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아 Oct 19. 2024

제12화. 두 번째 멘토, 송성문 선생님!

Q. 송성문 선생님과 인연이 있으신 것으로 아는데어떻게 시작된 인연인가요


  송성문 선생님! 그러면 저에게 키다리 아저씨 같은 분이시지요. 생각해 보니 벌써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이네요. 1978년 제가 고1일 때였어요. 물론 나라 전체도 어려웠지만 그 당시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어려웠어요. 공직에 계시던 아버지께서 사고로 다치시는 바람에 만 4년을 대구 큰 병원에서 입원해 계시고, 어머니는 병간호를 하셔서 집에는 우리들만 있었지요. 고등학교는 장학금 주는 곳으로 진학했지만 서울서 대학 다니던 오빠는 휴학했고 큰언니는 작은언니는 교대. 그때나 지금이나 영어 과목은 중요한 과목이었지요. 저 또한 영어를 잘하고 싶었고, 그 당시 영어 공부하는데 최고의 교재는 성문종합영어였지요. 

영어 공부는 잘하고 싶고 학원이나 과외를 할 형편은 안 되고 해서 혼자서 공부를 했습니다. 성문출판사에서 혼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선생님께서 직접 강의한 테이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성문종합영어 책을 뒤적이다가 책 뒤에 있는 주소를 보고 선생님께 편지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이 편지가 전해질까? 반은 걱정, 반은 기대로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용기가 어디서 생겼는지 모르겠어요. 내용도 자존심은 있어서 제가 꼭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이 은혜를 배로 갚아 드리겠다고 큰 소리를 뻥뻥 쳤지요. 

  얼마 후 송성문 선생님으로부터 짧은 편지와 테이프를 보내 주셨습니다. 

‘학생! 나도 어렵게 공부했으니 꼭 열심히 하여서 원하는 바 뜻을 이루어라’고.. 

그날 우리 형제들은 얼마나 기뻤는지... 지금도 그때의 기분이 생생합니다. 동그란 밥상을 펴놓고 우리 형제들이 저녁마다 공부를 하였지요. 밥상 중앙에 책과 테이프와 녹음기가 항상 있었습니다. 테이프 덕분에 어렵다고 느껴졌던 부분도 이해할 수 있었고, 영어에 자신감이 붙게 되어 참 열심히 영어를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영어 공부를 하기로 하고 사범대학 영어교육과에 입학하여 수석으로 졸업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1985년 3월 1일 교사 첫 발령 날 때도 선생님께서 저에게 축하의 글과 좋은 책 그리고 선생님이 손수 사용하시던 사전도 보내 주셨지요. 그 후 30여 년 동안 스승의 날, 선생님의 생신날에 편지와 선물을 보내며 제가 일방적으로 연락을 하면 선생님은 메일도 없고 폰도 없고 비서실에서는 미국 갔다, 외국 갔다면서 제가 몇 번이나 만나려고 시도를 했지만 번번이 거절하셨지요.      

선생님은 겸손하시고 인품이 고매하신 분이란 것을 저는 알고 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꼭 선생님을 한 번은 뵙고 싶었어요. 무작정 3년 전 겨울 방학하자마자 1월에 선생님을 알게 된 지 30년 되던 해 가족들과 함께 성문출판사를 물어서 무조건 찾아갔지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만남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가끔 씩 편지에 약혼식, 결혼식 사진도 보내고 아이들이 하나씩 태어날 때 사진도 보냈지만 아이들 셋을 데리고 직접 뵈니 더 반갑고 그때 찾아뵈었을 때도 선생님께서 얼마나 반갑게 맞이해 주셨고 저희 아이들에게도 좋은 말씀과 함께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저는 그동안 선생님께서 투병 중이란 것을 몰랐고 미국에서 치료도 받았다고 하셨으며, 그러나 온화한 미소와 낭랑한 목소리로 지하의 수석전시관을 애정 깊게 설명해 주셨고 ‘빛나는 옛 책들’ 고문서와 책들도 안내해 주셨고 새로 나온 영어책들도 설명해 주시며 한 묶음 책들을 선물로 주셨어요. 그 후 선생님께서는 그 해 가을 지병으로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시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에 너무나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언제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위대한 스승님이시지요. 아이들과 선생님께서 영면하고 계시는 파주 묘소에 다녀왔습니다. 잔디가 아직 자리를 잡지도 않았지만... 마음이 아팠습니다. 선생님 보다 많이 모자라지만 선생님의 은혜와 저에게 한없이 베풀어 주신 사랑을 저의 제자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습니다.  

