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 드레스 코드

by 김진필

그는 남들이 어쩌다 맘먹고 놀러 오는 동네에 산다. 팔자인지 그는 어릴 때부터 그런 동네에 살았다.


그가 태어나서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살았던 동네는 대한민국에서 넘버 투라고 하면 서러울 해수욕장 속에 있었다. 여름이면 골목마다 도매시장에 마구 부려 놓은 과일처럼 시커먼 튜브가 쌓였다. 집 앞 바다 위에서는 보트들의 엔진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여자들의 과장된 깜찍한 비명이 해가 질 때까지 울렸다. 고기를 잡는 그의 부모는 호텔과 모텔에 집어넣고도 남는 관광객들에게 그의 방을 민박으로 내주어 여름 내내 짭짤한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원주민이었다. 촌스럽고 야만스러운 원주민. 문명의 수영복을 입은 관광객들은 늘어진 난닝구와 빤스를 입고 백사장을 달리는 그와 친구들을 신기한 듯 쳐다보며 큭큭 웃었다. 친절한 문명인들은 파라솔 사이사이를 느물느물 돌아다니는 원주민 꼬마들에게 먹을 것도 나눠 주었다. 새카맣게 그을린 원주민 꼬마들은 약간 누런 이빨로 치킨이며 과일이며 빵을 앙 깨물며 웃었고 그러면 문명인들도 기분이 좋은지 덩달아 하하 웃었다. 역사책과 달리 착하고 어리숙한 문명인들은 친절했고 문명인들을 다룰 줄 아는 원주민 꼬마들은 영악했다. 원주민 꼬마들은 문명인들이 떠난 뒤 백사장 모래를 뒤져 동전이며 지폐, 쏠쏠한 노획물을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어릴 적 이야기였다. 원주민 꼬마들도 중학생이 되면 절대로 문명인들 근처에 가지 않았다. 누가 알려 주진 않았지만 쫓아도 쫓아도 징하게 꼬이는 여름날 파리떼와 자신들이 비슷하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 느낌의 정확한 명칭을 그와 친구들 모두 학교 선생님께 배웠다. 국정 교과서를 배우는 전국의 모든 학생이 똑같은 글을 읽고 똑같은 감정을 느껴야 할 때였다. 황순원의 '소나기'를 배울 때 소녀의 흰 얼굴을 떠올리며 소년이 자신의 검은 얼굴이 싫다고 생각하는 구절에서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자, 밑줄 긋고. 열등감! 열등감이라고! 이 부분 되게 중요하다. 시험에 꼭 나온다. 알았나?"


그가 연희동으로 이사하자 당연히 친구들이 한 번씩 놀러 왔다.

"너 보는 김에 연희동도 한 번 구경하자. 연희동에 유명한 데 천지라며?"

막상 만나면 그를 보는 김에 연희동을 구경하는 것인지 연희동을 구경하는 김에 그는 보는 것인지 헷갈렸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두 가지를 다 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는데. 다만 한꺼번에 우르르 와 주면 좀 편할 것 같기는 했다.


어릴 적 원주민들이 바다에 감탄하지 않았듯 연희동 주민인 그는 인스타에서 유명한 밥집이나 카페를 찾아다니지 않는다. 그냥 집을 나서면 온통 바다였듯 그냥 들어가면 다 유명한 집이니까.


이사했던 일요일,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밥 한 끼 먹겠다고 돈가스 식당에 들어섰더니 웨이팅이 있었다. 돌아 나와서 바로 옆집 중국집으로 들어가니 웨이팅 시간이 더 길었다. 앞집도 뒷집도 마찬가지였다. 놀라웠다. 집 근처에서 밥 한 끼 먹기 위해 웨이팅을 해야 한다니. 네 번짼가 다섯 번짼가 하는 밥집에서 포기하고 그도 웨이팅 자리에 앉았다. 이삿짐 정리에 밥때를 놓쳐 배가 무척 고팠지만 도리가 없었다. 그가 받은 표에는 대기 시간 30분이라고 쓰여 있었다. 좀 단축될 가능성은 없는지 가늠하기 위해 그는 웨이팅석에 앉은 이들을 죽 둘러보았다. 아주 익숙한, 어디서 많이 경험했던 느낌이 들었다. 원주민 느낌?


