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과 이별을 하다

칼이 심장의 중앙을 찌르듯 아팠다.

by 배움의 빛

남편의 고향은 나랑 같은 나라 사람들이 많이 와있었다. 당시 그녀들도 나처럼 결혼을 해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중에 내가 사랑했던 두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들은 내가 한국에 와서 알게 되었던 친구들이었다.


나: “여보세요.”

리나(가명): “나, 리나인데, 나도 캄보디아 사람이야.”

나: “어? 그래? 너의 집은 어디야?

리나: “나의 집은 민들레 동이야.”

나: “ 나도 민들레 동이야.”

리나: “대박! 우리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네.” 우리 친구 하자!”

나: “그래”


리나의 목소리는 엄청 에너지가 넘쳤다. 그리고 무엇 보다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했던 친구였다. 나도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가 생겨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 후에 둘이 만나서 같이 카페에 가고, 애기들을 데리고 놀러도 갔다. 리나가 나에게 자신의 친구인 미타(가명)를 소개해줬다. 우리 셋의 우정은 나날이 점점 깊어졌다. 무엇 보다 나는 진심을 다 해서 친구를 너무나 사랑했다.




한국에 온지 몇년이 지난 후 내 또래 여자들은 같은 나라 남자 근로자를 만나서 한국 남편과 이혼을 많이 했을 때였다.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친구와 아는 언니도 모두 애인이 생겼다. 모두 다 같은 나라 사람들이었다.


리나와 미타는 나와의 만남이 점점 줄어들었지만 나에게는 늘 솔직하게 말했다. 그녀들에게는 남편과 나이 차이와 문화 차이 때문에 갈등이 심했다. 늘 울면서 많이 외롭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정서적인 공감을 받지 못해서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외로움을 공감하지만 항상 조금 더 버티자고 했다. 이혼을 하면 아직 초등 2학년인 아이에게는 너무나 깊은 상처를 심어 주기 때문이다. 마음은 아프지만 나는 늘 아이를 우선이었다. 어쩌 보면 나는 그녀들의 외로움을 충분히 위로를 해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미타가 먼저 이혼을 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리나도 남편과 별거했다. 그녀는 집에 나와 혼자서 원룸에서 살았다. 아들은 주말에만 만나기로 합의된 상태였다. 그 후 리나와 미타 그리고 아는 언니는 서로 공감해 주면서 점점 친해졌고, 나와는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


어느 날 리나의 남편이 나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엉엉 울면서 나에게 말했다.


나: “여보세요,”


리나 남편: “별씨, 우리 와이프가 남자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 아들이 나한테 말했어요. 혹시 언제부터 남자가 생겼는지 알아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요즘은 제가 공부하느라 바빠서 잘 안 만나요.”


리나 남편: 혹시 이번 주 토요일 시간 되세요? 제가 너무 힘들어서 잠깐 커피 한잔 하면서 이야기하고 싶어요.”


“음… 네, 돼요.”







사랑했던 친구와 짠했던 그 남편 중간에 낀 나는 고민이 점점 많았고 힘들었다. 나도 문화와 나이 차이가 있는 남편과 살아서 가치관이 다르고 갈등이 심하다는 것은 어느 누구보다 깊이 공감했다. 하지만 엄마로서 아빠로서 역할이 우선이라 외로움을 늘 뒤로 한 채 살아왔다.


어린아이를 두고 부모가 헤어진다는 것은 나는 가장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늘 그녀를 말렸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을 만나서 둘이 잘 해결해 보라고 말했다. 집에 와서 그녀 남편과 했던 이야기들을 그대로 솔직하게 그녀에게 말을 했다.



며칠이 지나 전화 한 통이 왔다.


나: “어 친구야.”


리나: “너 혹시 내 아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 네가 그 사람과 연락하는 사람이니까 그 사람이 내 아들을 데리고 어디로 갔는지 알아?”


나: “나는 모르지, 그리고 나 너의 남편과 연락 안 해. 그때 하도 힘들어하길래 잠깐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준 거고 그 후에 전화 한 통도 안 했는데…”


리나: “네가 그 사람과 친하니까 물어 봐줘.”


나:“아니, 네가 직접 전화해! 너의 부부 문제로 나는 가운데 끼어서 너무 힘들어. "


리나: “ 내가 원룸에 와서 산 이후부터 그 사람이 SNS에 나와 미타, 그리고 주디(가명) 언니의 사진을 올리면서 엄청 욕을 하는 것을 봐왔지? 그런데 너의 사진은 없더라? 그 사람 너를 엄청 좋게 보나 봐.”


나: "사진을 올려서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은 엄청 큰 잘못이야. 그리고 너의 남편이 나의 사진을 안 올리는 이유는 나도 모르지. 나도 공부하랴, 살림을 하랴, 딸을 돌보랴 많이 힘들고, 나도 너처럼 남편과 갈등이 많아. 네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저 둘이 헤어지지 않았으면 해. 아이가 아직 어리잖아. 나도 마찬가지고.”


리나: “그래. 일단 알겠어. 혹시 그 사람이 또 연락이 오면 나한테도 말해줘.”


나: “그래.”


그녀와의 마지막 전화였다. 그 후에는 그녀는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고, 남자친구랑 놀러 다니며 나와 인연을 끊었다. 결국 둘은 이혼했고 미타는 본국으로 다시 돌아갔다. 리나와 주디 언니도 다른 도시로 이사 갔다. 모두 나에게 작별 인사를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너무나 사랑했었다. 나에게는 지워지지 않은 깊은 상처가 되었다. 나는 그녀를 잊기 위해 매일 이 방법 저 방법을 다 시도해봤다. 에일리의 노래인 “보여줄게”를 매일 들으면서 몇 달간 울었다. 하루에 수십 번 말이다.


정말이지 심장이 칼에 찔린 듯이 마음이 아팠다. 그녀가 이혼하고 간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나와의 인연을 끊은 그녀의 태도가 나는 너무나 아팠다. 그리고 그 후에 미타도, 그리고 내가 유일하게 존중하는 주디 언니도 모두 나와 연락을 끊었다.


그 후에 모든 외국인 여성들이 80% 정도가 한국 남편과 이혼하고 같은 나라 사람과 가정을 이루었다. 리나 남편도 리나를 너무나 사랑했었다. 갈등이 있어도 항상 헤어지지 말자며 리나를 붙잡았다. 정서적인 공감의 차이가 두 사이를 갈라놓은 것이었다.


나와 같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모두 서로 만나서 어울리면서 다닌다. 그녀들은 나와 말을 걸지 않았고, 나도 그녀들에게 다가 가기에 겁났다. 그러다 보니 나는 지금까지 친구가 없고 늘 혼자서 묵묵히 견뎌 왔다. 그리고 나의 성격도 점점 내성적으로 변해지면서 사람을 잘 안 만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