   

Q. 성문 영어와 관련한 이야깃거리가 있을까요?


  제가 81학번인데 그때 졸업정원제가 처음으로 실시되고 본고사가 완전히 없어지며 학력고사가 처음으로 시행되었어요. 원서는 여러 곳에 낼 수 있는데 면접은 한 날 동시에 하니 눈치작전이 치열했지요. 저도 등록금이 저렴한 국립 사범대 두 곳에 원서를 내었는데 한 곳은 너무 경쟁이 세어서 그날 밤에 내려왔는데 실제로 그 대학은 면접 날 미달이 되는 웃지 못할 시절의 이야기도 있었지요. 

  그 당시 영어 공부는 누가 뭐라 해도 성문 종합 시리즈로 했던 것 같아요. 빠르면 고2, 거의 모든 고3 학생들은 성문종합영어로 학력을 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요. 성문기본-성문핵심-성문종합 영어 시리즈 3단계를 마스터해야 영어를 어느 정도 한다고 할 수 있었지요. 다른 영어 학습서에 비해 깊이가 있었고 훨씬 더 체계적으로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 인기가 가히 폭발적이어서 거의 모든 학원이나 과외에서 최고반에서는 성문종합영어를 다루었지요. 두터운 사전을 찾고, 단어장에 정리하고, 외우고 또 외우고 그렇게 어렵게 공부했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부족하고 모자라는 것이 있었지만, 그래도 행복했던 것 같아요. 저는 선생님께서 주신 테이프를 듣고 또 들으며 공부했지요.

  지금 성문 출판사에서 동영상 강의도 무료로 해 주고 자습서도 혼자 공부할 수 있도록 PDF 파일로 올려져 있다고 들었어요. 다시 영어 공부가 하고 싶을 분들은 옛날 자신의 손 때가 묻은 책으로 그 사이트를 이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조금 더 수준 높은 교양영어를 원하신다면 영미명문선은 정말로 주옥같은 문장들이 많아요.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과학, 등 여러 분야의 주요 인물 100인의 짧은 글이지만 교훈도 주고 생각할 거리도 많이 주는 좋은 글들입니다. 외우면 작문할 때도 금상첨화이지요.     


Q. 선생님께서 공부하실 때를 떠올려보면영어와 관련하여 사회 분위기가 어떠했나요? (시기가 어느 때이고영어의 중요성을 뉴스나 신문에서 계속 이야기했다라거나..)


  고등학교는 70년대 후반, 대학은 80년대 초반이니 지금처럼 대학 입시나 취업에 영어가 필수적이었지요. 그리고 우리나라가 한창 경제개발에 몰두할 때이고 수출 증대를 위해 무역을 하고 있으니 문과나 경영 계통은 영어 공부가 아마 더 필수적이었다고 합니다. 대학교 때 신문사의 편집장을 하면서 타과 학생들과 많이 교류가 있었어요. 특히 경영, 무역과 학생들과 타임반 뉴스위크반 등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서 모여서 공부한 기억도 있어요. 회사 승진 시험에서도 영어를 보는 곳이 있다고 들었어요. 영어 자격증이나 관련 점수가 높으면 인사 고과에서 유리하다고 들었어요. 그 당시 영어교육의 초점은 문법이었고 문장의 구조, 즉 문장의 형태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80년대에 접어들면서 해외여행이 자유롭게 되고,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큰 도약을 하다 보니 영어가 더욱 중요하게 되었지요. 기업체에서도 무역이 활발해지니까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채용하고 승진까지 빠르다고 하니, 더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영어를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영어를 잘 못하면 낙오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니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업에서는 아침저녁으로 각 1~2시간씩 영어회화 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는 소식 등이 전해지면서 영어에 대한 열풍이 불기도 하였지요.   

 

Q. 당시 성문 영어 외에도어떤 방법으로 영어를 공부하셨나요?


  저는 과외나 학원 갈 형편이 아니어서 선생님께서 주신 강의 테이프를 듣고 또 들었지요. 그래서 우리 세대들이 말은 잘 못 알아듣지만 문장 보고 독해는 좀 하지요. 지금처럼 원어민 회화는 아예 없었는데 대학 가서는 듣기와 회화가 많이 부족하여 역시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서 공부했어요. 일부러 회화 공부한다며 외국 영화를 보러 가고 영어 연극도 해보고 그 당시 인기 교재는 민병철 조화유 생활영어가 유행이었는데 EBS에서 ‘민병철 생활영어’를 방송하였고 민선생님이 아주 매끄럽게 원어민과 잘 진행하셔서 대학에서도 민병철 생활영어를 교재로 사용하기도 했어요. 후에 외국의 팝 음악이 많이 들어오며 ‘오성식 팝스 잉글리시’도 유행해서 많이 좋아했어요.    

