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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Jan 26. 2024

'제로'음료 꾸준히 먹은 아이의 충격적인 혈액검사 결과


초3 막내딸과 함께 소아청소년과 진료실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마치 시험을 치르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처럼 긴장됐다.

'이번에도 안 좋다고 하면 어쩌지? 내가 생각한 게 맞아야 할 텐데...'


"박○○~"

아이의 이름이 불려 진료실로 들어갔다.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고,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아이의 혈액검사 결과를 물었다.

"선생님, 당뇨 수치는 어때요?"

"음... 이제 괜찮아졌네요."

휴, 다행이다.


3개월 전, 아이의 혈액검사에서 '전당뇨' 단계의 수치가 나왔다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가족력도 없고, 체중이 많이 나가는 편도 아닌데 갑자기 당뇨라니...!

"갑자기 왜 이럴까요?"

"그러게요. 2년간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는데."

의사 선생님이 모니터 속 숫자들을 보다가 아이에게 물었다.

"너 혹시 음료수 많이 마셨니? 무설탕, 제로 음료도 안돼."

의사 선생님은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으니 3개월 후에 다시 혈액검사를 해보자고 하셨다.


아이는 2년째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에 다니고 있다. 또래보다 키가 많이 작아 검사를 해 본 결과, '성장호르몬 결핍증' 진단을 받았다. 주사약을 처방받아 내가 매일 집에서 주사를 놔주고, 6개월마다 혈액 검사를 통해 아이한테 부족한 영양소나 이상은 없는지를 체크한다. 그동안 별다른 이상 소견이 없었는데 3개월 전에 뜬금없이 '전당뇨' 단계에 해당하는 수치가 나온 것이다.


아이한테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자책을 하게 된다.

'내가 너무 아무 거나 먹였나 봐. 키 크라고 많이 먹으라고만 했지 제대로 된 식단을 챙겨주지 않았어. 다 내 탓이야.'


그러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나는 아이를 지켜야 할 엄마니까. 현실로 돌아와 냉정하게 생각했다.

'지난 6개월 사이에 얘가 뭘 자주 먹었지?'

그 시기는 여름방학 전후였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딱 떠오른 것은 인터넷에서 대량으로 주문해 두고 먹었던 탄산음료였다. 오렌지맛, 포도맛 등 달콤한 탄산음료로 어릴 때 내가 콜라 다음으로 좋아했던 음료가 '제로' 제품으로 출시됐다.


출시 기념으로 할인행사를 해서 맛이나 보려고 했는데, 박스로 사는 게 훨씬 저렴했다. 아이들이 평소 음료를 좋아하고, 날씨도 더워지고 있으니 많이 사두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오렌지맛 한 박스를 구매했다. 예상대로 아이들이 잘 먹었다. 다시 포도맛 한 박스를 더 구매했다.


그냥 탄산음료가 아닌 '제로 슈거' 탄산이었기에 조금은 안심하고 사다 두었다. 아이들은 여름방학 동안 그 음료를 물 대신 들고 다니며 먹었다. 거의 날마다 500ml 페트병 하나씩을 먹었다.


제품에 표시된 '제로 슈거'는 단맛을 위해 설탕 대신 인공감미료를 첨가한 음료를 뜻한다. 인공감미료는 설탕에 비해 열량은 낮지만, 아직 안전성에 관해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난 이걸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하루 한 병 정도는 괜찮을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요즘 사람들의 관심이 건강과 웰빙에 쏠리자 음료회사에서는 제로 음료를 앞다투어 출시하고 있다. '제로 슈거, 제로 칼로리'라는 의미인데, '제로'만을 유독 강조한다. 음료 진열장에서 이 문구를 대하면, 이 음료가 내 몸에 미치는 나쁜 영향까지 '제로'일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몸에 좋지 않은 탄산음료를 먹었다는, 혹은 먹였다는 죄책감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기분이 들곤 했다.


제로 음료가 처음 출시될 당시에는 제로 음료에 들어간 인공감미료가 당을 올리지 않는다고 했었다. 하지만 인공감미료 사용이 늘어나면서 이에 반대되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고, 뇌 질환이나 암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연구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관해 의견이 분분한 상태이고, 확실하지 않은 건 안 먹는 게 맞다.


갑자기 아이의 당뇨 수치를 올린 주범이라고 예상되는 걸 찾았으니, 실행에 옮겼다. 집안에 제로 음료를 포함한 탄산음료와 주스, 요구르트 등 음료를 사두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밖에서도 음료를 사 먹지 말라고 당부했다.


가끔 치킨이나 피자를 시켰을 때 서비스로 오는 500ml 정도의 콜라를 아이 세명에게 나눠주는 정도만 먹였다. 단순히 건강에 좋지 않으니 먹지 말라고 잔소리를 했으면 아이가 몰래 사 먹을 수도 있겠으나,  의사 선생님께서 '다음에도 수치가 이렇게 안 좋으면 약을 먹어야 한다'라고 하셔서 아이도 잘 따라주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 당뇨 수치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기분 좋게 진료실을 나와 아이에게 말했다.

"뭐 먹고 싶어? 우리 맛난 거 먹으러 가자."

"아래층에서 도넛이랑 레모네이드 먹자. 저번에 약속했잖아."

아래층 혈액 검사실 앞에 도넛 가게가 있다. 일주일 전, 혈액 검사를 위해 왔을 때 아이가 레모네이드를 먹고 싶어 했는데 사주지 않았다. 혈액 검사 결과가 좋으면 사주겠다고 약속했었다.


달콤한(내 눈에는 설탕덩어리인) 도넛과 레모네이드를 마시며 아이가 행복해한다.

"오늘만 먹고, 내일부터는 다시 음료수 안 먹는 거야."

"응, 그럼 엄마도 술 마시지 마. 술도 몸에 안 좋은 음료잖아."

"어... 그... 래."

딸아, 원활한 사회생활과 가정의 평화를 위해 일주일에 한 번은 마시는 걸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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