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랑 둘이 2박 3일 여행을 다녀왔다. 막내딸을 두고 간다는 게 마음에 걸려 빈말로 물었다.
"같이 갈까?"
"약속 있어. 나도 바빠."
가족 중 아무도 내 여행을 반대하지 않았다. 내가 없을 동안 먹을 걸 해놓아도 어차피 라면이나 치킨을 먹을게 뻔해서 라면만 종류별로 사다 놓았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언니와 함께 정동진행 열차를 탔다.
최근 2년간 정동진을 벌써 네 번째 간다. 처음엔 딸들을 데리고 차 없이 당일로 바다를 보고 올 수 있는 곳이 어딜까 알아보다가 정동진을 가게 됐다. 서울역에서 KTX를 타면 2시간 조금 넘게 걸리니 멀지 않으면서도 기차역에서 바다가 가까워서 우리가 가기에 딱이라고 생각했다. 딸들과 맛있는 회를 먹고 레일바이크를 타고 시간박물관을 관람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갈 시간이 다가왔을 때, 바닷가 끝 언덕 위에 놓인 크루즈 호텔을 보게 됐다.
"다음엔 꼭 저기서 하룻밤 자자."
1년 뒤에 아들의 수능이 끝나고 난 뒤, 그 호텔(썬크루즈 호텔)을 예약하고 가족 모두 1박을 묵었다. 그리고 올해 6월에 친정엄마, 언니, 나, 막내딸 이렇게 넷이서 한번 더 왔었다. 그때 언니도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며 이번에 둘이 가서 조용히 쉬고 오자고, 모든 비용을 대겠다는 달콤한 제안을 했다. 회사에서 보너스로 해외여행을 가게 됐는데 불편한 사람이 있어 여행 대신 돈으로 받기로 했다는 것. 그 돈으로 나랑 여행을 하고 싶다는... 난 전생에 나라를 구한 걸까.
9월 26일~28일. (벌써 한 달이 다 돼간다)
오후 1시가 조금 넘어 정동진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 호텔 체크인 후 쉬다가 호텔 바로 옆에 있는 정동진 부채길을 한 시간가량 걸었다. 다시 호텔로 와서 책을 읽다가 낮잠을 자다가 고기와 해물을 철판에 구워주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목욕을 하고 잠을 잤다.
둘째 날은 호텔 조식을 먹고 방에서 책을 읽었다. 내가 가져간 책은 한강의 '바람이 분다, 가라'였다. 유튜브로 '가을에 어울리는 재즈 음악'을 검색해 틀어놓았다. 책을 들고 테라스에 나가 읽기도 했다. 바람, 파도소리, 푸른 바다와 파란 하늘, 고요하고 편안했다.
밖에 나가 생선구이 정식으로 점심을 먹고 바닷가 주변을 산책하고 호텔에서 쉬다가 저녁에는 회와 대게를 먹었다. 소주도 3병이나 마셨다. 언니랑 어릴 때 이야기도 하고, 언니에 대해 내가 몰랐던 것들도 알게 되고, 이렇게 속 깊은 대화를 한 게 처음이 아닌가 싶었다.
마지막날은 꼭 일출을 보려고 했는데 늦잠을 잤다. 조식을 먹고 쉬다가 11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산책을 하다가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셨다. 정동진역까지 걸어가도 되지만 비가 내려서 버스를 탔다. 역 근처에서 짬뽕순두부와 해물전을 먹고 기차를 탔다.
내 평생 가장 잘 먹고 잘 쉰 2박 3일이었다. 특히, 혼자 테라스에 앉아있던 그 시간은 앞으로 생각만 해도 마음에 위안이 될 것만 같다. 내 눈앞에 모든 것들이 가만히 나를 쓰다듬으며 '다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