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발자 모드 속 일흔아홉 번째 이야기
옆에서 재미있다고 계속 들었는데도 버텼다. 《애나 만들기》를 연상시키는 줄거리도 별로인 데다 진짜 재미있으면 넋 놓고 볼 시간도 없었다. 한 달 넘도록 미루다가, 어제 소설 2부를 마친 기념으로 여유를 선물하고 싶었다. 그래서 《레이디 두아》를 가벼운 마음으로 틀었으나, 장장 여덟 시간을 쉬지 않고 다 봤다.
팔 부작이어서 충분히 끊어볼 수 있었지만, 한 편이 60분이 되지 않을 만큼 짤막한 데다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다. BTS 콘서트 시간에 잠깐 채널을 돌렸다가 금방 돌아왔다. 광화문 콘서트는 내게 올림픽 개막식 같은 느낌이어서 의무적으로 봐야 할 것 같았는데, 사라킴의 매력이 나를 압도했다.
줄거리와 연기, 영상 모두 말할 필요도 없이 훌륭했다. 추송연 작가, 김진민 감독, 신혜선, 이준혁 배우의 조합이 드라마의 매력을 배가시켰다. 작가의 전작이 궁금해서 검색했으나, 《레이디 두아》 한 편 뿐이었다. 이토록 흥미로운 작품에서 옥에 티를 찾아보기로 했다. 칭찬은 아무리 해도 모자라서 끝맺을 수 없으니.
첫 번째, 박무경의 넥타이는 둘의 첫 만남과 그가 사라킴을 회상하는 매개체가 된다. 형사가 매번 넥타이를 매고 워커를 신는 복장이 생소했으나, 이준혁의 미모 덕에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울고 있는 낯선 여자에게 손수건 대신 넥타이를 건네는 행동도 이해되지 않을뿐더러, 그 넥타이가 사라킴의 사무실 책상 서랍에서 발견된 장면은 부자연스러웠다. 둘만의 러브 시그널이라도 되나. 소설에서 제일 중요한 덕목은 자연스러움이다. 특이하고 이상해 보이더라도 그 속에서 독자를 설득시킬 수 있으면 됐다. 억지스러운 설정은 공감을 끌어내기 힘들다. 내게는 넥타이 장면이 그랬다. 사라킴이 무경을 처음 만날 때, 거짓으로 깁스 연기를 하면서 경찰청 계단에 앉아있는 장면도 앞의 어떤 사건과 연결되는지 헷갈렸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교차 편집 때문에 내가 잊어버린 서사가 있을까 봐 자꾸 되돌려봤다. 이 또한 감독의 의도인가.
두 번째, 팀장 방 크기가 눈에 거슬렸다. 일개 팀장 방이 저렇게 널따랗다니, 심지어 박무경 형사는 승진도 누락했는데 독방을 차지했다. 특수팀인지, 팀원들 사무실 공간도 널찍널찍했다. 사무실 공간 기근에 시달리면서 일하는 내가 잠시 강력팀 사무 환경을 부러워했다.
마지막으로 강력팀의 막내 현재형 경위는 정치인 자제임에도 형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건이 해결되고 난 뒤에는 지구대로 자원해서 떠났다. 사라킴은 물론이고 무경까지 본인의 이익을 위한 선택을 하는 인물들 사이에서 이토록 맑고 순수한 신입이라니, 현실감이 떨어졌다.
드라마에서는 다음 대사가 반복된다.
“진짜와 구별할 수 없는데, 가짜라고 볼 수 있나요?”
“이름이 모예요?”
급박한 장면 전환 속에서도 김미정과 박무경의 대사가 내 머리통을 찍었다. 끝날 때까지 사라킴의 본명은 밝혀지지 않았다. 문득, ‘진짜와 가짜’ 문구에서 작년에 읽었던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가 떠올랐다. 신이 떠났으나 생계를 위해 신내림을 흉내 내는 박수무당 문수와 사채를 갚으려고 계속 사기를 치다가 급기야 가짜 사라킴을 사칭한 김미정이 되고 마는 ’가짜 사라킴’은 닮았다. 가짜를 외치다 ‘진짜 가짜‘가 되고 욕망 때문에 삶은 언제나 요동친다. 가짜의 파도가 진짜를 집어삼킬 수도 있다. 결국에는 진짜가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