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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필 Apr 22. 2024

애비 없이는 못 삽니다

-앱이 없이는 못 삽니다



 어릴 적 할머니는 종종 말씀하셨습니다. 애비 없이는 못 산다고.

요즘 대학 신입생들은 매일매일 생각합니다. 앱이 없이는 못 산다고.


 연세대학교 신입생은 송도 국제캠퍼스에 강제로 모여서 삽니다. 룸메이트는 당연히 자동 배정이 되며 같은 과 학생끼리는 배제된다고 합니다. 저의 딸은 돈과 운이 한 스푼 더 얹혀야 가능한 2인실을 신청하고 당첨 결과를 초초하게 기다렸습니다. 2인실과 3인실의 공간 크기는 같다고 합니다. 같은 공간에 책상, 침대, 옷장이 두 개 혹은 세 개 들어가는 것이죠. 그래서 3인실은 한 명이 이층침대를 써야 하고 모든 공간이 협소합니다. 또 함께 지내야 하는 생판 낯선 친구가 한 명인 것과 두 명인 것은 천지차이이고 무엇보다 씻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여학생들에게 화장실 사용 인원수는 꽤나 민감한 문제입니다. 2인실에 당첨되었다고 기뻐한 것도 잠시, 기숙사 전체가 3인실로 운영될 것이라는 성의 없는 공지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그다음부터는 설사병 걸린 사람이 뒷간 드나들듯 뻔질나게 기숙사앱에 들락날락하더군요. 룸메이트의 정체를 앱을 통해 미리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배정받은 방 호수를 찾아 각자가 존재를 입력하면 서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인 것 같았습니다. 며칠 동안 저의 딸은 웰메이드 스릴러 영화를 보며 범인을 추적하듯 룸메이트에 대해 각종 추리 결과를 쏟아냈습니다. 확인이 아니라 추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기숙사에 입소하는 날까지 배정받은 기숙사 방에 이름을 입력한 학생이 한 명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딸 한 명요.


 대부분 세 명 모두, 최소한 두 명 이상의 정체가 밝혀진 대부분의 방들과 달리 딸의 방은 감감무소식이었습니다. 두 명 모두 막판에 더 좋은 대학에 추가 합격하여 등록을 포기한 건가, 그러면 완전 로또 당첨인 셈인데, 아니지, 혼자 방을 쓰는 것이 꼭 좋기만 한 일일까, 외롭고 무섭지 않을까, 에이 뭐가 무서워, 건물 전체에 학생들이 가득하고 로비에는 지키는 분이 있고 각 방마다 전자보안키가 있는데....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소설을 한 권은 썼을 것입니다.


 후에 적중한 것으로 밝혀진 바, 딸이 제기한 가장 유력한 추리는 '룸메이트가 외국인 학생이다'였습니다. 딸이 다녔던 외고에는 각 반에 두세 명의 외국인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다른 외고에도 그랬겠죠. 그렇다면 그 외국인 학생들 중 상당수가 연세대학교 국제학부에 입학하지 않았을까, 하는 개연성이 충분한 추리였습니다. 그런데 추리는 다시 미궁에 빠졌고 그다음부터는 삼류드라마처럼 개연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추리가 이어졌습니다. 설마 두 명 모두 외국인 학생? 대원외고 나왔다고 외국어 실력을 과대평가하는 건가? 외국인 학생들은 외고 출신 학생들과 룸메이트로 묶어 주는 건가? 아니지, 무작위 배당일 텐데 출신 학교를 어떻게 알고? 두 명의 외국인 친구 사이에서 왕따 되는 거 아니야? 결국 나머지 한 명의 룸메이트는 대학 입학이 전혀 새롭지 않은, 신입생들보다 다섯 살 많은 언니 신입생으로 밝혀졌습니다. 한 명은 외국인 학생이라 기숙사 앱을 몰랐고 한 명은 이미 대학 생활을 충분히 한 터라 룸메이트 따위는 궁금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입학하기도 전에 기숙사앱과 함께 맹활약을 펼친 앱은 시간표앱입니다. 수강신청날에는 당연히 PC방에서 오픈런을 합니다. 그런데 그전에 앱을 통해 미리 담기 해 둔 과목을 조합한 시간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리저리 과목을 바꾸어 가며 시간표의 전체 구성을 재확인할 수도 있죠. 쇼핑앱에서 장바구니에 물건들을 담았다 뺐다 하며 총 결제 금액을 확인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저를 놀라게 한 것은 다른 친구, 심지어 다른 대학에 합격한 친구들의 미리 담기까지 확인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쇼핑앱에서 다른 사람들이 장바구니에 담아 둔 물건을 확인할 수 있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의 시간표가 모두에게 공개되는 전지전능한 앱이더군요.


