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이 일 해서 얼마나 버냐?"
그 친구가 이 말만 안 했어도 손절까지는 안 했을 것이다. 너 왜 이렇게 변해버린 거니...
내가 태어나 일곱 살까지 살던 할머니댁은 마을에 집이 몇 채 없는 시골마을이었다. 앞집에는 아버지의 친구가 살았고 그의 딸이 나와 나이가 같았다. 그 애는 내 어린 시절의 유일한 친구였다. 그 친구는 피부가 검고 키가 크고 남자애처럼 놀았다.
나는 그 친구를 따라 들로 밭으로 뛰어다녔다. 들에서 메뚜기를 잡기도 했고 아무 밭이나 가서 참외를 따먹다가 붙잡혀서 엉엉 울기도 했다. 하루는 길가에 불이 피워져 있고 그 위에 뱀이 한 마리 던져져 있었다. 나는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징그러워 피했는데 친구는 막대기를 들고 다가가 검게 그을린 뱀의 피부를 들춰내고 살을 발라 맛을 봤다.
우리는 '농번기 유아 탁아소'라는, 유치원 비슷한 곳도 함께 다녔다. 거기서 한글을 배웠고, 엄마들이 돌아가면서 간식을 만들어왔다. 우리 엄마와 친구엄마가 함께 술빵을 만들어왔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열린 문틈에 손을 넣었는데 그 친구가 아무 생각 없이 닫아 버려서 울면서 집으로 돌아오니, 할머니가 손가락에 된장을 발라주셨던 기억도 난다.
나는 초등학교 입학 전에 서울로 이사를 했지만 방학 때마다 할머니댁에서 살다시피 했다. 친구는 예쁜 머리핀을 사두고 나를 기다리기도 했다. 짧은 머리의 그 친구는 꽂을 일이 없는 리본핀이었다. 친구는 달리기를 잘해 중학교 때까지 육상을 하다가 고등학교 때 조정선수가 되었다. 우리는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편지를 주고받고 생일이면 선물을 주고받기도 했다.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간 계속 운동을 했다. 그리고 같이 운동하던 남자와 결혼을 했다. 남자는 운동을 그만두고 공장에 취직을 했다. 그리고 얼마 뒤에 친구는 아이를 낳았다.
한동안 연락이 뜸하던 친구가 자주 연락을 했다. 남편이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다쳤는데 돈을 못 벌어서 짜증이 난다고 했다. 그들의 결혼 전에 내가 본 모습에서 둘이 많이 사랑한다고 느꼈었는데, 친구의 변화가 거북하게 느껴졌다.
친구가 암웨이를 시작했다. 순수했던 내 친구는 이제야 돈의 중요성을 깨닫고 또 순수하게 거기에 매달리고 있었다. 이제 친구는 내가 보고 싶어서 나를 찾는 게 아니라 암웨이 얘기를 하려고 나를 찾는 것처럼 보였다. 괴롭긴 했지만 친구가 확신하는 일이라면 응원하는 마음으로 들어줄 수 있었다. 하지만 내 꿈까지 건드리는 건 참을 수 없었다.
"너 이 일 해서 얼마나 버냐?"
그때 나는 패션회사 디자인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내가 간절히 원했던 일을 하게 되었기에 나는 굉장히 열심히 일했고 자부심도 있었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다 아는 친구가 그런 말을 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난 그 뒤로 친구와 만나지 않았다.
얼마 후에 나도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내 아들이 휴대폰을 물에 빠트려 망가진 후, 나는 새 휴대폰에 그 친구 전화번호를 저장하지 않았고, 내 바뀐 전화번호를 친구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친구는 잊혀 갔는데, 엊그제 꿈에 친구가 나왔다. 순수했던 어릴 적 모습 그대로, 할머니댁 마루에서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가난한 남자와 결혼해 변해버린 친구, 지금 생각해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렇게 연락을 끊은 게 미안하다. 친구를 수소문해서 찾을 수도 있지만 한 번 끊어진 인연은 다시 잇지 않는 게 낫다는 게 내 인생 지론이다. 친구 생각에 쓸쓸했던 하루가 저물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