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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Aug 30. 2023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는 장소가 장례식장이 되는 나이


장례식장 입구에서 나는 희의 어머니를 찾았다. 그녀의 이름을 모르니 사진을 둘러본다. 아주 오래전에 두어 번 봤을 뿐이지만 한눈에 그녀를 알아봤다. 그녀의 얼굴이 딱 보이는 건 희의 얼굴에 그녀의 얼굴이 스며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람아"

조문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희가 나를 보고 달려온다. 희가 나를 끌어안고 흐느껴 다. 희보다 더 크게 울어버릴까 봐 입술을 깨물었다.


"어머니한테 인사부터 드리자."

향에 불이 잘 붙지 않아 한참을 서있는데 희가 옆에 서 있던 남동생에게 묻는다.

"누군지 알아?"

"모르겠는데"

"알 텐데... 네가 전에 업고 왔잖아."

동생은 나를 보며 여전히 모르겠다는 듯 대꾸를 하지 않는다.

"엄마 앞에서 그런 말하는 거 아냐."

동생이 기어이 나를, 그 일을 기억해 낼까 조마조마해진 내가 조용히 말하고 희의 어머니께 절을 한다.


이십여 년 전쯤 희와 강남에서 술을 많이 마셨다. 취한 나를 희의 집으로 데려가는데 내가 잘 걷지 못하자 동생을 불러 업고 들어갔다. 자다가 이불에 토했다. 다음 날 아침에 희의 어머니가 맑은 콩나물국을 끓여주셨다.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에 목소리도 체격도 큰 대장부 스타일이셨다. 욕을 잘한다는 건 나중에 희에게 들었다.


변함없이 다정한 미소를 지닌 희의 남편과 악수를 하고, 어느새 훌쩍 커버린 고1 아들의 어깨를 토닥여주고는 식탁에 앉았다.

"몇 시에 돌아가신 거야?"

"오전 여섯 시쯤에. 요양병원에 계셨는데 아무도 임종을 지키지 못했어."

희의 눈가가 다시 붉어진다.

"마음 안 좋겠다. 어머닌 다 이해하셨을 거야."

울음을 참으려다 갈라진 목소리로 희를 위로했다.


상이 차려진다. 육개장, 편육, 홍어무침, 떡, 전, 과일...

"소주 한잔 할까?"

소주가 달고 음식이 맛있다. 내 슬픔이 아니라서 그런가.

"오랜만에 이렇게 연락해서 미안."

"미안하긴. 우리가 이럴 나이가 됐지."


희의 어머니는 3년 전에 췌장암 진단을 받으셨다. 곧 죽는다는 말에 이기적으로 살기로 결심했는지 희에게 온갖 모진 말과 불평을 쏟아내고 돈 잘 버는 동생만을 의지했다고, 희가 전화로 울면서 말했었다. 희는 처음 어머니가 6개월밖에 못 산다고 들었을 때는 참았지만 그게 1년이 되고 3년이 되자 힘들어하고 있었다.


희의 남편이 희의 옆에 와서 앉는다. 아이들이 어릴 때, 12년 전 남양주 캠핑장에서 만나고 처음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막내가 몇 살이냐고 묻는다. 그때는 세상에 없던 막내가 벌써 열 살이라고 나는 대답한다. 우리는 아이들 이야기를 한다. 고3딸은 어디 갔냐고 희에게 물으니 집에 보냈다고 한다. 입시 이야기를 한다. 희와 내가 중학교시절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던 이야기를 한다. 다시 입시 이야기를 한다. 수박을 한입 베어 물며 물가가 너무 비싸 과일 사 먹기가 무섭다는 이야기를 한다.


오랜만에 식당에서 친구를 만난 듯 간간이 웃기도 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집으로 돌아왔다.



어제가 발인이었다. 슬픔은 이제부터 밀려올 것이다.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며 빈자리가 현실로 느껴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하지만 슬픔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고3 딸의 입시로, 날마다 술자리를 거절하지 못하는 남편 걱정으로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겠지. 어머니를 생각하는 날들이 하루하루 줄어가겠지.


나에게는 그날이 아주 천천히 오길, 평소 잘 누르지 않지만 외우고 있는 전화번호를 눌러본다.

"어, 작은 딸."

"엄마, 뭐 해?"

"엄마가 요새 고추를 말렸는데 비가 많이 와서 어쩌고 저쩌고... 다니는 수영장에 행사가 있어서 어쩌고 저쩌고... 쌍꺼풀 재수술이 어쩌고 저쩌고..."

오늘은 다른 날보다 조금 늦게 하품이 나왔다. 저녁에는 맑은 콩나물국을 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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