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찾아오는 봄

수십 번의 코피가 터지는 대학교 생활

by 배움의 빛

봄 날씨였다. 나에게는 봄은 너무나 깊은 의미를 담아 주는 것 같다. 한국에 처음 온 첫날에도 봄이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봄은 설렘과 희망이 가득한 계절이다. 노력 끝에 나는 성인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영어 교육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나는 이제 대학생이 된 아줌마네.”

“ 할 수 있을까? 나의 영어실력은 바닥인데..” 걱정이 앞섰다.


원래 나의 목표는 고등학교까지만 다니고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잘할 수 있으면 돈을 버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겨줄 것이 없다는 남편은 계속 나를 공부시키며 대학교까지 보냈다. 안정된 직장을 다니며 자립할 수 있도록 말이다. 함께 사는 부부가 아니라 나를 키웠던 것과 다름이 없었다.


대학교 생활은 나에게 또 다른 삶을 펼쳐주었다. 나의 학교 생활은 이번에는 어르신이 아닌, 나 보다 어린 20대 청춘들이었다. 성적을 위해 나는 이제 한국 청춘들과 맞싸워 경쟁을 해야 했다.


입학 날이 되자 긴장이 가득한 마음으로 대학교에 들어갔다. 3월이라 새싹들이 세상을 마주하러 준비하고 있었던 시기이다. 내가 한국 땅을 처음 밟았던 첫 날도 4월이어서 그때의 감정이 떠 올랐다. 이제야 내가 큰 나무를 되기 위한 길에 서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에서 열심히 준비해 온 덕분에 다행히 1학년 동안 나는 장학생으로 입학하여 감사하게도 등록금을 내지 않았다.



세월이 너무나 빠르게 달려서 1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던 우리 집은 2학년부터도 나는 장학금을 받아야만 했다. 남편은 강제를 하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부만 해왔던 나여서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 스스로 장학금을 받아내야 한다는 결정을 했다. 엄마가 말씀했던 나의 성질 머리, 이번에도 오기로 대학교 4년 동안 장학금을 받기로 마음먹었다.


대학교 다닌 동안에는 나는 항상 하루에 4~5시간 밖에 잠을 못 잤다. 10시까지 딸을 재우고 그 후 12시까지 시험을 위해 공부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다시 새벽 4시나 5시에 일어나서 수많은 리포트를 작성해야만 했고 교육전공의 교재를 요약하고 피피티를 만들며 한국학생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만 했다.


영어 같은 경우는 나는 사실 여기 와서 A, B, C(알파벳)을 처음으로 배웠다. 독학으로 EBS를 보면서 다른 사람들 보다 백배 이상 더 노력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인지 대학교 다니는 동안에는 일주일 4번 이상은 항상 코피가 터졌다.


1학년, 2학년, 3학년, 4학년 졸업할 때까지 나는 한국 학생들과 경쟁하며 버티고 버텨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리고 한자 수업 시간에 배웠던 고진감래라는 사자성어처럼 2019년 2월에 고생 끝에 나는 장학생으로 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할 수 있었다. 내가 한글과 궁합이 잘 맞았던 것이었다.


이제 다음 단계인 직장 생활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