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구점에서 우연히 눈에 들어오는 열쇠로 잠긴 핑크색 노트가 있었다. 사이즈는 A5정도였고 각각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기에 어울리는 선들이 있었다. 그 동안 쌓아 놓았던 나의 마음 속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생긴 것 같아 설렜고 빨리 글을 쓰고 싶었다. 봉지로 밀봉 되어 있던 노트를 들고 집에 와서 개봉하여 열쇠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놨다.
‘열쇠가 너무 귀엽네.'
'두 개 나 있으니 한 개는 여기에 두고, 또 다른 한 개는 여기에 둬야겠다.’
꿈 소리로 가득한 달나라가 되어 나는 노트친구를 꺼내며 첫 번 째 글을 쓰기 시작했다. 외로웠던 한국 생활인지라 예전부터 늘 글을 쓰며 노트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래서 새로운 노트 친구에 예전에 썼던
“ 양파짱아지”라는 글을 옮겨 적었다.
-처음으로 담은 양파 짱아지-
여름이라 날씨도 덥고 습도도 높아서 우리 가족 입맛이 떨어졌다. 식구를 위해 뭘 맛있는 것 있을까 생각 했는데 인터넷에서 찾아보니까 여름에는 양파짱아지도 괜찮다고 나왔다. 그래서 나는 양파짱아지 담그기로 했는데 어떻게 담그는지 잘 몰랐다. 다시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서 양파짱아지 담그는 방법을 찾았다. 어떤 사이트에서는 양파를 일주일 동안 식초에 담가야 하고 또 어떤 사이트에서는 식초를 담그지 않고 그냥 바로 담가도 된다고 나왔다.
나는 원래 성격이 급해서 두 번째 방법을 골랐다. 내가 끓인 간장 맛은 괜찮았는데 혹시 양파 때문에 맵고 맛이 없을 까봐 걱정을 많이 했다. 양파하고 마늘은 매운 맛이 있어서 식초에 담그지 않으면 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밖에서 돌아오신 우리 시어머니께 여쭤 봤더니 마늘은 꼭 식초에 담가야 하는데 양파는 별로 맵지 않아서 그냥 바로 담가도 괜찮다고 하셨다.
시어머니 말씀 듣고 나니 내 기분이 조금 좋아졌지만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만약에 내가 담근 양파짱아지가 맛있다면 나중에 더 많이 담가서 우리시누이 한태도 드리고 시숙님한테도 드리고 싶다.
2011년.8월.4일
날씨: 햇빛이 강하게 지고 무더운 날씨
글 한 자씩 한 자씩 쓰면서 너무나 힐링 되었다.
그리고 그 후 2018년 4월4일 나는 노트를 꺼내며 그때의 마음에게 답변을 섰다.
다시 보니 이때는 내 마음이 참 순하고 예뻤구나.
이 어린 내 마음, 순했던 내 마음, 지금 보니 또 다시 나에게 교훈을 주었네.
고마워 2011년 8월 4일의 예쁜 마음아.
지금 내 마음이 무척 부드러워졌구나. 고맙다. 고마워.
2018년 4월 14일
날씨: 비와 쌀쌀함
노트 친구에게 유난히 자주 만났을 때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다녔을 때였다. 당시 나는 스물 여섯 살이었고 대학교 생활이 너무나 치열하고 진흙탕에 빠진 것 만 같았다. 공부하랴, 살림하랴, 그리고 아이를 돌 보랴 여러가지 일들이 파도처럼 몰아쳤다. 무엇 보다 대학교 입학과 미래에 대한 걱정이 가장 앞섰다. 그래서 인지 나는 그때부터 우울증이 걸려버렸다.
-가시 박혀 버린 심정-
힘들고 고달픈 내 마음, 오늘이 더욱 힘들구나.
이유는 무엇인지 누구 때문이지, 누구를 보고 싶은지
우울하기만 하고, 딸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더욱 열심히
해야 하는데 힘들고 고달픈 내 마음은
오늘이 더욱 힘들구나.
