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를 하다

나도 차를 마실 줄은 몰랐지

by 대오

내가 거주한 청소년 쉼터에는 침대 따위는 없어서 거실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잠을 청했다. 밤이 된다고 아이들이 잠을 자겠는가? 당연히 그러지 않고, 자기들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눈다. 초유의 관심사는 신입생이었던 나였고, 내가 어떤 일로 여기에 왔는지 어떤 사람인지를 아이들은 내심 궁금해 했다. 물론 나는 너무 무거운 이야기를 하면 분위기가 쳐질까봐 최대한 사정을 축약해서 설명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다른 아이들이 내 이야기에 공감을 해주며 위로를 해주었다는 것이다. 이 모습에 질색을 하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주위 사람들이 속마음을 털어놓는 상황 속에서도 말하고 싶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가 있고, 만약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는 그런 상황 자체가 하나의 외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를 자신들의 아픔을 공유하고 공감대를 형성해서 서로를 받아들이려는 하나의 의식이라고 받아들였다. 친구를 만들 때도 상대방과 자신의 공통된 부분을 찾으면서 친밀감을 쌓지 않는가. 심지어는 강압적인 분위기도 아니었고, 오히려 먼저 다가와줘서 인사해 준 쉼터생들이 고마웠다. 나는 다가와준 이들에게 감사해하며 최대한 싹싹하게 대했고 이 덕분에 무리 없이 쉼터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텃세도 있을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만큼 쉼터 선생님들이 애를 쓰지 않았나 싶다. 여러 아픔을 가진 아이가 있었지만 그중에 가장 기억나는 아이는 ‘민수’였다.

민수는 신장 180센티가 넘어가는 훤칠한 고등학생으로 유쾌한 목소리가 특징인 아이였다.류준열과 닮은 무쌍의 눈동자와 외모는 민수를 더욱 독보이게 했다. 또한 체육관을 다니며 운동을 하며, 나중에는 체육관을 차리고 싶다는 멋진 꿈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민수가 갖고 있는 꿈 중에서 가장 멋진 꿈은 언젠가 가족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비록 자신이 선택하지 못한 가족은 내게 아픔이 되었지만, 내가 선택할 가족들을 위해서 살아가겠다는 건 너무나 멋진 일이 아니었는가. 청소년 쉼터에는 이런 멋진 아이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민수의 이야기에 온전히 공감하지는 못했다. 어차피 지키지 못한다면 차라리 만들지 않는 게 낫지 않나. 고등학교 시절, 술에 취해서 싸우는 아버지와 돈 때문에 악에 받힌 어머니 사이에서 엉엉 우는 동생을 지키지 못했던 것도 힘이 없어서였는데, 인강비를 받고 싶다고 했다가 한 소리 들었던 것도 돈이 없어서였는데, 우리 같은 사회 밑바닥이 가족을 만들 수나 있을까, 그리고 만들었다고 해도 지킬 수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민수는 내가 혼자 잠들려고 하면 옆에 이불을 펴서 함께 이야기를 하다가 잠들거나, 다른 아이들한테 주의를 해야 할 점들을 일러주었다. 쉼터에서는 절대로 절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거나 싸움을 해서는 안 된다. 저 쉼터생은 이런 말에 특히나 민감하게 반응한다. 지금은 괜찮지만, 시간이 지나서 입소하는 쉼터생 중에서는 소위 '문제아'가 있을 수 있다는 것 등등 말이다. 특히나 내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말은 쉼터생들에 대한 소개였다. ‘두두’는 중국에서 온 재외동포로 길거리를 떠돌다가 쉼터에 입소했다고 했다. ‘태현’은 아주 오랫동안 쉼터 생활을 했으며 모두의 신뢰를 받고 있다고 했다. ‘명수’라는 형은 쉼터 선생님을 아버지처럼 따른다고 했다. ‘광휘’는 아이는 인터넷 비제이를 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리 같은 쉼터생이라고는 하지만 만난 지 얼마 안 된 나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만큼 몰려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나를 소개하고, 쉼터생들을 소개 받으면서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쉼터 생활이 시작되었다.

솔직히 나는 쉼터 생활을 하기 이전까지는 단체 생활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학교 기숙사도 들어간 적이 없으니 오죽했으랴. 하지만 의외로 내가 평소에 갖고 있던 독서라는 취미가 나의 쉼터 생활 적응을 도왔다. 나는 쉼터에 입소한 첫 날부터 발코니에 있는 책장을 기웃거리며 독서 삼매경에 빠졌었다. 그런데 혼자서 묵묵히 책을 읽는 내 모습이 신기했는지, 쉼터생들의 관심을 끌어들였다. 쉼터생들은 책을 읽는 게 재밌냐고 물었다. 나는 웃으면서 재밌다고 대답했다. 모르는 걸 알아가는 것도 재미있고, 책을 읽을 때마다 머리속에 사이다가 터지는 듯 시원하다고 대답했다. 쉼터생들은 머리 속에서 사이다가 터진다는 말에 웃었다. 그리고 '그럼 나도 책을 읽어볼까?'라고 말하며 책장에서 하나씩 책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출근하신 쉼터 선생님들은 웬일로 아이들이 책을 읽는다면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특히 어젯밤 직장에서 야근을 하느라 나와 안면식이 없던 '태현'은 책을 읽고 있는 쉼터생들을 보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라며 어안이 벙벙했다고 한다(태현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음). 이걸 들었을 때 나는 내 안에서 어떠한 만족감이 올라왔다. 나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그런 것들 말이다.

내가 첫 아침을 맡이한 날, 우리 쉼터의 명물인 다도회가 열렸다. 쉼터에서 차를 마신다는 건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기에 조금 얼을 탔는데, 민수가 웃으면서 복지사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정기 근황을 듣는 자리라고 설명해주었다. 솔직히 신기했다. 복지사님들이 아이들을 관리 감독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정기 모임 같은 것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설마하니 다도라니! 정기 보고라고 하면 무척이나 딱딱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될 것 같았는데 말이다. 드물게도 나는 차를 즐긴다. 어머니와 부친이 크게 싸운 여파로 나는 고등학교 시절 동안 불면증에 시달렸다. 잠을 깊게 자지 못하거나 아예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어머니께서 잠에 좋다며 내게 차를 타주셨다. 그 후로 나는 종종 차를 즐긴다. 혼자서 다도 세트를 사서 한동안 운남차를 타먹기도 했었다. 우리가 쉼터에서 다도를 즐기는 방식은 이러했다. 쉼터에 구비되어 있는 차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 여러 자질구레한 다도의 순서는 어느 정도 생략하고 뜨거운 물을 부어 찻잔을 뎁혔다가 그 위로 찻잎을 풀어 차를 마신다. 살짝 야매끼가 있는 방식이었지만, 우리는 차와 간식을 먹으면서 근황 이야기도 하고, 앞으로 참여해야 할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다도를 하고 있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시끄럽던 머릿속 걱정과 불안들이 작게나마 가신다. 다도를 하고 있는 순간만큼 가정 폭력의 피해자가 아닌 오직 나로써 존재할 수 있다.

담당 복지사 님이 오늘 견학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고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이런 프로그램이 예약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제 막 들어왔기 때문에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차 덕분일까? 나는 확실히 긴장이 풀린 목소리로 질문했다. "어떤 프로그램을 하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