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보스'가 마냥 나쁜 건 아니다..?

예민함이 "뾰족함"이 되는 경이로운 순간

by 수빛

나는 세상을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타고나길 예민한 성격이었다.

뭐가 그리 불편했는지 밤만 되면 잠도 안자고 항상 울어대서

부모님께서도 나를 재우느라 애를 먹으셨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작은삼촌 품에만 안기면 세상 차분해졌다고..

(작은삼촌 성격을 가진 남성분과 결혼하라는 뜻일지..ㅎㅎ)



애석하게도 이러한 기질은 성인이 되도록 사라지지 않고 아주 징글징글하게 내 곁에 남아있었다.

카페에서 특정 데시벨 이상의 소음 (ex. 키스킨을 끼지 않은 탁탁탁탁 키보드 소리, 떠드는 소리),

기숙사 2인 1실에서 잠을 청할 때 룸메의 숨소리 내지 코골이 소리 등등

하필 청각과 후각이 극도로 예민하게 발달되어있는 탓에 살면서 크고 작은 마찰을 빚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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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예민하고 싶어서 예민한 것도 아니었기에 이상한 취급을 받을 땐 사실 많이 억울했다.

동시에 상대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아, 그렇다고 층간소음 수준의 갈등이 있었다는 건 아니지만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꽤나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사실 지금도 여전하다. 바뀐 건 없다. 바뀐 게 있다면 내 쪽에서의 해결방안 강구였을 뿐.

상대에게 조용히 하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나 포함 사회 전체적으로 용인될 수 없다면 말하겠지만)

카페에서 용인할 수 없는 수준의 소음은 이어폰을 끼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억지로 일시적 차단을 했고,

룸메 숨소리나 코골이가 거슬릴 땐 이어폰을 끼고 ASMR 영상을 들으며 어렵게 새벽잠을 청하곤 했다.

옛날에는 예민함이 외부로 발현되어 갈등으로 나타났다면, 이제는 어느 정도 내재화를 할 줄 알게 되었다. 즉, 예전보다 더 무뎌졌다는 뜻이다. (사실 '무뎌지려고 노력'하는 게 대부분이지만)



동전도 괜히 양면이 있는게 아닌 것이, 나의 예민함은 불편함과 동시에 강점이자 뾰족함이 되어주었다.

중학교 수학을 배울 때 삼각형 파트를 특히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왜 좋아했던 걸까? 각이 3개 뿐이라?

삼각형 특유의 날렵한 모서리가 세련돼서? 내 과거의 울퉁불퉁한 성격을 대변하는 것 같아 공감돼서?



이유는 정확히 기억 안나도, 성인이 되면서 내 예민함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오히려 남들과의 차별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으로써 발견했다. (예민한 성격이 도덕성의 문제라면

문제 삼아야 마땅하지만 그건 아니었으니까)






첫째, 대학 학점을 한번도 4점대를 놓친 적이 없다.

"엥, 어느 정도 공부 잘하거나 복습 잘하거나 그냥 똑똑하면 누구나 가능한거 아닌가?" 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나는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예민했기에" 시험을 잘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대학 학점의 특정 비중은 알다시피 교수님의 주관적인 평가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내 전공만 해도 그렇다.


나는 내 예민한 성격에 걸맞는 나만의 특별한 원칙을 고수했는데, 1) 항상 수업 앞자리에 앉기, 2) 교수님 눈에 띄기 위한 몸부림(?)으로 질문 많이 하기, 3) 수업 끝나고 나서도 남아서 질문하거나 커리어 내지 일상적인 대화 나누기, 4) 1번부터 3번을 매학기 반복하기. 교수님이 좋아하는 학생의 포인트를 후천적인 학습을 통해 "예민하게" 잘 짚어낸 것.


나도 20대고 젊음이고 청춘인데 수업시간에 딴짓 안하고 싶을리가 없다. 카톡하고 게임하고 싶었던 적이 없지 않았다에 내 지난 6개월 인턴 월급을 걸겠다. 그럼에도 기회비용을 생각했을 때, 지금의 투자가 미래의

수확으로 이어지는 날들을 꿈꾸며 그렇게 대학교 4년을 지내왔다. 그렇다고 내가 공부만 하는 모범생이었냐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대외활동, 공모전, 인턴, 계약직에서 여러 성과들을 전전하며 나름대로

내 "예민함"의 부정적인 면모를 드러내지 않고 잘 살아왔다.



