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 지내니?
일 년에 두어 번 만나는 친구의 안부가 궁금해 카톡을 보냈는데 답이 없다. 저녁 늦은 시간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미안, 아까 너무 바빠서 연락을 못했어."
"이제 퇴근하는 거야?"
"응, 별일 없지?"
"나야 뭐. 너도 별일 없지?"
별일 아닌 이야기를 나누며 30분 이상 통화를 했다.
"연말인데 우리 만나야지."
"그래, 다음 주 금요일 어때?"
"좋아."
시간이 흘러 다음 주 수요일이 됐다. 나는 친구의 전화를 기다린다. 갑자기 출장을 가게 됐다거나, 갑자기 감기에 걸렸다거나 하는 이유로 그녀가 약속을 취소해 주기를 기다린다. 그녀에게 연락이 오지 않으면 찾는다. 내가 나가지 못할 핑곗거리를.
시간이 흘러 다음 주 금요일이 됐다. 친구에게서도 연락이 없고, 나도 마땅한 핑곗거리를 찾지 못했다. 몸은 점점 무거워지고, 점심시간이 지날 때쯤 '오늘 약속 잊은 거 아니지?'라는 마음과 다른 카톡을 보내려다 말았다. 오후 네시가 넘도록 친구에게 연락이 없다. 약속을 잊었거나 나오기 싫은가 보다. 다행이다.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그래도 불금인데 좀 쓸쓸한 마음이 들어 혼자 맥주를 마셨다. 씻고 텔레비전 앞에 누워 있는데 친구한테 카톡이 왔다.
- 우리 오늘 만나기로 한 날이었잖아! 나 지금 막 씻고 누웠는데 생각났어.
- ㅋㅋ 난 알고 있었는데 몸이 안 좋아서 연락 안 했어.
- 왜? 어디 아파?
- 그냥 생리통.
- 연락하지.
- 다음에 보면 되지.
- 그럼 다다음주 금요일 어때?
- 그래, 좋아.
아마 나는 다다음주에도 친구의 연락을 기다릴 것이다. 출장을 가게 됐거나 감기에 걸렸다는.
친구랑 카톡이나 전화 통화를 할 때는 정말 반갑고 보고 싶어 약속을 잡는다.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즐겁다. 그런데 만나러 나가기 전에는 나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 나의 이런 이상한 증상은 꽤 오래됐고, 그 친구한테만 그런 것도 아니다.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번거롭게 느껴진다.
주변에 사람이 많은 사람이 부러웠고, 되도록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려 애썼다. 그런데 몇 해 전에 지인들과 만나 정말 즐겁게 웃고 떠들고 돌아와서 이유 없이 짜증이 났던 날이 있다. 내가 왜 그렇게 짜증이 나는지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그 자리가 내게 즐겁지만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 속에 자연스럽게 섞이기 위해 듣기 싫은 말을 들으며 웃고, 마음과는 다른 말을 하기도 하며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요즘은 지인이라고 할만한 사람들과는 연락을 하지 않는다.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오래된 인연 몇 명과 가끔 연락을 주고받고, 아주 가끔 만난다. 집에서 혼잣말을 할 만큼 외로워도 굳이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 않다. 혼자 있는 시간이 가장 편안하다. 아직 정말, 확실한 혼자가 된 적은 없어서일지도 모르지만.
남편이 가끔 내게 말한다.
"자기야, 나는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좋아."
"응, 나도. 나도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아."
"뭐야?"
"농담. 하하."
사실, 진심이다. 아무리 편한 사람도 나만큼 편하지는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