 

Q. 당시의 영어 공부는 왜 하셨고지금의 모습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시나요? Q. 영어교육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처음 영어를 접했을 때 재미있었던 기억이 남아 있어요. 제가 중1이었을 때 영어를 가르쳐 주신 분이 윤인순 선생님이셨는데 미 평화봉사단의 베로니카 선생님이랑 수업에 같이 들어오셨어요. 그 당시 수업이 주로 문법 번역식 수업이었고 시험문제도 대부분 그랬는데 윤선생님께서는 파격적인 수업을 하셨어요. 선생님은 어휘와 말하기를 강조해서 수업을 해 주셨어요. 예를 들어 단어 10개 쓰기 숙제를 내면 꼭 그림을 그리게 하셨어요. smile 쓰고 웃는 그림 strong 하고 역기 드는 그림 이렇게 하도록 했어요. 지금의 해마 학습법이나 연상 단어처럼 가르쳤어요. 웃다가 보면 수업 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갔는지 몰라요. 

  중 고등부터 영어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고, 고 3 때 담임선생님의 영향으로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데 이왕이면 제가 존경하는 송성문 선생님처럼 영어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선생님의 격려 편지와 테이프는 제가 영어 선생님이 되도록 촉매제 역할을 했지요. 그리고 중고등 시절 시험 후 단체 영화를 보면 외화 속의 서양 문물과 풍습. 잡지나 번역된 책들을 통해 알게 되는 새로운 세상, 그런 것들이 더 영어를 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Q. 당시를 떠올려보면지금의 영어를 공부하는 세대와 다른 점은 어떤 점일까요?    

 

지금은 듣고 말하기 중심의 실용 영어가 중심이지요. 하지만 읽고 쓰기도 중요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90년대 중반부터 인터넷 시대에 접하면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이 많아지고 기회도 다양해졌어요. 지인 중에 외국인과 의사소통은 잘 되는 데 토플시험 성적이 잘 안 나와서 고민을 하는 친구가 있어요. 

외국인과 전화로 일단 구두 계약을 하지만 서면으로 구체적으로 계약을 해야 하고 바이어와 깊은 소통을 위해서는 그 사람의 관심사 그 나라의 문화 역사 등 깊은 내용의 이야기가 오간다면 더 계약이 잘 되겠지요. 그리고 지금은 인터넷으로도 소통하고 보고서도 인터넷으로 오가고, 실제로는 쓰기도 중요한 것 같아요. 

    

Q.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책과 가까이하는 교육을 시켜오셨는데영어 공부는 어떤 식으로 지도하는지?


  2008년 여성가족부 주관 책 읽는 가족으로 선정되었는데 운이 좋았고, 그것은 어릴 때부터 책 읽는 습관을 들여주면 커서도 힘들어도 책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고 지혜롭게 잘 이겨낼 것이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어릴 때는 별로 놀 것이 없었고 형제는 많고 부모님은 바쁘고 집에 가면 읽을 책도 별로 없었고 그러나 학교 도서관에 가면 제가 원하는 세계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었어요. 다른 나라의 문물. 이상한 풍습, 멋진 광경, 문학책들은 부모님이 안 계셨지만 제 사춘기 시절을 풍요롭게 해 주었어요. 

학창 시절 읽은 문학책들이 아직도 기억나고 중고등부 시절 교지 편집이나 시화전 한 기억들이 아름답게 기억되어요. 원래 자기 자식은 잘 교육 못 시킨다는 말이 있는데 영어 공부는 유감스럽게도 남편이나 나나 바빠서 별로 잘 못 시켰어요. 아예 체계적으로 회화 학원도 안 보냈고, 방학되면 엄마표로 비디오도 보여주고 영어 동화책도 읽히고 지금 젊은 엄마들처럼 체계적으로 못 했어요. 

  다만 둘째가 외고 갈려고 해서 중3 때 학원을 1년 보냈어요. 그때 어휘가 갑자기 많아져서 어휘 외우도록 단어 카드 만들어서 도와주었어요. 사실 지금도 영어는 자신이 없고 항상 뭔가 부족하고 이제 발음도 촌스러워진 것 같고 그래요.


Q. 영어를 잘하기 위해선 국어를 잘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도 많은데.. 동의하시는지? 만약 그렇다면 어떤 경험에서 그런지?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잘 번역된 책들을 읽으면 감동이 밀려오지요. 그분은 우리나라 말을 잘 이해하니까 그렇게 잘 이해되도록 글을 재 창조한다고 생각합니다. 거꾸로 우리나라 시를 영어로 번역한 것을 보았는데 어떻게 저렇게 맛깔스럽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참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언어라는 것이 일맥상통하는 것이 있어서 국어를 잘해야 다른 언어도 잘하고 실제로 몇 개 국어를 잘하는 분도 보았습니다. 서로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통하여 소중한 만남의 인연을 가르쳐 주시고, 오늘의 내가 있게 해 주신 송 성문 선생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2015년 EBS 다큐프라임 ‘한국인과 영어’ 중에서>

이전 11화 제11화. 첫 번째 멘토, 아버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