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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정 Apr 02. 2022

가난해질 수 없는 마음을 가진 사람

양다솔의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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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돈이 없고, 당장 할 일이 없고, 미래가 불확실해도, 아침에 일어나 순서에 맞게 차를 우리고 점심에는 직접 키운 채소로 음식을 해 먹고 여름에는 팥을 사다가 팥빙수를 해 먹고 봉숭아 물을 들이는 사람이 어떻게 가난해질 수 있을까. 


많이 가질 수도 없고 가질 필요도 없는 절에서조차 양다솔 작가의 사물함은 차 항아리 여섯 개 플러스알파의 물건들로 꽉 차 있었고, 매일 아침 누구보다 먼저 다락방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수고에도 불구하고 무인양품 순면 파자마를 잃지 않는 그녀에게 가난이란 웬 말인가.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은 그녀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포기할 수 없는 것들 즉, 꼭 지켜야 하는 것들이 많을수록 가난과 거리가 멀어진다. 그리고 다른 모든 게 부족하더라도 마음만은 늘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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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다솔 글의 매력은 60퍼센트 그녀의 삶에서 40퍼센트 그 삶을 풀어내는 능력에서 발산되는 것 같다. 내 삶과 비교하자면 이런 느낌이다. 산과 가까운 평화로운 어떤 시골 마을에서 나름 가장 잘 닦인 넓은 도로를 걷고 있는 나. 오래 걸어서 발이 아플 수도 있고 목이 마를 수도 있겠지만 운이 나빠 큰일이 생기지 않는 한 그냥 그렇게 별 탈 없이 걸어 나갈 거다. 반면에 양다솔 작가는 마을 꼬마한테 자전거를 빌려 타다 넘어지기도 하고 괜히 산에 오르다 야생동물도 만날 것 같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기가막히게 써내겠지. 내 의지로 삶을 다채롭게 만들 수 있는데, 나는 과연 그렇게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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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이 대체로 그렇듯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들의 더미다. 그녀의 글은 그 이야기 하나하나에 다양한 감정이 녹아 있다. 그래서 그걸 듣는 내 감정도 마냥 단순하지 않다. 책을 읽으며 적어놓은 메모 카테고리 중 "웃음 포인트"와 "슬픔 포인트"가 있는데, 그게 웃음과 슬픔이라는 한 단어로 정의하기가 그리 간단치 않다. 

양다솔 작가의 글이 좋아서 인터뷰까지 찾아보다가 그게 바로 그녀가 글을 쓰는 이유라는 걸 알았다. 작가는 "한마디로 할 수 없는 순간에 대해서 쓴다"고 했다. 98% 재밌었지만 2%가 완벽히 슬펐다면, 98% 추하고 끔찍한 상황이었지만 2%가 아름다웠다면, 말로 설명할 수 없기에 글을 쓴다고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이 옳았다. 이런 결과물 - 하나의 글을 읽는 동안 점점 슬퍼지거나 점점 웃겨지는 게 아니라 예고도 없이 툭 눈물을 떨어뜨리고 피식 웃음이 흘러나오는 - 을 만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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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를 (실제 세계에서) 알지 못하는 독자에게는 수필이나 소설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독자에게는 둘 다 똑같이 실체 없이 글로만 존재하는 삶이다. 그런 면에서 수필이 소설보다 좋은 점이 하나 있다면, 작가가 계속해서 글을 써내는 동안 작가의 가치관과 태도와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관찰 아닌 관찰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이 2편, 3편, 계속해서 새로운 에피소드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야말로 네버 엔딩 스토리다. 

그래서 양다솔 작가가 오래 글을 써주면 좋겠다. 남의 인생에 큰 관심 없는 나인데, 앞으로 그녀의 행보가, 그녀의 인생이 궁금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글이 정말 슬프고도 재밌어서 후속 편이 나올 때까지 또 그다음 편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것 같다. 



커버 이미지: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과 어울리는 예술작품 

Shara Hughes, <Giving In but Giving Big>, 2018, ©Sharah Huges, 이미지 출처 presenhub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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