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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Jan 11. 2023

끼리끼리는 과학이라더니


-이번에 네 아들 대학 합격 했다며? 고생 많았어.

-남편 사업은 잘 되고 있지?

-시어머니 잔소리는 좀 줄어들었어?

쉴 틈 없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는 40대 후반의 세 여자가 만났다. 그녀들은 한때 '너네 셋'으로 불리던 삼총사였다.


패션디자이너였던 그녀들이 처음 만난 건 23년 전, 중소규모의 숙녀복 업체였다. 써니가 가장 먼저 그 회사에 입사했고 몇 달 뒤에 지현이 입사했다. 지현과 써니는 금세 친해졌다. 써니는 큰 키만큼이나 시원시원한 성격에 웃을 때 반달눈이 되는 지현이 좋았다. 얼마 뒤에 효리가 입사했는데 그녀는 좀 특이했다.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눈치 안 보고 다하는 게 얄밉다가도 가끔 보면 그게 순수해서 그런가 싶은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그녀들이 다녔던 패션회사는 조용할 날이 없었다. 원부자재 컬러가 맞지 않는다, 재단이 잘못 됐다, 작업지시서가 잘못 나갔다 등등... 그녀들은 모든 일들을 해결하고 책임져야 했다. 지방이나 해외 출장도 자주 다녔다.  젊은 날 대부분의 시간을 일과 함께 보냈다. 그녀들은 낮에는 같이 밥을 먹고 밤에는 같이 술을 마시며 힘든 디자인실에서 서로를 버티게 해주는 친구가 됐다.


-너네 셋, 그만 좀 붙어 다녀. 너네 때문에 다른 디자이너들이 회사에 적응을 못하고 그만두잖아.

실장은 그녀들이 어울려 다니는 걸 못마땅해했다.

-웃기고 있네. 실장 성질이 더러워서 달달 볶아대니까 나간 거지 그게 왜 우리 탓이야!

그녀들은 결혼을 하면서 그 회사를 떠나거나 남았다.



셋 중 지현이 가장 먼저 결혼... 아니 임신했다.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그녀는 의외로 순정파였다. 오래 사귄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너무 제멋대로였다.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던 그녀가 드디어 남자친구와 헤어졌을 때, 선배가 소개팅을 주선했다. 외모, 직업, 성격 모두 완벽한 이른바 엄친아였다. 그도 지현을 맘에 들어했고 회사 앞에 멋진 외제차를 세워놓고 기다리곤 했다. 둘이 잘 돼 가나 보다 했던 어느 날 돌연 지현이 그에게 그만 만나자고 메일을 보냈다. 차마 말로는 못하고 메일을 보냈다.


-왜? 도대체 왜?

-오빠(전 남자 친구)가 찾아와서 울면서 매달렸어. 나 없으면 죽어버린대. 나 오빠랑 못 헤어질 것 같아.

-야, 안 죽어! 너 그 오빠랑 결혼은 절대 하지 마라. 진짜~그 엄친아 아까워서 어쩌냐. 이 바보~


하지만 지현은 얼마 뒤 임신 소식을 알렸다. 당당하게 모두에게 알리고 회사에 출근했다. 시댁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고, 몇 달 뒤에 임신한 티가 팍팍 나는 드레스를 입고 활짝 웃으며 결혼식을 했다. 결혼 전부터 제멋대로였던 남편은 결혼 후 제멋대로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하다가 망하기를 반복했다. 지현은 시댁을 떠나지 못했다. 아이 둘을 시어머니께 맡기고 열심히 일했다. 지현은 현재 그 회사의 이사이다. 다행히 그녀의 남편은 이제 정신 차리고 성실하게 일하고 있고, 지현은 아직도 남편을 사랑한다.



효리 역시 순정파라 오래 사귄 남자와 결혼했다. 효리의 남자친구는 다정한 성격에 집안도 부유했다. 근사한 호텔에서 결혼식을 했다. 그녀는 결혼과 동시에 회사를 그만뒀다. 강아지를 좋아해 명품 스타일 강아지 옷을 만들어 팔다가 그만뒀다. 그녀의 아들은 어릴 때 아토피가 굉장히 심했다. 밤새 잠 못 자는 아이를 붙들고 울면서 밤을 새운 날들이 많았다. 그 상황에서 남편은 허구한 날 술을 마시고 다녔다. 남편과 사이가 멀어져 이혼을 결심했다.


이혼을 준비하던 중, 남편이 암에 걸렸다. 일단 남편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다녔고, 열심히 기도했다. 시댁이 부유했지만 손 벌리기 싫다며 샤부샤부집을 시작했다. 다행히 장사가 잘 됐고 남편도 완치됐다. 남편은 효리 덕에 살 수 있었다며 고마워한다. 남편이 완치되고 사업을 시작하면서 샤부샤부집을 접고 아이 교육에 열정을 쏟았다. 이번에 아들 대학 보내고 이제는 좀 내 삶을 살아야겠다 했는데, 키우는 강아지 두 마리가 치매에 걸렸다. 효리는 아무래도 평생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팔자인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써니 역시 순정파였지만, 써니가 만난 남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써니의 연애는 계속 실패했다. 일이나 열심히 하자는 생각으로 더 좋은 회사로 이직했으나, 몇 달 뒤에 해고 통보를 받았다. 억울한 마음을 접고 호주에 유학 중인 친구를 만나러 갔다. 호주 여행 중에 그 친구와 눈이 맞아 결혼을 했다. 새로운 회사를 몇 개월 더 다니다가 첫째를 임신했을 때 그만뒀다. 아이 둘을 어느 정도 키우고, 마흔이 넘어 또 하나를 낳았다. 몇 년 전에 사무직으로 재취업을 하고, 무슨 자격증을 딴다고 하더니 이제는 작가를 꿈꾼다.


한때 써니는 패션 디자이너로 일하는 모습이 멋진 지현, 재산이 많아 명품을 휘감고 다니는 효리 앞에서 자신이 초라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지현은 남편의 사업병으로 마음고생이 심했고, 깐깐한 시부모님과 함께 살아야 하는 집에서 편하게 쉴 수가 없다. 효리는 아토피가 심했던 아들과 암에 걸렸던 남편을 위해 헌신했으며, 지금도 남편의 암이 언제 또 재발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는 모습을 가만 들여다보면 반짝이기만 한 삶도, 고단하기만 한 삶도 없다. 누가 더 크고 좋은 걸 가진 게 아니라, 각자에게 주어진 게 다를 뿐이다.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였다.

아니면, 끼리끼리 만났거나.



P.S. 브런치를 통해 만난 인연들에서도 '끼리끼리'를 느낄 때가 종종 있다.



https://brunch.co.kr/써니의 결혼 이야기


https://brunch.co.kr/해고 당한 덕분에 인생 최고의 여행을 하게 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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