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불망(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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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 사라진 불씨, 이어진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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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고 솔직한 감상문들을 올리고자 합니다. 저의 언어로 되새겨진 이 감동들이, 혹시 다른 독자님의 마음에도 작은 울림이 되어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2025년 12월,김지영(올림)
사라진 불씨, 이어진 향기(감상문)
삶은 어쩌면 능소화처럼 피었다가 스러지는 사계의 기록일 것입니다.
작가 '불망'의 에세이 『사라진 불씨, 이어진 향기』는 바로 그 계절의 끝자락마다 남겨진 시간의 잔향을 더듬는 깊은 울림입니다.
문장을 따라 걷다 보면, 기억이란 그저 과거에 머무는 정체가 아니라, '아직 따뜻한 방'의 온기처럼 현재를 데우는 꺼지지 않는 불씨임을 깨닫게 됩니다.
능소화 핀 오래된 집이 모든 공포를 치유하는 수호신이었듯, 우리 안의 '그리움'은 결코 끝나는 것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내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을 가집니다.
기억의 자리는 단순히 과거를 저장하는 공간이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에 "괜찮아. 아직 따뜻하니까"라고 속삭이는 철학적 위로의 원천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장의 이면에는 필연적인 상처가 따릅니다.
"넌 너무 땅콩같이 작아서 안 돼"라는 냉정한 한 마디는 골목대장이었던 '나'를 세상 앞에 움츠러들게 만든 첫 좌절이었습니다.
코트에 떨어진 눈물과 귓가에 박힌 휘슬 소리는 희망 대신 실패의 낙인을 찍었지만, 그것은 동시에 훗날의 삶을 흔들어 깨울 인생의 첫 휘슬이자, 상처가 나를 빚어내는 가장 단단한 재료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상처는 그렇게 우리 존재의 고유한 설계도가 됩니다.
갈대밭 속 작은 집의 닫힌 '창문' 앞에서 세상의 구원을 간절히 기다리던 어린 날의 나는, 스물의 문턱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의 온기를 만납니다. 불안과 상처를 묵묵히 감내하며 발걸음을 늦춰주던 그의 존재는, 단순한 사랑을 넘어 세상의 벽 앞에서 움츠러들었던 나에게 건넨 깊은 위로였습니다.
계절은 지나갔지만, 그가 남긴 '사랑의 노래'는 여전히 내 안에서 희미하지만 따뜻한 '남은 숨결'로 영원히 흐릅니다.
마찬가지로, 자전거 소년이 열어준 순수했던 '창문의 시간' 역시 닫혔으나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세월 앞에 흐릿해진 약속과 '시절 인연'이라는 단어에 대한 혐오가 찾아왔을지라도, 그 순수했던 순간의 파도와 햇살, 그리고 '돌아온 바람'은 여전히 내 안의 창가를 간지럽히는 영원한 빛으로 머물러 있습니다.
결국 이 모든 서사는 '나'라는 서사를 이루는 불망(不忘)의 조각들입니다.
며칠째 내리는 회색 비처럼 정체되었던 현실 속에서, 우리를 다시 흐르게 하는 힘은 외부의 새로운 동력이 아니라, 능소화의 주홍빛, 코트의 눈물, 사랑의 숨결, 창가의 바람, 이 모든 기억이 품고 있는 '현재의 온기'입니다.
기억은 제자리에서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나를 기다리며, 과거의 모든 조각을 끌어모아
"다시 온 온기"로 현현합니다.
그리움과 상처, 사랑과 이별까지도 온전히 품어 안은 채, 삶이 계속될 것임을 증명하는 가장 아름다운 증표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