 통합반 담임선생님께 얘기하겠다고, 엄마한테 얘기하겠다고 하면 대부분 아이들이 “안돼요, 괜찮아요.”하고 스스로 풀어진다.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이야기하거나 우리 반에서 웃으면 그 모습이 사랑스럽다. 하루 종일 앉아서 7교시까지 힘든 수업 받다가, 한 시간은 우리 반에 와서 수업하며 긴장도 풀고 재미나게 웃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
둘째, 시간은 돈이다.(Time is money.)이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 항상 부모님이 너보다 일찍 돌아가시기 때문에 너는 시간을 아껴서 최대한 부모님께, 선생님들께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집 아이들도 모든 일을 9시 전에 과제, 준비물, 학습, 의논할 일을 끝내야 한다고 얘기했다. 9시 이후는 운동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엄마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셋째, ‘독립심’이다. 망원경을 보듯이 멀리서 아이들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기록했다. 부모님들께 알림장도 드리고 아이의 못난 점은 부모님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장점만 보기’이다. 우리 아이들의 특징이 칭찬해 주면 정신없이 잘 한다. 계속 내가 너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며, 자극을 주어 스스로 요구하도록 기다리며 자발적인 학습 동기를 아주 높이 칭찬해 준다. 가능한 선택해서 아이 스스로 공부하고 싶은 것을 이끌어내게 해야만 그 시간의 학습 효과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책 속에 길이 있다’. 옛날부터 교육 환경이 열악한 시골의 아이가, 가난한 집 아이가 성공할 수 있는 것은 독서의 힘이라고 믿는다. 세 아이 모두 4살이 되면 도서관 사서 선생님을 억지로 졸라서 도서 대출증을 만들어 주었다. 과학동아 잡지 두 권까지 합쳐서 매주 17권씩 빌려오는 책의 힘은 크다고 생각한다.
‘도서관은 아이들의 놀이터요 공부방’이어서, 도서관에 아이들을 맡기고 옆 전통시장에 가서 장을 봐오고 참 부지런히도 다녔다. 그 결과 2008년에는 책을 제일 많이 읽어 한국도서관협회에서 주최한 ‘책 읽는 가족’으로 선정되어 상패도 받고 향토문화잡지 ‘안동’ 제121호에 우리 가족이 표지모델로 선정되고 특집 인터뷰도 실리는 행운도 누렸다.
방학 때마다 세 아이의 이름으로 된 책을 만들어 주었는데 사진과 그림으로 만든 그림책도 있고, 도깨비학교에 신청해서 만들어 준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책도 있다. 글짓기 모음집도 있고, 사진집도 있고, 가족 신문도 있다. 책을 읽고 식구들이 함께 만든 독서신문도 있고, 과학에 관심이 많은 막내가 과학 도서를 읽고 만든 과학신문도 있다. 둘째 아이는 독서량도 많고 글쓰기에 소질이 많아 원고 모음집이 많았는데, 입상작만 따로 모아 묶은 것도 있다.
큰 아이 이름으로 된 것이 많은 것은 첫 애이기도 하고, 아픈 아이다 보니 아무래도 신경을 더 많이 쓴 탓이다. 둘째, 셋째를 낳고 세 아이를 기르면서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바쁜 생활에 쫓겨 다른 아이들의 것은 사진도 책도 조금 적어 미안하다.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반 아이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책들이 있고 사진 찍기도 노래방 가기도 좋아한다. 지적으로 많이 부족하지만, 생활연령은 또래들과 많이 비슷하고 감정도 비슷하다. 이성 친구에게 관심도 사랑도 느끼고, 영화도 보고, 홈피도 꾸미고, 친구들에게 문자도 날리고, 페이스 북, 인스타, 프사도 바꾸고 할 것은 다 한다.
영어교사에서 특수교사로 전과 후 처음 수학 수업을 할 때 ‘기탄시리즈’를 계속하다가 내가 지루해서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 우리 반에는 책이 많다. 초등학교용 위인 전기, 전래동화, 세계명작, 세계의 요리, 문화, 음악, 과학실험, 동식물 자연관찰 시리즈 등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가지고 오라고 해서 읽고 말하게 하고, 대화로 주고받고, 느낌을 한 줄이라도 쓰게 하면 국어도 되고 사회, 과학도 저절로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 수준에 맞게 낮추어서 조그만 지식부터 정리해서 단계를 조금씩 높이면 된다. 그 외 나머지 교재들은 거의 보드게임이다. 할리갈리, 피자판, 젠가, 도미노, 빙고, 메모리 게임, 각종 퍼즐 등 교사도 즐거워야 수업이 재미있고, 아이들이 학교에 와서 많이 웃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다섯째, 양육의 최종 목표는 ‘지역사회와 통합’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가족 간의 유대가 끈끈해야 건강한 가족이 많아야만, 지역사회와 통합이 잘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족끼리 체험을 같이 하거나 멀리 해외를 안 가더라도 가까운 곳에 여행을 자주 하는 것이 참 좋다고 생각한다. 다녀와서 앨범을 만들어서 추억을 공유한 경험이 많을수록 그 가족은 회복탄력성이 있고 힘든 시기를 서로 격려하며 잘 이겨낼 수 있다.
