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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Sep 21. 2023

행복을 재는 저울 따위 개나 줘버려


내 마음속에는 행복을 재는 저울이 있다. 행복의 무게를 잰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인걸 알면서도 누군가를 만나면 자동으로 움직인다. 내다 버리고 싶은데 아무래도 나란 인간에게 주어진 기본 옵션인가 보다.




일 년에 두세 번 만나는 친구들이 있다. 예전에 패션회사 디자인실에서 같이 일한 친구들이라 만날 때마다 입고 나갈 옷이 신경 쓰인다. 한 명은 아직 디자이너로 일하기에 늘 멋지게 꾸미고 다니고, 한 명은 살림만 하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워낙 옷을 좋아해서 언제나 예쁜 옷을 입고 나온다.


옷장 안을 뒤적였다. 한숨을 쉬며 아무리 뒤적인들 없는 옷이 나오지는 않는다. 지난번에도 입고 나갔던 깔끔한 셔츠를 꺼내 입었다. 요즘 핫하다는 익선동을 갔다. 한옥이나 오래된 집들을 개조해 만든 식당과 카페가 모여있는 곳이었다. 좁은 골목골목이 마치 미로 같아서 약속한 샤부샤부집을 어렵게 찾아갔다.


친구들과 웃으며 인사하고 그들의 옷차림을 본다. 역시 멋지다. 수수한 내 옷차림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하나 사 입고 나올걸 그랬나... 쟤는 머리가 아직도 풍성하네, 쟤는 얼굴에 잡티하나 없네... 웃으며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들의 외모를 스캔한다.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남편의 암이 완치된 지 5년이 넘어 안심했는데 다시 재발해서 항암 중이라는 이야기와 온 가족을 휘어잡는 기 센 시어머니 때문에 아이들마저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나는 글을 쓰고 공연을 보러 다니는 이야기를 한다. 내가 제일 즐겁게 산다고, 부럽다고 멋지다고 말해주는 친구들 앞에서 아까의 초라한 마음이 사라지고 어깨가 으쓱해진다.


자리를 옮겨 커피를 마셨다. 한 친구가 말한다. 지인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건물을 상속받는데 상속세가 몇억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친구들이 상속받을 재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부동산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나는 아무 말 못 하고 듣고만 있었다.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데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내가 가장 편안해 보이지만 나중에 친구들은 재산 상속받아 여유롭게 살면서 나를 안쓰럽게 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아니, 지금도 속으로는 초라한 내 모습을 보며 불쌍하다고 생각할지 몰라.




우울한 기분으로 며칠을 지내다가 지난겨울에 이 친구들을 만나고 나서 쓴 글을 읽었다. 그때 나는 이렇게 적었다. (이전 글 : 끼리끼리는 과학이라더니 )


'사는 모습을 가만 들여다보면 반짝이기만 한 삶도, 고단하기만 한 삶도 없다. 누가 더 크고 좋은 걸 가진 게 아니라, 각자에게 주어진 게 다를 뿐이다.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였다.'


헛웃음이 났다. 그때는 친구들과 나를 저울질해 본 결과 내가 더 행복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저런 아름다운 결론을 내린 거였다. 이번 저울질에서는 내 행복의 무게가 훨씬 가볍게 나왔다. 내 행복은 그렇게 비교급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누군가와 비교하면서 어떤 날은 내가 행복하게 느껴지고 어떤 날은 아닌 것 같고... 나를 둘러싼 상황은 똑같은데 말이다.



내 마음속 저울은 원치 않아도 자동으로 움직인다. 나란 인간한테 주어진 기본 옵션인지 '이깟 저울 필요 없으니 개나 줘버려!'하고 내팽개치고 싶지만 그게 안된다. 그러니 멈춤 버튼을 만들어야겠다. 이 버튼을 누르면 가수 장기하의 노랫말처럼 '아무것도 부럽지가 않아~' 할 만한 그런 거.


멈춤 효과가 확실한 버튼을 아직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내가 행복하지 않다고 느껴질 때, 내 머릿속은 괴로웠던 과거나 불안한 미래를 헤매고 다닌다는 거다. 오늘은 하늘이 파랗고 바람이 선선하다. 내가 행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오늘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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