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층 천장에서 물이 쏟아진다는 전화를 받은 지 80일이 지났다. 어제 보험사로부터 보험금이 입금됐고, 드디어 모든 게 끝났다. 그간 고생한 나를 위해 파티라도 열고 싶은 심정이다.
<가장 잘한 일, 아래층과 웃으면서 해결했다>
"갑자기 천장에서 물벼락이 쏟아져요."
9월 23일 토요일 저녁, 전화를 받고 아래층에 가보니 거실과 주방사이 천장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고 그 아래 놓인 세숫대야에 물이 반쯤 차 있었다.
"죄송합니다. 최대한 빨리 문제를 찾아서 해결할게요."
작년에 우리 집 천장에도 물이 스민 적이 있다. 주방 천장 벽지가 얼룩덜룩해져서 만져보니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윗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윗집 여자가 찾아왔다. 그녀는 평소 인사를 하면 매번 처음 보는 사람 대하듯 해서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우리 집에는 아무 문제도 없어요. 우리 집 때문에 그런 게 아닌 것 같아요."
"아니, 그럼 이 물이 아래서 거꾸로 타고 올라가기라도 했단 말인가요?"
"전 모르죠."
윗집 여자의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남편이 변호사를 선임하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윗집은 그제야 누수탐지 업체를 불러 싱크대 배관에 문제가 있다는 걸 찾아냈다. 우리 집 천장 도배를 하러 와서는 천장 전체를 하기는 부담스럽다며 일부만 해드리면 안 되겠냐고, 사정 좀 봐달라고 내게 부탁을 했다. 그동안 한 걸 봐서는 다 해주는 게 맞다고 하고 싶었고, 원칙적으로도 티 안 나게 복구해 주는 게 맞다. 하지만 나는 마음이 약해져서 그렇게 하시라고 했다.
이런 경험이 있는 우리는 아래층 어르신의 전화를 받았을 때, 이웃 간에 마음 상하지 않게 빨리 해결해 드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바로 누수탐지 업체를 불러 욕실 온수배관이 터져 물이 새는 걸 찾아냈다. 누수탐지 비용이 대략 얼마인지도 모르고 인터넷을 검색해 부른 업체는 터무니없는 비용을 요구했다. 남편과 오랜 실랑이 끝에 비용을 조금 깎았는데도 비쌌다. 누수탐지는 가격이 정해진 게 아니기 때문에 부르는 게 값이다. 일반적으로 정해진 금액이 있지만, 요즘 많은 사람들이 보험 처리를 하다 보니 일부 업체에서 터무니없는 비용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는 듯하다.
우리 집 욕실 공사가 끝나고, 작은 선물세트를 사들고 아래층을 찾아갔다.
"저희 집 욕실 온수관이 샜더라고요. 공사를 했으니 이제 물은 안 떨어질 거예요. 도배는 천장이 완전히 마른 후에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래요. 천천히 해요."
"곧 있으면 추석인데 천장이 저렇게 보기 흉해서 어떻게 해요?"
"괜찮아요."
한 달이 지났다.
"이제 천장이 다 말랐을 거 같은데, 도배 업체분이랑 내일 찾아갈게요."
"그래요. 돈을 많이 써서 어쩐대."
"괜찮아요. 보험 들었어요. 도배하면 먼지 많이 쌓일 텐데 번거롭게 해 드려서 너무 죄송해요."
"아이고, 괜찮아 괜찮아."
아래층 도배비용은 일상생활배상책임 보험에서 보상이 되기 때문에 부담 없이 아래층 천장 전체를 도배해 드렸다.
보험금 청구를 위해 피해자인 아래층 어르신의 서명을 받아야 했다. 도배가 끝난 뒤, 쿠키를 한 상자 사들고 아래층 벨을 눌렀다.
"도배하면서 불편한 건 없으셨어요?"
"없었어요. 꼼꼼하게 잘 됐어요."
"보험금 청구를 해야 하는데 서류에 서명 좀 부탁드려요."