지역사회와 통합을 위해 많은 부모와 단체, 특수교사들이 요구하고 정책을 건의하고 있다. 노령인구와 장애인이 많아지면서 복지에 대한 개념과 환경이 많이 바뀌어졌다.
당장에 통합은 힘들더라도 조금씩 지역 사회와 우리 아이들이 잘 융합되도록 지역별로 교통, 주거 인프라가 구축되고, 다양한 직업도 생기고 부모들이 원하는 안정되고 쾌적한 지역사회가 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믿고 있다.
부모 역할을 하면서 특수교육을 하면서, 나에게 항상 삶의 모델이 되고 좌표처럼 기억되는 사람들이 있다. 헬렌켈러는 우리 아이의 삶의 모델이고, 요코는 어머니로서 나의 모델이고 담임인 소노다와 동생 마사쯔꾸는 교사로서 나의 모델이다. 가장 본받고 싶은 사람 지독한 노력파이고 자선사업가인 ‘헬렌켈러’가 한 말은 정말로 명언이다.
“장애가 있다고 해서 불행한 것은 아니다. 다만 불편할 따름이다.”
일본 최초의 자폐 공무원 테츠유키의 어머니 요코가 한 말은 나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이 본인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특수학교나 병원에서 한평생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너무나 괴로운 일입니다. 부모로서 내 아이가 오늘 무엇을 기뻐했고, 무엇을 슬퍼했는지, 오늘 하루 즐거웠는지, 아이가 어떤 기분으로 잠이 드는지 모르는 채 일평생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이를 될 수 있는 한 일반 환경에서 인간답게 성장시키고 싶습니다. 부모로서 절실하게... 절실하게 바라고 있습니다.”
동생이자 스승인 마사쯔꾸가 한 말
“가르쳐 준다는 것은 무조건 다 해주고 돌보아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도록 말없이 기다려주고 용기를 주는 것이다.” 그리고 소노다 담임 선생님의 말씀은 교사로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해 준다.
“아이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릅니다. 각각 개성이 있기 때문에 선생님이 취해야 하는 행동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테츠유키를 학급의 일원으로서 다른 아이와 같이 애정을 쏟았을 뿐입니다. 테츠유키와 같은 아이를 담임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지금 공부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지도하였습니다”
많은 통합학급의 담임 선생님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사십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라’고 링컨이 말했다. 나를 보면 고생 안 해 본 얼굴이라는데, 사연을 다 쓸 수는 없지만, 인생의 희로애락을 받아들이며 여러 고비가 있었다. 그 때 마다 필요에 의해 공부도 하고 자격증을 획득하였다. 1급 정교사(영어), 특수교사. 전문 요가강사. 2급 복지사. 성교육 상담사. 유치원 원장. 최근에는 안전교육 지도사까지 획득하여 정규 수업은 물론 방과 후 교실, 전천후 교사로서 어떤 수업이든 도울 수 있다.
‘배움에는 왕도가 없다.’라고 생각하여 지금도 내 인생에 다가오는 경험과 일을 배우며, 나는 매일 조금씩 자라고 있다. 얼마 후 정년퇴직을 하게 되면 장애 학생이나 우리 문화에 서투른 다문화 학생을 돕고 싶으며 복지사로서 평생교육센터나 마을회관에서 내가 할 일이 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책 탈무드에 있는 구절 ‘가장 현명한 사람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사람이요. 가장 강한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나보다 잘 하는 분야가 있으면, 그 분야에서는 그분은 나의 스승이다. 묻는 것은 잠깐 부끄럽지만, 모르는 것은 평생 부끄러운 일이다. 무슨 일이든 내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은 내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주어진 일. 나의 인생을 향해 열심히 최선을 다해 나의 삶을 꾸려 갈 것이다.
‘신이 우리에게 잠시 맡긴 선물’ 아이가 처음 다가왔을 때의 그 행복과 기쁨처럼... 사이버 공간에서 내 아이디인 ‘늘 처음처럼’ 초심을 잃지 않고 변함없이 감사하고, 배우며, 나누며 삶을 꾸려가고 싶다.
콩나물 시루에 금방 물이 빠지지만 어느 사이에 콩나물이 자라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은 매일 조금씩 손톱만큼 자란다.
“나도 매일 조금씩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