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아람 Apr 08. 2024

별일이 생겨버렸다

-친구야, 잘 지내니?

-그날이 그날이지. 넌 별일 없지?

-나야 뭐 별일 없지.


얼마 전, 가끔 연락하는 친구와의 문자에 별일 없다 말해놓고 생각했다. 나 사실 별일 있는데... 지금 집이 너무 좁아 몇 해 전에 아파트를 계약했다. 거기에 이미 몇 천만 원의 돈이 들어갔는데, 그 아파트가 지어지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그런데 난 평소 그게 별일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 일로 인해 내 생활에 변화가 생긴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난 밥이 맛있고, 잠이 달고, 봄바람이 상쾌한 게 느껴지니 별일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내 예쁜 고1 딸과 귀여운 초4 딸은 방을 같이 쓴다. 예쁜 아이와 귀여운 아이는 서로의 생일에 용돈을 털어 선물을 사주는 사랑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지만, 서로가 너무 짜증 난다며 소리를 질러대기도 한다. 가장 많이 다투는 이유가 잠자는 시간이 달라서다. 고1은 절친 친구랑 밤늦게까지 통화를 하는 날이 많다. 초4는 밤 열시면 자야 하는데, 언니가 친구랑 쏙닥거리고 있으니 화가 난다.


결국 귀여운 아이가 방을 나와 거실에 이불을 깔기 시작했다. 거실에서 자는 게 언니가 있는 방에서 자는 것보다 더 잠을 푹 잔다고 한다. 나는 괜찮은데, 남편은 그걸 싫어했다. 아이가 거실에서 잠을 자면 자신이 밤늦게 들어왔을 때, 앉아서 뭘 할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 남편은 아이가 일어나자마자 이불을 개키라고 말했다. 그때 내가 아침밥을 차렸다. 나는 밥부터 먹으라고 했다. 밥을 다 먹었기에 이불을 개키라고 했더니 아이가 알았다고 하고는 욕실로 들어가 양치를 했다. 나는 좀 짜증스럽게 말했다.

"야, 이불 개라니까 왜 갑자기 양치를 하고 그래?"

남편이 한마디 했다.

"너 아빠가 일어나자마자 이불 개키라고 했지? 아빠 말이 우스워?"

나는 남편의 말에 화가 났다. 아이 하나를 두고 남편과 나 둘이 다그치는 게 싫었다. 좀 더 솔직히 남편이 아이한테 화를 내는 게 싫었다.

"지금 내가 얘기하고 있잖아. 왜 자기까지 그래?"

"내가 일어나자마자 이불부터 개키라고 얘기했어. 내 말은 무시해도 된다는 거야?"


우리는 아이 앞에서 싸웠고, 아이는 욕실에서 나와 조용히 이불을 개켜 방으로 들어갔다. 내 화살은 다시 아이를 향했다.

"너 이리 와봐. 그게 이불 개킨 거야? 대충 그렇게 말아서 가져가면 어떻게 해? 펴서 다시 접어."

아이가 이불을 펼쳐 다시 대충 접는다.

"다시 펴."

나는 아이한테 이불 개키는 시범을 보이고는 다시 각지게 접으라고 명령했다. 아이는 거의 울듯한 표정으로 이불을 접어서 옷장에 넣었다.


안방으로 들어가니 남편이 침대 위에 앉아있다.

"저리 비켜. 이불 정리하게."

나는 평소에 잘 털지도 않는 이불을 탈탈 털어 정리했다. 내 마음속 소리는 이랬다.

'자기는 자고 일어나서 이불 정리 한번 안 하면서, 왜 애한테 일어나자마자 이불을 개키라고 잔소리야? 당신은 그런 일로 아이를 혼낼 자격이 없어!'


남편이 출근을 하는데 쳐다도 안 봤더니, 딸을 불러 "아빠 간다." 하면서 내 눈치를 보고 나간다. 남편과 작은 말다툼을 했을 뿐인데, 오늘은 별일이 있는 날이 돼버렸다. 어이없게 몇 천만 원을 날리게 생겼고, 각자의 공간이 부족한 이 집에서 끝없이 지지고 볶고 싸우며 살아야 할 것 같다는 불안감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렇게 마음이 답답할 때는 목적 없이 걷는다. 처음에는 내 생각으로 꽉 차 있던 머릿속이, 걷다 보면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과 풍경들로 채워진다. 하루하루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불안해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건 우리가 사랑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 믿음이 깨지면 모든 걸 잃는 거다. 집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 가능한 일이다. 해결 가능한 일은 '별일'이 아닌 건데, 싸우고 미워하는 순간 별일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50살 남편이 신입생이 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