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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이 뭐 별거겠어

by 윤아람

오후 다섯 시, 사무실을 나와 전철역을 향해 걸었다. 햇빛 가릴 곳 하나 없는 뜨거운 길을 10여분 걸어 전철역에 도착했다. 햇빛은 피했지만 바람 한 점 없는 야외 승강장 안에는 후덥지근한 공기만이 가득했다. 땀이 줄줄 흐른다.


몇 분 뒤, 전철이 도착하고 문이 열린다. 열린 문 안으로 한 발자국 내딛는 순간,

'와, 천국이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내 몸에 흐르는 땀방울을 순식간에 날려버린다. 하루종일 에어컨이 시원하게 틀어진 사무실에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행복감이었다.


평소에는 행복하지 않다가 아주 가끔씩 행복한 일들이 생기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느끼지 못할 뿐, 나는 늘 행복하다가 아주 가끔씩 행복하지 않은 상황을 만났던 것 같다.


지금 나는 에어컨이 빵빵한 사무실에 앉아있다. 시원한 아이스라테도 한 잔 마셨는데 살짝 졸음이 온다.


잠시 후 퇴근길에 만날 상황을 상상해 본다. 뜨거운 길을 걸어 후덥지근한 승강장에 서 있는 건 행복하지 않은 상황일까? 그건 행복하지 않다기보다 조금 힘든 상황이긴 한데, 괜찮다. 힘든 상황 끝에 나는 천국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운동 끝나고 맥주 한 잔 마실 때도 천국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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