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발자 모드 속 여든 번째 이야기
우리 시루가 도마뱀과 대치 중이다. 몇백 배나 덩치 큰 시루가 도마뱀을 주시했다. 평소에는 벌레도 잘 잡아먹는다고 들었는데, 도마뱀은 벌레보다 길어서 그런지 무섭나 보다. 그나마 짓지 않으니 다행이었다. 시루는 본인이 만만한 상대라고 판단하면 공룡 소리를 내며 짓기 시작한다. 나를 처음 만났을 때도 엄청 짖었다. 도그파크에 가도 어린아이만 보면 짖는 바람에 동생한테 항상 주의를 받았다. 그러다가도 대형견을 보면 바로 배를 보인단다. 대형견 > 도마뱀 > 나 > 벌레 정도의 서열일까. 과연 영리한 시루다. 가능한 상대에게만 덤빈다.
도마뱀이 가만있자, 시루는 차마 만지지 못하고 주변만 앞발로 벅벅 긁었다. 코를 들이밀어 냄새를 맡기도 했다. 하지만 절대 접촉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도마뱀은 잽쌌다. 앞뒤로 움직이는 통에 시루는 쫓아다니기 바빴다. 시루 목에 걸린 방울소리가 거실을 꽉 채웠다. 여전히 밟거나 물지 않았다. 우리 시루에게 움직이는 장난감이 생겼다. 동생은 산책을 덜 나가도 된다며 만족해했다. 시루 본인에게는 장난감이 아니라 경계대상 1호 일지도. 동생이 찍어준 시루의 영상을 보고 있자니 문득 짝사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애처롭게 바라볼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