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따뜻해진 계절

by 볕드는 이야기

벌써 연말이 어느새 성큼 또 다가왔다.

짙은 붉은빛과 누런빛들이 회색빛으로 변한 걸 보니 알겠다.

30대 때는 시속 30km의 속도로 다가온다고 하던데,

체감은 70km 정도의 풀악셀을 밟는 느낌이다.

앞으로는 이보다 더 빠른 속도로 매번 다가올 거라 생각하니 아찔하기만 하다.

연말에는 왜 이렇게 모임들이 많은 건지.

달력을 보니 빽빽한 일정들로 가득 차 있다.

귀찮은 약속들을 “연말에 한번 봐.” 하고

다가오지 않을 것처럼 미뤄둔 내 탓이다.

평소에 편안한 옷차림을 좋아해서

옷장엔 죄다 헐랭하고 어두칙칙한 색 옷들뿐이다.

연말만 되면 입을 옷이 없어 늘 고민이고 부담이다.

모처럼 친구들을 보는데, 게다가 연말인데

대충 입고 나가긴 또 싫다.

그래서 11월 말쯤 되면 슬슬 쇼핑을 하기 시작한다.

연말 모임들을 위해 평소엔 잘 입지 않는 옷들을 사게 된다.

11개월을 헐랭하고 칙칙한 옷만 입다 보니

나한테 무슨 옷이 어울리는지,

요즘 유행하는 게 뭔지도 감이 사라졌다.

혼자 쇼핑하면 고민만 하다 결국 못 살 게 뻔해서

남자친구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

덕분에 오랜만에 시내 나가 맛있는 것도 먹고

데이트도 겸사겸사 하게 되었다.

옷을 고르는데 정말 고민이 되었다.

나한테 어울리면서 연말 분위기도 내고 싶고,

또 너무 튀지 않으면서

평소에도 가끔 입을 수 있는 그런 옷을 찾고 있었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조건이 많아도 너무 많다.

이럴 땐 늘 남자친구에게 선택을 맡겨본다.

그러려고 데려온 거니까.

그런데 남자친구는 매번 “다 예쁘고 잘 어울린다”고 말해준다.

그게 가끔은 불만이기도 하다.

“아니, 맨날 다 예쁘다 하면 어떻게 오빠 눈을 믿어.

객관성이 너무 떨어지는 거 아니야?

나는 객관적으로 봐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내 눈에는 정말 예쁜데… 그럼 조금 더 예쁜 걸 골라보도록 노력해볼게.”

매년 반복되는 이야기다.

사실 나는 알고 있다.

객관적으로 보면 외모도 평범한 내가

예쁜 옷 하나 입는다고 뭐 얼마나 예뻐지겠는가.

아마 나는 객관적인 독설이 필요한 게 아니라,

주관적인 시선으로 나를 바라봐주는 그 마음이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애정 표현에 서툰 내 서투른 방식이었을 것이다.

연말이 되면 평소에 안 입던 옷도 사보고,

평소에 잘 보지 못했던 친구들도 만나는데

평소에 하지 않았던 표현들은 왜 이렇게 못하는 걸까.

내 곁에 소중하게 늘 있는 사람들에게

객관적이 아닌 주관적인 시선으로

늘 따뜻한 필터를 끼고 나를 바라봐줘서

고맙다고 말해봐야겠다.

그러면 조금 더 따뜻한 연말이 될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어른이 되기 전 마지막 문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