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부산비엔날레 ≪어둠에서 보기≫
"본다"는 것은 곧 "이해한다"는 것.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보고 이해하기 위해선 시각 외의 감각들이 적극 동원된다. 8월부터 10월까지 진행했던 2024 부산비엔날레 ≪어둠에서 보기≫에서는 청각, 촉각, 후각을 깨우는 작품들이 전시장을 채웠다.
부산에서 수집한 어패류로 구성된 소라윗 송사타야의 <7개의 음과 42개의 현을 가진 두 개의 다리>(2024)가 풍기는 비릿한 냄새는 관람객의 후각을 자극하고, 미술가이자 음악가이기도 한 바니 헤이칼의 <모목 일렉트릭: 심연공포>(2024)는 때때로 사람 말소리나 총소리로 들리는 기이한 기계음으로 공간을 울린다. 응우옌 프엉 린 & 트엉 꾸에 치의 <출처 없는 물: 채찍 & 칼>이 차지하는 백색과 붉은색 조명의 방에서는 한순간 날아올랐다 내리쳐지는 채찍과 천장에서 책상으로 추락하는 칼이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우게 한다.
2024 비엔날레 ≪어둠에서 보기≫는 빛과 어둠을 긍정과 부정의 이분법으로 보는 관점을 뒤집어, 어둠을 빛으로 몰아내야 할 '악'이 아닌 그 자체로서 긍정한다. 전통적으로 빛으로 비유되는 이성, 지식, 서구의 계몽(Enlightenment)에 반해 어둠을 통한 새로운 앎을 제안하는 것이다. 비엔날레의 두 가지 방향키는 "해적 유토피아"와 "불교의 도량"으로, 전시장은 해방의 공간이자 깨달음의 공간이 된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해적 계몽주의"에서 영감을 얻어, 평등적 · 관용적 · 민주적인 해적 사회를 동시대 공동체의 대안으로 상정하며, 이로써 다양한 삶의 방식을 포용하는 열린 사회를 상상한다.
부산현대미술관과 초량재에 각각 전시되어 있는 김지평의 <산수화첩>(2024)과 <디바>(2023) 연작은 전통을 동시대적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하며 현대미술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진 전통미술의 접근과 체계를 재발견 및 재구성한다. 서양화가 하나의 소실점을 향해 작아지는 일점투시를 사용한다면, 동양 산수화는 여러 시점을 한 폭에 담은 '다시점 원근법'으로 거리감을 표현하는데, 서양화가 더 익숙한 현대의 우리에게는 오히려 어색해보이기도 한다. <산수화첩>에서는 이 동양 원근법의 산수화가 팝업북처럼 입체화됨으로써, 작가의 말처럼 "산수의 핵심적인 가치에 더욱 가까워"진다.
<디바> 연작에서도 동양의 전통인 병풍의 신체성에 주목했다. 병풍의 부분을 치마, 저고리, 소매라고 부르는 데에서 착안해 각각의 병풍에 말 그대로 옷을 입히며, 할머니, 군인, 가수, 무당의 옷을 입은 병풍들은 인물을 단번에 연상시킨다.
전통과 마찬가지로 "역사" 그 자체야말로 무엇보다 깊고 까마득한 어둠이 아닐까. 홍진훤은 1980-90년대 민주화운동, 노동운동과 계급운동의 기록을 다시 본다. 한성1918에 전시된 다큐멘터리 <멜팅 아이스크림>(2021)에서는 수해를 입은 민주화운동 사진들을 복원하려는 의지와 그 시대를 성공한 민주주의의 역사로 남기려는 욕망을 교차시킨다. 부산현대미술관에 마련한 '전시 안의 전시' <글리치 바리케이드>(2024)에서는 민주화운동과 노동자 운동을 기록한 서영걸의 사진을 전시하면서 영웅적 이미지들과 초점이 맞지 않은 "오류투성이"의 사진들을 오버랩한다. 홍진훤의 작업에서 흔들리고 흐릿한 이미지들은 당시 투쟁 상황의 역동성을 느끼게 하면서도 끊을 수 없는 불완전한 역사의 고리를 보여준다.