일단 혼자 온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 투명창 너머로 홀 안을 보니 대부분 남녀 커플이었고 여여 커플도 꽤 있었고 가족 단위 손님도 드문드문 있었다. 워낙 배가 고파 어차피 2인분을 시킬 테니 그건 뭐 미안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남남 커플도 없는 곳에서 남자 혼자라는 게 멋쩍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차림새였다. '수질 관리'라고 하나, 클럽에서 사람 가려 입장시키는 것 말이다. 그런 게 있다면 그는 출입이 금지될 법도 했다. 일요일 모처럼 맘먹고 나선 외출이라 그런지 다들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최고로 멋들어진 차림새를 한 것 같았다. 갑자기 그는 자신의 먼지 묻은 츄리닝 무르팍이 유독 튀어나와 보였다. 스포츠 메이커의 까만 슬리퍼도 검정 고무신인 양 이물스러웠다. 어릴 때처럼 화려한 수영복의 물결 속에서 혼자 늘어진 난닝구 빤스를 걸친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렇게 약간 창피했는데 그 뒤에는 생뚱맞게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 손님들의 샤방샤방하고 샤랄랄라 한 시간과 분위기에 그가 구정물을 튀기고 있다는 미안함? 뭐랄까, 지하철을 탔을 때 술 냄새를 폴폴 풍기는 승객이 하필이면 그의 옆에 앉아 그를 일어설까 말까 고민하게 했던 게 생각났달까? 이내 어처구니없는 생각은 떨쳐 버렸지만 그냥 나가서 그의 단골인 김밥천국을 찾아볼까 하는 충동이 강력히 일었다. 하지만 웨이팅 시간이 줄어든 것이 아까웠다. 또 문득 의심이 들기도 했다. 연희동에도 김밥천국이 있을까. 그날 그가 먹은 음식은 외국어로 된 긴 이름이었지만 결국 연어로 덮은 밥과 달걀로 덮은 닭 요리였는데 우와, 깜짝 놀랄 만큼 맛있었다. 웨이팅 한 보람이 있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맛집, 맛집 하는구나 싶었다.


오늘의 방문 친구는 고향 친구다. 그처럼 바닷가 촌놈이다.

"제일 유명한 맛집으로 안내해라! 나도 핫한 연희동 맛집 한번 가 보자.""

그 몰래 입을 맞추고 오는지 친구들의 첫마디는 똑같았다. 두 번째 말이라고 다르지 않을 테다.

"야, 근데 니 복장이 이게 뭐냐? 츄리닝에 쓰레빠, 이렇게 하고 밥 먹으러 가자고?"

" 뭐가 어때서? 우리 맨날 이러고 다니잖아. 그리고 나 집이 바로 요 옆이야."

"야, 여기는 연희동이잖아, 연희동! 여기 사람들 좀 봐라. 저래 고운 처자들 속에서 무릎 쭉 나온 츄리닝 입고 맨발에 쓰레빠 신고 밥 먹고 싶냐? 아이고, 창피한 자식. 우리 쫓겨나는 거 아니야?"

"하, 멍청한 자식. 내 츄리닝하고 쓰레빠보다 너랑 나랑, 남자들끼리 여기 오는 게 젤로 창피한 건 줄은 모르고. 봐, 남자끼리 온 사람들 있냐? 이렇게 입는다고 못 들어가는 거 아니니 빨리 오기나 해. 보나 마나 엄청 기다려야 할걸."


역시 웨이팅이 있었다. 대기석에 앉아 친구가 속살거렸다.

"야, 아무래도 너 너무 튄다. 츄리닝이 뭐냐, 츄리닝이. 거기다 쓰레빠까지."

"얘가 뭘 모르네. 이런 차림이야말로 증거야, 증거. 어쩌다 놀러 오는 사람들 말고 주민이라는 증거. 너 청담동에서 외제차 끌고 다니는 사람들보다 있어 보이는 게 어떤 사람들인 줄 알아? 바로 개 끌고 다니는 사람들이야, 개 끌고 다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거기 사는 거거든. 그런 사람들은 다 츄리닝 입고 다니거든?"

그는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명한 연예인이 한 말을 듣고 무릎을 탁 쳤고 그 후 '청담동'을 '연희동'으로 바꾸어 잘 써먹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가 말했다.

"야, 그런 사람들 츄리닝은 아디다스 아니거든!"




작가의 이전글정치는 아무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