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레슨 30회, 연습장 사용 3개월의 기간이 끝났다. 이 연습장에 재등록을 할지 다른 곳으로 옮길지 고민이 됐다. 처음 연습장을 알아보러 다닐 때 몇 군데 간 곳은 시설이 열악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 연습장은 규모가 크고 깨끗해서 마음에 들었다. 거리가 먼 게 마음에 걸렸지만, 운동 삼아 걸어 다닐 수 있다고 자신했다.
막상 30여분 가까이 걸리는 거리를, 한여름 뜨거운 낮시간에 날마다 걸어 다니기가 처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래도 비싼 돈을 냈으니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녔다. 골프 치는 것보다 왔다 갔다 1시간 걷는 게 더 힘들게 느껴졌다.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다시 연습장을 물색했다. 규모가 작고 시설은 별로지만, 대신 조금 저렴한 곳을 찾아냈다. 걸어서 10분 내로 갈 수 있는 거리다. 전에 다니던 곳은 레슨 코치 5~6명이 다 나보다 젊은 사람들이었는데, 여기는 60대 남자 프로님 한 분이 있다.
첫날 레슨을 받고 나서 남편한테 말했다.
"여기 프로님은 전에 배웠던 분보다 자세하게 설명도 잘해주시고, 뭐랄까 좀 나이스한 성격이신 듯. 괜찮은 것 같아."
다음날, 언니와 함께 연습장을 갔다.
"언니가 먼저 시작했어? 아니면 동생이 성격이 좀 급한가?"
언니와 나를 하루 가르친 뒤, 프로님이 말했다.
"아니, 하루 보고 뭘 성격까지 들먹거려? 완전 꼰대 같아. 기분 나빠."
남편한테 나이스한 분이라고 했던 프로님이 하루 만에 꼰대가 됐다.
언니와 나는 같이 골프를 시작했다. 다닐 수 있는 시간대가 달라서 다른 코치한테 배웠다. 언니를 가르친 코치는 날마다 기초 자세를 연습시키며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나를 가르친 코치는 한 번 이야기한 것이 어느 정도 된다 싶으면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내가 잘해서 그런 줄 알았다. 언니는 날마다 같은 동작만 시킨다고, 자기는 소질이 없는 거 같다고, 골프가 재미없다고 했다.
3개월이 지난 지금, 새로 만난 프로님이 내가 너무 급하게 골프를 배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언니가 전에 다니던 연습장에서 하던 그걸 지금 하고 있다. 내가 더 빠른 줄 알았는데 결국은 내가 더 느리게 됐다.
"급하게 생각할 거 없어요. 결국 도착점은 똑같아. 지금 힘들어도 자세를 잘 잡아놓으면 편하게 칠 수 있으니까, 언니보다 진도 늦게 나간다고 섭섭해하지 말아요."
아니, 나는 괜찮은데 왜 자꾸 비교를 해? 내가 언제 언니보다 잘 치게 해달라고 했었나? 속으로는 약간 짜증이 났지만, 어쩌면 내 눈빛에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더 빨리,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는 걸.
꼰대 같은 프로님을 미워할 수 없는 게, 전에 날 가르쳤던 코치는 3개월 동안 왼팔을 더 펴라고만 했지 정작 펴주지는 못했다. 그런데 여기 와서 3일 만에 팔이 펴졌다. 공을 치려고 마음먹으면 움츠려 들었던 내 팔이 쫙 뻗어진 채 돌아가기 시작했다.
전에 나를 가르친 코치한테 잘 안된다고 말하면,
"열심히 하면 돼요. 노~오력으로 이겨낼 수 있어요."
라고 농담 식으로 말해서 같이 웃었는데, 지금은 그 얼굴을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다. 난 정말 죽어라고 열심히만 했으니까. 나한테 도대체 왜 그랬어요? 정말 그냥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제대로 된 자세를 몸에 익힌 후에 열심히 해야 되는 거였다.
지난 3개월간 이렇게 팔이 구부러진 채로 스윙을 했었다
속상하지만, 그렇다고 지난 3개월간 헛짓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뭐든 제대로 하려면 지루하게 반복되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걸 이번 일로 깨달았다. 그래서 지루할 수도 있는 지금 이 시간이 별로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으니 말이다. 골프는 하면 할수록 운동이라기보다 수련이라는 생각이 든다.
"3개월 쳤는데 되게 잘하네요. 난 3개월 때 공도 제대로 못 맞췄잖아. 이래서 운동은 젊었을 때 배워야 돼."
옆 타석에서 연습을 하다가 쉬면서 나를 보신, 60대 중반정도로 보이는 여자분이 말씀하신다. 전에 다니던 연습장에는 나보다 젊은 분들이 많았다.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젊었을 때 배웠어야 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는 내가 젊다는 말을 듣는다. 아무래도 골프가 정말 재밌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