둘째, 공부든, 대외활동이든, 대회든 관심 분야에서 리더 역할을 맡아야 직성이 풀린다.

여러분의 대학생활은 어떠했을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어떤 활동이건 프로젝트이건 항시 리더 역할을

맡아야 직성이 풀렸다. 정확히는 리더 역할을 맡지 않으면 불안했다. 이 또한 나의 예민함에서 비롯된다.


어찌보면 완벽주의자 기질을 내가 가지고 있다. (참고로, 예민함과 완벽주의는 꼭 동의어는 아니다)

어떤 사람은 설렁설렁해도 결과가 잘 나올테지만, 나는 예민한 탓에 내 사고 프로세스와 맞지 않게 흘러가면 잠시 정지 모드가 되면서 일론 머스크의 생각 모드로 전환된다. 어떻게 하면 주어진 상황과 리소스를 가지고 최대한으로 해낼 수 있을까로 머리속이 가득차는 것이다.


그래서 남들이 봤을 때는 "아니 그냥 하면 되는데 왜 행동을 안하지?"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고의 과정을 10여분간 거침으로써 리스크를 대비하고 최종적인 목표에 다다를 수 있는 장기 플랜을 세울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수많은 대외활동과 공모전, 팀플 등에서 거의 항상 수상을 했었다.


맞다, 인정한다. 나는 지독한 성과주의자다. 그러나 요새는 내 예민함을 가시적인, 물질적인 성과보다 내가 세상에 어떠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에 더 집중하고 있다. 인간이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다는 사실은 큰 사이클로 봤을 때는 허무해보이지만 결국 각자의 족적을 남기고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니까.



셋째, 눈치가 빠르고 상황 판단이 재빠르며 남들의 표정과 속마음을 잘 캐치한다.

MBTI 참 오랜만에 꺼내보는 주제인데, 나는 남들이 알아주는 "TTTT"이다.

그럼에도 나는 리액션 장인, 공감 능력이 좋다는 말을 듣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걸까?

어떻게 로봇이란 말을 듣지 않을 수 있는 걸까? 이것 또한 내 예민함 때문이다.


예민한 사람을 나르시스트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있는데, 정확히 말하면 이들은 눈치를 잘 보는 사람이다.

눈치를 잘 본다는 게 소심한 것과는 결을 달리한다. 모든 오감이 외부 자극에 골고루 반응하는 데에서 오는

피로감이 상당한 대신 상황 판단 능력이 좋다는 뜻이다. 즉, 직관이 좋다.


기본적으로 메타인지를 기반으로 한 자기객관화가 잘 되어있고, 남들의 장단점도 빠르게 캐치한다.

그리고 그걸 인지하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상대에게 나만의 언어로 말을 해준다.

나의 경우 처음 만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칭찬 같은 낯간지러운 말도 어렵지 않게 꺼낸다.

여기서 알아두어야 할 건, 내가 하는 모든 말은 사탕 발린 말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란 것이다.

그렇게 어색함과 정적으로 가득했던 수많은 첫 만남들에서 내 "예민함"으로 상황을 누그러뜨렸던 경험은

분명한 강점이다.






아 마지막으로 한가지 짚자면, 예민한 성격은 사람들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내 예민함이 다른 사람의 예민함과 동등할 수 없다. 각자 처한 상황과 기질이 다르기 때문에.

그러나 내 요지는 예민한 성격이 사회에서 지탄받고 소외되어야 하는 사회적인 걸림돌이 아니라

역이용했을 때 한 개인을 넘어서 조직 혹은 사회 전반에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음을 분명히 하고 싶었다.


이 세상 속 많은 "예민러"들이 오늘도 깊은 잠과 휴식을 청하길 바라며,

나도 이만 새벽잠을 청하러 총총 침대로 뛰어가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