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윤 ㅡ 무얼 훔치지>
낡은 마음에다 노래는, 밝은 미소를 건네와.
기억.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
떠올려보면 어린 내가 생각했던 지금의 나는 이런 게 아니었다. 멋 모르던 그 나이의 꿈들은 대통령이었고, 과학자였고, 작가였지, 지금의 내가 아니었다.
'철이 없던', '현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던'이라는 수식언으로 갈무리된 것은 단지 10살의 순수했던 나만이 아닌, 꿈들과 함께였다.
장래희망란에도, 특기란에도, 취미란에도 무얼 적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내가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최대한 남들과 비슷하게, 튀지 않게.
사실 내가 노래 듣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노래는 밴드 음악을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누구를 자주 듣는지에 관해서 자세하고 길게 설명할 수 있지만. 그냥 다른 애들이 그러하듯
"아 저는 그냥 노래 듣고 유튜브 보는 거 좋아해요 ㅎㅎ"라고 말하는 내가 된 게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또래 애들보다는 조금 일찍 현실에 치여 살았고, 친구들의 평범한 삶보다는 조금 아픈 생을 살았다. 그런 탓인지 나에게 꿈은 내가 되고자 하는 목표가 아닌, 내가 어른이 되어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할까에 대한 목표로 여겨졌다.
나의 앞날에는 어떠한 기대와 두근거림보다는 무섭도록 냉정한 '먹고사는 문제'의 판단과 도구가 함께였다. 하이리스크의 도전보다는, 열심히 공부해서 높은 대학을 가고 노력해서 돈 많이 주는 평생직장에 잘 취업했으면.
이런 생각을 갖고 살았으니 대학 생활에 대한 설렘도, 한 해가 또 지나고 이제 많은 것이 가능해진 나이가 된다는 사실에 붕 뜨는 기분도 없었다. 소설로 문학에 입문하고, 시를 읽고 쓰며 나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에 흥미를 가졌던 나는 버려두고 늦은 공부에 매진한 나였다.
나의 열여덟 살과 열아홉 살은 현실에 애매하게 적응해 방황하는 탓에 긁히고 찔리는 아이였다. 그리고 나의 스무 살은 많은 것을 겪은 탓으로 얻은, 혼자 견디기엔 힘에 부쳤던 통증과 우울로 얼룩진 흉터였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내가 만약에 평범한 아이들처럼 경험하고 생각할 수 있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글을 쓰는 일에 품은 나의 마음은 버려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나는 이과생이 아닌 원래 원하고 생각해왔던 대로 문과생이 되었을까.
스무 살이라면 마땅히 가질 풋풋함으로, 동아리도 들고 술 약속도 잡고 학생회도 해보면서 캠퍼스 라이프를 즐겼을까. 돈을 버느라 인간관계와 나의 여가생활에 소홀해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아니,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그냥, 지금과는 다르게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재미있었을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 마음을 일찌감치 버려서 다행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삶이란, 많이 힘들 테다.
세상엔 평범하지 않은 꿈을 이루어낸 사람도 많지만, 그보다는 끝내 이루어내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많기에. 그렇기에 남들처럼, 튀지 않고 사는 방법을 추천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걸 성공시키는 데에도 큰 노력과 큰 고통이 따를 것이니, 결국 꿈을 포기하며 살아가서 힘들어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겠는가.
오래된 소망은 일부러 잃어버리고 현실을 살다가,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받은 뒤에 다시 찾으러 가는 게 만족스러운 삶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사실 산다는 게 다들 그렇다. 내가 원하고 재밌어하는 건 대부분 지금 하는 일에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결국 지금 하는 일에 다시 돌아오고야 만다. 타협하며 사는 거다.
그러니 내 마음이 그리는 것을 조금 무시하기만 하면, 그렇게만 하면 '평범하게' 돈을 벌며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 단지 필요한 것은 내면의 목소리를 잠시만 죽이면 된다.
그래, 그러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라 생각되면서도.
결국 우리는 마음을 안아주게 된다. 마음이 바라는 하늘은 비록 오래되어 먼지 쌓이고 낡은 것일지 몰라도, 내 눈에는 너무나 아름답게 비추어지니까.
스스로도 조금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한 번 꿈꾸게 된 하늘의 색은 많은 시간이 지나고 되돌아보아도 항상 선명하니까. 끝내 나는 너를 잊지 못하겠구나라는 예감이 들었을 것이다.
이미 놓쳐버린 사람은 널 좇는 것이 많이 힘들 거라는 걸, 지금 추격하고 있는 사람은 이게 많이 힘든 거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잡은 손을 놓지 못하는 게 우리니까.