서명을 받아 돌아가려는데 아래층 어르신이 사과를 싸주셨다. 아래층 어르신은 평소에 층간소음도 다 이해해 주시고, 가끔 길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간식값을 주시곤 해서 너무 감사하고 죄송했다. 이번 일도 이해해 주신 덕분에 기분 좋게 마무리 됐다.
<보험금 청구, 누수사고 보다 더 스트레스받았던 50일>
누수 탐지와 도배를 하면서 쓴 비용은 카드로 결제했다. 겨우겨우 마이너스를 면하며 살고 있는데, 갑자기 카드값 300만 원이 추가로 나오면 마이너스 통장을 써야 한다. 카드값이 나오기 전에 보험금 청구를 서둘렀다.
길어야 일주일이면 받을 거라 생각했던 보험금은 청구한 지 2주가 지났는데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보험금 청구서류를 접수한 직후에 문자로 받은 담당자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요즘 배상 청구 건이 많아서 일이 밀려있으니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또 2주 동안 감감무소식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더니 받지 않아 콜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보험금을 청구한 지 한 달이나 됐는데 아직도 못 받고 있어요."
"죄송합니다. 담당자께 전달해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잠시 후에 담당자한테 전화가 왔다.
"죄송합니다. 다음 주 수요일까지 지급 처리해 드릴게요."
"저도 카드값 때문에 급해서 그래요. 부탁드려요."
다음 주 수요일이 지나가고, 그 주가 다 지나도록 기다렸지만 보험금은 들어오지 않았다. 다음 주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다른 사람이 전화를 받아 담당자가 교육을 받으러 갔다고 했다. 다음 날 다시 전화를 걸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갑자기 상을 당했어요. 이번주 금요일까지 처리해 드릴게요."
"아.. 네. 빨리 부탁드려요."
상을 당했다는 말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얼른 전화를 끊었다. 이번에는 정말 믿고 있었다. 그런데... 보험금은 금요일에도 들어오지 않았고, 결국 카드값은 마이너스 통장으로 막아야 했다.
다음 주 월요일까지 기다렸다가 화요일에 보험사 콜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콜센터로 전화를 거는 것은 민원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하고 싶지 않았다.
"제가 보험금을 청구한 지 두 달이 다 돼가는데 아직도 못 받고 있거든요. 지금 돈 빌려달라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안 주세요? 담당자가 약속한 지급기일도 두 번이나 어겼어요."
"죄송합니다."
"목돈 나갈 일 있을 때 도움받으려고 보험가입하는 거잖아요. 지금 카드값 못 내서 신용불량자 되게 생겼어요."
"죄송합니다."
"일이 밀려서 그렇다고 하는데 인력이 부족하면 충원을 해야지, 왜 무작정 기다리라고만 하는지 이해가 안 되네요. 윗선에다 전달 좀 해주세요."
"죄송합니다. 담당자한테 전달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자꾸만 죄송하다고 하는 콜센터 직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그녀는 죄가 없지 않나.
"상담사님이 죄송할 건 아니고요. 오늘 보험금 꼭 입금해 달라고 전해주세요."
"네, 정말 죄송합니다."
보험사 다니는 지인한테 들은 바로는 요즘 배상책임 관련 청구건이 많아 보험금 지급이 오래 걸린다고 한다. 그건 보험사 내부에서 인원을 충원하던지 시스템을 바꿔서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왜 고객한테 부담을 떠넘기는지 이해가 안 된다.
콜센터와의 통화를 마치고 잠시 후에 담당자한테 전화가 왔다. 누수탐지비용 청구 금액이 너무 커서 일부만 지급한다고 했다. 남편과 내가 각각 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을 가입했기 때문에 자기 부담금이 없어져서 청구한 것과 큰 차이 없는 금액을 받았다. 몇 시간 후에 보험금이 입금됐다.
보험금을 받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스트레스를 받긴 했지만,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여유 있게 웃을 수 있었던 건 보험을 들어둔 덕분이다. 가끔은 보험료만 내고 보험금 받을 일은 없다고 투덜거렸는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아무 일 없는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