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의 시간표에는 여러 여가 시간을 보장해주고 있다. 우리는 여가 시간을 통해 개인적으로 스트레스를 풀거나, 우애를 돈독히 했다. 우선, 내가 있었던 청소년 쉼터에서는 휴대폰을 대부분 정해진 시간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는 휴대폰을 갖고 있는 쉼터생과 그렇지 않은 쉼터생간의 차별감을 조성하지 않기 위함도 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쉼터생들은 아무래도 범죄와 접촉하기 쉬운 환경에 처해 있기 때문에 휴대폰이 범죄의 길이 될 수 있었다. 실제로 이전에 있던 한 쉼터생의 경우 화장실에서 자신의 나체 사진을 찍으면서 랜덤 채팅(이성 만남 어플)을 이용해 성적 욕망을 충족시킬 파트너를 구하다가 악질적인 유저에게 걸린 일이 있었다. 그 일로 한동안 지인들에게 나체 사진을 유포하겠다는 협박을 받아야만 했고, 쉼터에서도 큰 문제가 되었다. 그 아이의 일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절대로 원만하게 수습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쉼터에 있었을 당시에는 코로나가 한창이었기 때문에 쉼터생들의 외출도 막히고, 하루 종일 무기력하게 휴대폰만 하는 게 문제가 되었다. 24시간 동안 휴대폰만 하는 청소년. 딱 무기력해지고, 인터넷 중독에 걸리기 좋은 환경이었다. 그래서 이런 여러 가지 이유들이 얽히고 섥혀 쉼터에서 지정 시간 외에는 휴대폰 사용이 금지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갑갑했지만, 그래도 재밌는 추억도 많았다.
물론 이것을 견디지 못하고 다른 쉼터로 이동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규정이 너무 빡빡하다고, 휴대폰은 자유롭게 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나는 오히려 휴대폰 사용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선생님들이 우리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면, 협박 사건이 있건 말건, 휴대폰을 무제한으로 허용해줬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는 점에서 나는 오히려 다정함을 느낀다.
우선 청소년 쉼터에는 '정보검색실'이라는 장소가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컴퓨터를 이용하는 장소를 그럴 듯하게 부르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컴퓨터를 이용한 다양한 작업이 가능했는데, 가장 인기가 있었던 건 아무래도 게임이었다. 사람 여럿이서 한 번에 같이 할 수 있는 게임도 좋았지만, 여러 사람이서 한 컴퓨터를 가지고 한 게임만 하는 방법도 인기였다. 2인이서 가능한 플래시 게임을 하거나, 로그라이크 게임을 통해 한 사람이 죽으면 다음 사람이 교대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언젠가 스팀에서 게임 하나를 구입하면, 자신도 해보겠다고 내 자리를 탐내던 쉼터생들이 아직도 기억난다. 어떤 때는 학교 온라인 강의를 듣던 중학생 쉼터생이 수업과 동시에 게임을 하다가 적발되어 노트북을 압수당한 적도 있었다. 그 때, 그 학생은 그런 대우에 납득하지 못한 듯 싶었으나, 사실 그 아이가 평소에 문제를 일으키고 다녔기에 쉼터에서 경고 차원으로 행한 일이었다.
또 '보드 게임'도 만만치 않게 인기가 많았다. 할리갈리, 다빈치 코드, 부르마불도 인기였지만 가장 인기가 많았던 보드 게임은 루미큐브였다. 루미큐브는 연속된 숫자를 먼저 만드는 플레이어가 승리하는 게임으로 기억하는데, 얄밉게 숫자들을 섞어 놓는 민수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사실 바로 옆에 있는데도 쳐다도 안 보는 휴대폰보다 그래도 같이 얼굴을 보며 웃고 떠들 수가 있는 보드 게임이 쉼터의 가장 효과가 좋은 적응 프로그램이지 않았나 싶다. 또 쉼터 내부에는 탁구장도 구비되어 있어 원하는 사람은 서로 탁구를 치며 쉴 수 있었다. 물론 많이 이용하는 사람은 없었다. 쉼터에서 탁구는 그다지 인기가 있는 종목은 아니었다. 그리고 애초에 나부터가 운동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다. 사실 세 번째로 인기가 많았던 여가 방식은 노래방이었다. 노래방은 주말마다 사용할 수가 있었는데, 노래 부르기를 원하는 쉼터생들이 모이면 노래방 기기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다. 나는 태생이 '아웃사이더'라서 노래를 부르는 걸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다른 쉼터생들이 노래를 부르면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책을 읽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뺄 수도 없었던 것이 노래방 기계는 동의하는 사람이 과반수가 넘어야 사용할 수 있다는 규칙이 있었다. 그래서 어쩔 때는 나도 마지못해 수락하고, 노래를 부르는 대신 열심히 탬버린을 치곤했다. 민수는 발라드를 곧장 잘 불렀고, 명수 형과 두두는 곧장 트로트 노래를 부르곤 했다.
주말이 되면 휴대폰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지만, 사실 쉼터 선생님들께서 풀어주는 속칭 '썰'이 가장 인기가 많았다. 첫사랑 이야기, 대학교 이야기 같은 것 말이다. 특히나 선생님들이 들려 주시는 '공포 경험담'은 무척이나 짜릿하고 흥미로웠다. 잠들기 직전 주말 선생님께서 들려주시는 공포 썰은 무척이나 흥미진진해서 다들 잠을 자기는 커녕 조금이라도 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고 졸랐던 쉼터생들이 대다수였다. 참고로 나도 포함된다. 대학교 시절에 공동묘지를 탐사한 이야기, 정말 똑똑했지만 유령에게 시달린 천재 이야기 등등 말이다. 내 생각건대, 그 입담은 군대에서 사랑받을 입담이었다.
어떨 때는 쉼터생들이 자기들끼리 재밌는 썰을 준비해서 이야기를 풀기도 했다. 민수는 여자 친구가 좋아하는 이벤트나 데이트 썰을 풀었다. 대체 나보고 그렇게 쑥맥이어서 어쩔 것이냐고, 여자들과의 밀당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에 대해 말이다. 지금 나이까지 솔로인 것을 생각해보면 그 때의 이야기를 좀 더 귀다듬었어야 했을 지도 모른다. 태현은 직장에서 있었던 황당한 이들을 소개했다. 주로 억울하고 답답한, 갑질을 당한 이야기들이었는데. 듣다 보면 나도 덩달아 화가 날 정도였다. 태현은 그렇게까지 힘들게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쉼터는 쉼터생들의 즐거운 여가 생활을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오히려 나 같은 경우는 코로나 시기에 쉼터에 들어가서 제대로 쉼터의 문화를 지내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쉼터에 들어갔다고 해서 여가 생활이 없으리라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 우리들도 나름 복작거리며 즐겁게 살아간다. 물론 이렇게 쉼터생들과 가까워지면, 너무 가까워지는 것도 좋지 못하다는 사실도 나중에는 알게 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