노래 이승윤의 "무얼 훔치지"에서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낡은 하늘에 밝은 미소를 건넬걸. 왜 내가 바라볼 때면 녹슬어 있는지.
나는 '가수'라는 꿈을 꾸는 사람이다. 그 꿈을 꾼 지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노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바라본 그날의 푸른 하늘은, 지나간 세월만큼이나 낡음을 간직하고 있다.
그 시간 동안에 지은 웃음보다 떨군 눈물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뺨을 타고 흐른 눈물은 낡은 하늘에 닿아 녹이 슬게 했다. 안타까운 상황이다, 너무나도 소중한, 꿈을 꾸고 있다는 마음이 바랐던 하늘에 녹이 슨 것이다. 울지 말고 밝은 미소를 건넬걸. 더러워진 하늘을 꿈꾸고 싶진 않았는데.
노을을 훔치는, 저기 언덕을 가도 멀찍이, 태양은 언제나 멀지 그럼 난, 무얼 훔치지.
우리가 일을 하고 하루를 견디며 살아가는 것은 결국 무언가를 얻기 위함일 것이다. 돈을 얻기 위해, 명예를 얻기 위해, 권력을 얻기 위해, 사랑을 얻기 위해, 사랑을 나눌 힘을 얻기 위해.
이때, '얻는다는 것'은 '훔친다는 것'과 같은 일이 된다. 얻을 수 있는 대상은, 누군가가 만들어 둔 것이고, 우리가 이를 가지는 건 그걸 만든 이에게 직접 인계받지 않으니까 말이다.
따라서 삶에서 수고한 보상을 받는 것은, 나에게 있어 값진 무언가를 훔치는 일이다. 그렇기에 이 노래에서 '훔친다'라는 행위는 지탄받을 행동이 아닌 멋지고 좋은 일로 여겨진다.
내가 바라는 낡은 하늘에서 가장 대단한 건 노을을 훔친 태양이다. 가장 빛나야만 하는 힘든 일과 무거운 책임을 다한 태양이니 만큼, 가장 잘 이루어진 꿈의 형태는 자신이 태양이 되는 거라 할 수 있겠다.
나는 그런 태양에 가까워지고 싶다. 그래서 저기 너머의 언덕까지 오랜 시간 걸려 힘겹게 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태양은 언제나 멀리 있다. 허무하다.
날짜들보다 오래된, 발자국처럼 노래한 신발 아래서 들려와,
"포기하려 했는데...."
낡은 마음에다 노래는, 밝은 미소를 건네 와.
왜 내가 바라보아도, 녹슬지 않는지.
난 눈물을 훔치지.
왜 내가 바라보아도, 녹슬지 않는지....
힘에 부쳐 떨군 눈물이 낡은 하늘을 녹슬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낡은 마음에 노래는 끊임없이 밝은 미소를 건넨다. 이쯤 했으면 포기할 만도 한데. 이 정도 고생했으면 현실에 타협할 만도 한데. 노래는 마음에 구슬픈 울음 대신 미소를 건넨다.
그래서 마음엔 녹이 슬지 않는다. 슬프게도 내가 바란 하늘엔 눈물로 녹이 슬었음에도, 그 마음에 녹이 슬지 않는다. 나는 그 마음을 놓아버릴 수가 없다는 거다. 그리곤 알게 되는 것이다. 결국 난 꿈을 포기할 수 없는 거였나 보다,라고. "포기하려 했는데..." 쓴웃음을 지으며 노래하는, 그간 내가 걸어온 발자취 이곳저곳에 묻어있는 내 목소리가 노래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흘리던 눈물을 훔친다. 아픈 가슴에 쓰라려 내리던 울음을 그치고, 결국 내 목소리에 맞춰 다시 걸어가려는 것이다. '왜 내가 바라보아도, 도저히 녹이 슬지 않는지...'라는 자조 섞인 넋두리와 함께다.
