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끄고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라디오 주파수를 맞춘다. 밤 10시가 되자 기다리던 음악(Franck Pourcel의 Merci Cherie)과 반가운 목소리가 나왔다.
-별이~빛나는 밤에~ 안녕하세요. 별밤지기 이문세입니다.
엄마 몰래 이불을 뒤집어쓰고 밤마다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듣던 시절이 있었다. 잠 안 자고 라디오 듣는 걸 엄마한테 들키면 안 되는데, 별밤지기 이문세 아저씨의 입담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낄낄 거리곤 했다.
-이 노므 지지배. 또 잠 안 자고 라디오 듣냐. 라디오를 부숴버리든지 해야지!
옆방에서 엄마의 잔소리가 들려왔지만 꿋꿋하고 성실하게 몇 년을 버텼다.
별밤지기가 통기타를 치며 불러주던 2부 시작 로고송이 아직도 생각난다.
창밖의 별들도 외로워~ 노래 부르는 밤~ 다정스러운 그대와 얘기 나누고 싶어요.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힘든 하루를 다정하게 위로해 주던 그 목소리의 주인공, 나의 영원한 별밤지기 이문세 아저씨~!!
2022년 12월 10일, 남편과 함께 그때 그 시절 나를 울리고 웃겼던 그분을 만나러 갔다.
한 달 전에 이문세 콘서트 현수막을 보고 예매 사이트에 들어가니 좋은 자리는 다 매진이었다. 할까 말까 고민하다 4층 발코니석을 예매했다. '얼굴은 안 봐도 된다. 이문세는 얼굴보다 노래다. 노래만 들으면 된다.'그런 마음이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그는 생각보다 실물이 괜찮은 가수였다. 멋있었다. (얼굴 안보임)
광화문연가를 시작으로 소녀, 사랑이 지나가면,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등의 발라드 곡과 깊은 밤을 날아서, 가을이 오면, 붉은 노을 등의 신나는 노래까지. 수많은 히트곡을 따라 불렀다.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가수가 아니었는데도 어쩜 모르는 노래가 하나도 없는 건지, 따라 부르면서도 놀라웠다.
초대가수도 진행자도 따로 없이 그는 혼자서 2시간 30분을 채워냈다. 그의 입담은 여전했고 여유가 느껴졌다.
-콩나물국밥, 낙지전문점 같은 식당에 가면 꼭 붙어있는 게 있죠. 콩나물의 효능, 낙지의 효능 뭐뭐뭐 이렇게요. 그 효능에서 빠지지 않는 게 뭘까요? 피로회복과 노화방지~! 이문세 공연에도 효능이 있는데 그건 뭐다? 피로회복과 노화방지~!
그는 스무 살에 진행자로 데뷔해 자신의 노래가 없어 무대에서 팝송을 불렀다고 한다. 자신의 노래를 갖는 게 꿈이었고,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는 게 꿈이었던 청년은 몇 시간을 불러도 다 못 부를 만큼의 히트곡을 보유하게 되었고, 어느새 노년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에 울고 웃었던 소녀 역시 아줌마가 되어 있는 것처럼. 아, 시간을 되돌릴 순 없나요~
우리가 앉은 발코니석은 몸을 틀어 앉아야 무대가 보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키가 작은 나는 팔걸이에 걸터앉아야 제대로 보였다. 처음에는 발코니석을 예매한 걸 후회했는데 이 자리는 장점이 매우 많았다. 주변에 사람이 없기 때문에 마음대로 서 있을 수 있었다. 서 있기 힘들면 튼튼한 남편의 무릎에 앉았다. 객석은 어두웠고 주변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던 우리는 연애할 때처럼 다정하게 공연을 즐겼다.
-자기야, 내가 이 공연을 예매할까 말까 했었는데, 역시 할까 말까 하는 마음이 들 때는 하는 게 맞는 것 같아. 나 잘했지?
-응, 잘했어. 오늘 자기 덕분에 정말 즐거웠어~
오늘 이문세 님이 말한 피로회복과 노화방지 효능은 확실했다. 공연장에 있는 시간만큼은 마흔아홉 살 아줌마가 아닌 순수한열아홉 소녀가 되어 행복했다. 계속 박수를 치고 팔다리를 흔들며 신나게 놀았다. 적어도 공연을 즐기던 두 시간 반만큼은 내 몸의 노화 시계가 멈춰있지 않았을까? 다음에도 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일단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