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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Nov 15. 2023

엄마가 반찬을 해놓고 우리를 부르는 진짜 이유


"오이지랑 알타리 해놨어. 주말에 올래?"

한 달에 한두 번 엄마는 우리(언니와 나)를 부른다. 엄마가 우리를 부르는 이유는 반찬을 가져가라는 것이다. 오이지, 무말랭이, 콩자반 같은 어릴 때 지긋지긋하게 먹었던 반찬들이다. 내 손으로는 절대 해 먹지 않으며 집으로 가져가도 남편과 아이들은 거의 먹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중학교 때 나는 흰쌀밥에 김치, 오이지만 있으면 밥을 맛있게 먹었다. 어느 날 우리 집에 친구가 놀러 와서 같이 밥을 먹었다. 나는 오이지와 김치에 흰쌀밥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친구의 표정이 난감해 보였다. 친구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오이지가 그렇게 맛있는 반찬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스무 살이 넘어 본격적으로 밖에서 밥을 먹으면서 세상에 맛있는 게 참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건강프로그램을 즐겨보는 나이가 되면서 염분이 많이 들어간 밑반찬을 멀리하게 됐다. 오이지를 비롯한 엄마가 해 준 반찬들은 냉장고 안에서 숨죽이고 있다가 쓰레기통 안으로 사라지곤 했다.


엄마한테는 거짓말을 했다.

"맛있었어. 다 먹었어."

그럼 엄마는 그걸 또 만든다. 아픈 다리를 끌고 장바구니를 끌고 시장을 다니면서 재료를 사다 다듬고 절이고 저장해 뒀다가 반찬으로 만들고, 아파서 병원을 다니면서.


"엄마, 몸도 안 좋은데 이제 그만해."

"심심해서 하는 거야. 괜찮아."

조금 먹고 거의 다 버리니 만들지 말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이가 들수록 몸이 아픈 것보다 더 힘든 게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 됐다는 느낌이 들 때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엄마 앞에서 계속 거짓말쟁이가 되기로 했다.


몇 달 전부터 재택근무를 하게 돼 혼자 점심을 먹는다. 평소처럼 그냥 건너뛰거나 라면으로 때울까 하다가 냉장고 안에 아무도 먹지 않는 엄마 반찬이 생각났다. 밥을 푸고 엄마가 해준 오이지, 콩자반, 멸치볶음, 알타리김치를 꺼냈다. 내 입맛이 다시 중학교 때로 돌아갔는지 오이지가 참 맛있다. 학창 시절 엄마가 싸주던 도시락을 먹는 기분이다. 



오늘은 아이들의 학교에서 점심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내일이 수능날이라서) 친구들이랑 햄버거 같은 거 사 먹고 오겠다고 할까 봐 아이들이 좋아하는 고기 잔뜩 김치찌개를 끓일 테니 일찍 오라고 했다. 요즘 아이들이 자꾸만 밖으로 도는 것 같아서 잔소리를 많이 했는데 잔소리보다는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는 게 더 효과적인 것 같다. 주말이면 마라탕도 만들고 떡볶이도 만들고 불고기도 만들어놓고 아이들을 붙잡는다. 


아아들이 좋아하는 김치찌개, 이 김치도 엄마가 해줬다


밥을 맛있게 먹은 아이들은 아주 가끔 친구나 학교생활 이야기를 풀어놓고는 한다. 물어보면 해주지 않을 이야기들을. 나는 그 가끔이 좋아서 다음엔 또 뭘 만들까 생각한다. 엄마가 반찬을 해놓고 우리를 부르는 진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빨리 먹고 또 해달라고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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