중학교 졸업하는 날 축하를 받고 싶은 나
주변에 수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나에게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아
사랑하고 보고픈 내 가족 연락만 하면
마음만 아프니 혼자만 외롭고
쓰고 쓴 내 마음이 오늘이 더욱 힘들구나.
2014년. 2월. 28일
-2014년. 2월. 28일 응답-
이때의 마음은 많이 외로웠구나
지금까지 잘 견뎌냈고 잘 이겨내는 네가 너무 자랑스럽고 대단했어.
중학교 졸업하기 위해 달렸던 내가 정말 많이도 힘들었지.
수고 했어. 고생했어. 앞으로도 잘 이겨내기를.
2018. 4. 20
-고달픈 애 친구-
사랑하는 내 사랑아
날 마다 만나니
질리지 않더냐
늘 따라 다니는 내 사랑아
밤 길을 걷다가도 마주치고
어둡고 어두운 앞길이
달빛이라도 있었으면
2015년.1월.16일
-2015년.1월.16일의 응답-
그래도 이 사랑 덕분에 나는
나는 더 강해지고 더 배우고 고통을 이겨 내는 법을 배울 수 있지.
어쩌보면 이 사랑 덕분에
나는 세상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
어쩌보면 이 사랑이 나의 스승인지도 모르지.
2018년 5월 7일
-화산-
화산아 너는 좋겠다
네 감정을 표현할 줄 알고
네가 보여주지 않아도
사람들은 늘 네 감정을 알고 싶어하니
화산아 좋겠다 너는.
2014.6.8
-그날의 응답-
어쩌 보면 타인의 위로 보다
네가 너 자신에게 해줄 필요가 있지.
네가 너의 자신에게 먼저 관심을 갖고
너의 자신을 사랑해야 할 필요가 있지.
행복이라는 것은 타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오늘은 2014년.6월.8일의 마음을 위로 해주고 싶네.
2018. 4.18
-어두운 마음-
저녁 9:50분 도서관에서
시험 공부를 마치고 나오는 나
하늘을 보니
하늘은 무너질 듯 묵직하고
바람은 뭔가 그리 바쁜지 쌩쌩 가고
하늘은 또 캄캄하고
마치 내 마음처럼
주차장에 주차하고
차에 앉아 혼자서
어두운 차 안에서 아무 말 없이
시들어진 표정으로 밤 하늘을 보니
아니 왜 그리고 캄캄한지
마치 내 마음처럼
2019년. 4월. 23일
저녁 10시 20분 어두운 밤에
생각과 공감력, 그리고 대문자 F 성향을 가진 나는 그저 위로와 공감이 필요했다. 하지만 신께서는 삶의 균형을 위해서 인지 나에게 극도로 대문자 T 성향인 남편과 인연을 맺게 해주셨다. 그리고 내가 만난 한국, 사람들, 우리 시댁 식구들 다 대문자 T이신 분이셨다. 그러다 보니 나의 마음의 병을 치료해줄 수 있는 친구는 열쇠고리 노트뿐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핑크색 열쇠고리 노트는 유일한 나의 친구가 되었다. 힘들 때 마다, 생각이 많아 질 때 마다 나는 늘 노트 친구를 꺼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때로는 미안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점점 치열해지는 삶이 지쳐서, 힘든 속 마음은 노트에게 털어 놓았던 것이었다. 덕분에 성숙해 나가는 자신을 만날 수 있어서 그저 감사했다.
서로 다름을 배워, 한 단계 더 성장하라는 신의 뜻이라 감사하며 자신과 합리화를 하곤 했다. 그리고 진정 된 마음을 또한 노트 친구에게 남겨두었고 앞으로도 남길 것이다.
“ 마음이 더 단단 해지라는 신의 뜻이야.”
“ 서로 다르기에, 그럴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