언젠가 진지하게 품은 꿈은 도저히 포기하려야 포기할 수가 없지 않냐며, 이 시대에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그렇지 않냐며 웃는 가사라고 생각한다. 힘든 현실에 거의 매일을 울어도, 언젠가는 나의 마음속 노래처럼 웃을 날이 오지 않겠냐며 응원하는 가사라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꿈을 꾸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은 게 된 오늘날에 큰 위로가 되어주는 말이라고 느낀다. 이루지 못할 거란 두려움에 오늘도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을 미루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현실에 발맞추는 것에도 벅차 타협하고 숙이고 사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 모든 걸 이겨낼 용기도, 잘하지 못하고 있는데 "잘하고 있어!" 라며 건네는 맹목적인 응원도, "힘내"라는 때로는 마음의 짐이 될 만한 부담도 아닌, 꿈을 꾸는 힘든 삶을 걸어가면서 "그치, 많이 힘들지? 근데도 계속하려는 내가 미련하다 진짜. 하하."라는 말일 것이다. 꿈꾸는 삶도 그렇게 평탄치 만은 않구나.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라는 노력하지 않아도 위안을 받을 수 있는 한마디가 그들에게,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가사에 나온 것처럼, 결국 우리의 삶은 무언가를 훔치는 생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훔치기 위해 노력하고, 목표를 이루는 것이 사람답게 만족하며 사는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내가 원하는 것을 훔치지 못하는 인생은, 결코 만족하며 살 수 없는 생활이란 뜻도 된다.
아니지, 그래도 우리가 비록 두려움과 현실적 변명으로 타협하고 살았음에도, 결국 꿈을 이루는 데에 실패하고 터덜터덜 살아가는 것보단 평안하지 않은가? 우리의 삶에도 적당한 만족과 풍요라는 게 있지 않겠는가.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요즘 들어 정말 많이 느끼고 있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던 나일까?
내가 바라던 게 돈 걱정 없이 편하게 사는 삶이긴 해. 앞으로 계속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이룰 수 있을 거라고 믿어.
그런데 그것과는 상관없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내 마음속에서 단 한시도 떠나간 적이 없었다. 돈은 벌어도 벌어도 계속 부족하기만 하고, 사는 게 더 힘들어져만 가는데 행복하기는 쉽지 않다는 걸 많이 느꼈다. 돈을 벌기 위해 해야 하는 것과,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병행되어야 쉬이 만족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요즘 부쩍 많이 들었다. 사실 그 둘이 일치하게 되는 삶이 가장 멋진 것이겠지만, 그걸 바라기엔 내가 너무 두려움이 크기도 하니까. 그래도 이 정도만으로도 내가 원하는 것 정도는 훔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
생각하면 할수록 저 둘의 일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존경스럽다. 그들도 두려웠을 테고, 현실에 절망하기도 했을 텐데, 그럼에도 계속 나아가려는 삶이 참 멋있다. 무언가를 훔친다는 아주 멋진 일. 언젠가는 나도 그 일을 하며 살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비록 나는 좀 소심한지라, 일단은 현생을 먹고살아나갈 지식을 먼저 기르고자 강의나 들으러 갈 셈 이만 말이다. 뭐, 반드시 지금 당장 훔쳐야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 꿈에는 유통기한이 없으니까? 괜찮겠죠.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기회가 된다면, 갖고 싶던 것을 훔치기 위한 시도를 해보시는 건 어떨지 조심스레 옆구리를 쿡쿡 찔러봅니다. (원래 힘든 건 같이 하고 싶어 지잖아요.^^)
[이승윤 - "무얼 훔치지"]
정식 발매는 안되어서 유튜브에서만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가사>
생각을 정돈하려다 마음을 어지럽혔나 봐. 대충 이불로 덮어 놓고 방문을 닫았어.
선반에 숨겨놓았던 후회를 하나둘 꺼내서 읽으려다 그냥 말았어 거의 외웠으니까.
낡은 하늘에 밝은 미소를 건넬걸, 왜 내가 바라볼 때면 녹슬어 있는지.
노을을 훔치는, 저기 언덕을 가도 멀찍이, 태양은 언제나 멀지 그럼 난, 무얼 훔치지.
텅 빈 하루를 채우다 잠은 가루가 됐나 봐. 쓸어안아 누워있다가 그냥 울어버렸어.
옷장에 숨겨놓았던 꿈들을 몇 벌 꺼내서 입으려다 그냥 말았어. 어울리지 않잖아.
낡은 하늘에 밝은 미소를 건넬걸. 왜 내가 바라볼 때면 녹슬어 있는지.
노을을 훔치는, 저기 언덕을 가도 멀찍이, 태양은 언제나 멀지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난, 무얼 훔치지.
조바심에 저 바람에 주파수를 훔쳐봐도, 모랫가루만 날리고 밤을 어지르지.
노을을 훔치는, 저기 언덕을 가도 멀찍이, 태양은 언제나 멀지
이제 그만할래.
날짜들보다 오래된, 발자국처럼 노래한, 신발 아래서 들려와,
"포기하려 했는데..."
낡은 마음에다 노래는, 밝은 미소를 건네 와.
왜 내가 바라보아도 녹슬지 않는지.
난 눈물을 훔치지.
왜 내가 바라보아도 녹슬지 않는지.
왜 내가 바라보아도 녹슬지 않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