 어떤 과목을 수강할지 선택할 때는 에타라는 앱의 도움을 받습니다. 에브리타임의 줄임말이라고 하는 것 같더군요. 대학생들의 필수앱이라고 하고 대학 생활의 전반에 대한 조언을 해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강 신청의 기준은 '오직'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학점을 잘 받을 수 있느냐였습니다. 학습량이 적으면서 학점은 잘 주는 수업이 학생들 표현으로 개꿀 수업입니다. 조별 과제가 있는 과목은 기피 대상이더군요.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시간을 맞추는 과정이 번거롭다고 하는데 수요일부터 벌써 기숙사를 탈출하는 엑소더스 행렬이 이어지다 보니 더 그럴 겁니다. 교수님들의 학습량과 학점 사이의 가성비를 계산하는 신입생들에게 진로와의 연관성이나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을 운운했다가는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소리 말라는 핀잔을 듣기 십상입니다. 입학도 하기 전에 약아빠진 학점꾼들이 되는데 학생들이 처하게 될 취업 현장이 살벌하다 보니 뭐라 할 수도 없습니다.


 수강 신청을 하는 요령도 유튜브앱에서 배웁니다. 임영웅 콘서트 티켓팅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하는 법을 알려 주는 영상이 많습니다. 신청할 과목들의 창을 겹치게 촤르르 띄워 두고 양손을 날렵하게 샤샤샥 움직여서 수십 번의 클릭을 잽싸게 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들입니다. 창이 하나씩 닫히며 신청도 완료되는 원리입니다. 저의 딸도 여러 번의 시뮬레이션까지 한 후 익힌 대로 했지만 첫 번째 창만 수강신청이 완료되고 나머지 창들은 모조리 꽝이 되어버렸습니다. 두 시간 이상을 PC방에 앉아 선택되었다가 버려지는 과목을 주워야 했습니다. 물론 어떤 과목을 줍기 전에 에타앱에서 학습량과 학점의 상관관계를 줄곧 확인했지요.


 이밖에도 여러 앱들이 대학 생활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데 라떼를 좋아하는 저는 다 이해조차 못했습니다. 더 기억나는 앱은 야미앱이라고 천 원의 아침밥을 신청하는 앱입니다. 천 원의 아침밥은 정부와 지자체, 대학이 모처럼 훌륭한 협업을 이뤄낸 기특한 결과물입니다. 단돈 천 원으로 육, 칠천 원짜리 학식에 못지않은 밥을 먹을 수 있는데 이것도 앱으로 신청합니다. 오프라인에서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연세대학교 송도 캠퍼스 기숙사는 밥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잠만 제공합니다. 그러니 삼시세끼 밥을 사 먹어야 합니다. 교내 식당에서 학식으로만 두 끼를 먹어도 하루 만 원이 넘어가 한 달 밥값으로 사십만 원 이상 써야 하는 대학생들 입장에선 천 원의 아침밥은 돈을 쓰는 일이 아니라 돈을 버는 일입니다. 저의 딸은 원래 아침을 먹지 않는 터라 호기심에 한 번, 친구가 같이 먹자고 해서 한 번 먹어 보았다고 하는데 만족도가 대단했습니다. 옛말 틀린 거 없다지만 천 원의 아침밥 앞에서 싼 게 비지떡이라는 속담은 틀린 옛말입니다.  


 송도캠퍼스에서 신촌캠퍼스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 신청도 연세포탈이라는 앱으로 합니다. 교수님들, 강사님들도 애용한다고 하네요. 이용하고자 하는 날짜의 이틀 전 오후 두 시에 앱으로 신청해야 하는데 목요일, 금요일은 특히 신청자가 많아 경쟁이 치열합니다. 오후 두 시에 티켓팅하듯 선착순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수업을 듣다가도 많은 학생들이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치열하게 손가락을 움직이는 진풍경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설마 교수님도 그러시지는 않겠죠? 참, 출석 확인도 앱으로 합니다. 이제 교수님이 이름 부르면 음성 변조로 대리 출석하는 일 따위는 원천 봉쇄입니다.


  생각해 보니 원서를 내고 합격을 확인하고 등록금을 내고 기숙사에 들어갈 때까지 학부모인 저에게 종이 한 장이 안 날아왔습니다. 뭐든지 인터넷 세상에서 고지되고 처리됩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앱이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카톡과 인스타그램을 수시로 확인해야 각종 공지사항을 놓치지 않습니다. 학생증도 대부분 모바일로 발급받는데 저는 딸에게 학생증만이라도 실물로 받자고 권했습니다. 얼마 전까지 2G 폰을 썼던 저로서는 모든 학생이 휴대전화로 앱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학사 일정이 진행되는 것이 신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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