어두운 역사 속에서 우리가 듣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업이 또 있다. 윤석남의 <여성 독립운동가 초상 시리즈>(2020-23)는 독립운동 역사에서 주목받지 못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기린다. 인물의 행보를 짐작할 수 있는 상징적 요소들과 더불어, 공통적으로 인물들의 유난히 큰 손과 강렬한 눈빛은 강인함과 결연함을 그대로 담아낸다. 불충분한 기록을 작가적 상상으로 메꾸어 완성해 낸 여성 독립운동가 초상들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였던 부산근현대역사관의 지하 금고 미술관은 올해 처음으로 전시장으로 채택되었다. 어둠이라는 테마에 맞게 음지의 공간을 적극 활용한 이번 전시장은 조선소이자 병기창이었던 베니스 비엔날레의 아르세날레만큼 독특한 공간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하 전시장이 통신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활용한 최윤의 <(배경음악: 비트코인과 블랙홀)>과 같은 작업처럼 작품과 함께 장소를 살펴보는 재미도 선사한다.
송천의 <관음과 마리아 - 진리는 내 곁을 떠난 적이 없다>(2024)와 라즈야쉬리 구디의 <지나친 겸손으로는 진정한 선을 이룰 수 없다>(2024)는 서로 매우 다르지만 불교라는 하나의 테마로 묶인다. 승려 화가 송천스님의 작품은 관세음보살과 성모마리아 성화를 진리로 보아 종교를 아우르는 진리로의 이행을 보여준다. 반면, 부산에서 수집한 그릇들을 뒤집어엎어 늘어놓은 라즈야쉬리 구디의 작품은 부처가 구걸그릇으로 스투파를 만들었다는 일화를 재해석해, 구걸그릇을 내려놓고 복종에 저항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부산현대미술관 지하에 전시된 방정아의 회화 세 점은 부산, 바다, 배, 불교, 진리 등 개념적으로 이번 부산 비엔날레의 키워드를 아우른다. <물속 나한들>(2024)에서 '나한'이란 불교에서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 다른 이에게 공경받을 만한 성자를 일컫는데, 주로 남성으로 표현되던 나한이 이 작품에선 물속을 자유로이 부유하는 평범한 여성들로 그려진다. 작품 설명에 따르면 <언제든지 난 너의 배에 탈 수 있어>(2024)는 불교에서 피안을 향하는 "반야용선"을 닮았다. 이 배의 승객들 역시 무심해 보이는 보통의 여성들인데, 평범한 삶에서 출발하는 극락으로의 여정과 해적사회처럼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이 모이는 열린 공동체를 상상하게 한다.
불교의 성찰적인 성격을 공유하는 작업들도 있다. 전시장 두 벽을 ㄱ자로 가로지르는 붉은 도화지에 일정한 간격으로 뚫린 구멍은 달의 위상변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요코 테라우치의 <하나 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는 곧 하나다>(2024)는 제목이 시사하듯 '전체와 부분', '하나와 다른 하나' 사이의 불가분 한 관계를 보여주며 이분법적 인식에서 벗어나 포용적인 태도로 접근할 것을 제안한다.
개념미술가로 알려진 박이소의 <무제(오늘)>(2020/2024)도 명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시장 밖에 설치된 감시카메라와 연동된 전시장 안 프로젝터는 책상 같은 나무 합판 위에 바깥 하늘을 실시간으로 투사하며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언제나 올려다볼 수 있는 하늘을 외려 전시장 안에서 미술작품을 통해 주목하게 만드는 역설은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놓치는가에 대해 성찰하도록 한다.
언급된 작품들이 대변하듯, 이번 비엔날레에 참여한 62개 팀의 작품들은 매체, 도상, 주제 면에서 모두 매우 다르다. 서로 만날 일 없는 작품들이 비엔날레를 기회삼아 공명한다. 그 사이에서 관람객인 우리는 새로운 연결과 의미를 주체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이번 부산 비엔날레 ≪어둠에서 보기≫가 전하는 테마처럼 우리는 우리의 온 감각을 동원해 현대미술이라는 어둠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어두운 사회에서 나름의 답을 찾을 것이다. 깊어만 가는 어둠 앞에서 빛을 찾자는 허황된 꿈, 거대한 목표가 아닌 어둠 안에서 보는 법을 찾자는 대안은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조언처럼 들린다.
*원문은 아트인사이트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