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전환점(1)

당신의 인생은 언제 바뀌기 시작했나요

by Liberte 자유

한국을 떠나 일본으로 온 지 햇수로 18년, 일본에서 유럽으로 주재원을 나와 3년째를 맞이하며 어느새 30대 중후반이 됐다. 군대 2년을 제외하고 정확히 인생의 절반 정도를 해외에서 보내고 있는데 나는 몰랐다. 내가 이런 삶을 살고 있으리라고는. 이곳은 내가 걸어온 나의 길을 적어두는 몇 장의 페이지이자 앞으로 걸어갈 길의 이정표가 되길 바란다.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 애증의 나라라는 수식어로 표현될 만큼 한국인에게 있어 특별한 국가 중 하나일 것이다. 딱히 일본에 대한 어떤 인연이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출판사에 다니셨던 아버지는 종종 일본으로 출장을 가서 일본어로 된 책을 한 아름 안고 돌아오시곤 했다. 집 안 곳곳에 꽂혀 있는 일본어로 된 책을, 읽지도 못하면서 종종 넘겨보는 게 뭔가 신기한 기분이 들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때까지 접해보지 못했던 일본이라는 나라를, 그것도 한꺼번에 물밀듯이 밀려오는 일본을 받아들이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

요즘 세대에게는 이게 무슨 말이야 싶을 수 있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은 일본의 음악, 영화, 드라마를 수입하지 않았고 1999년도부터 점차적으로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게 됐다. 내가 기억하는 일본 문화 개방은 2000년대에 들부터인데 나는 레코드 가게에 늘어선 나카시마 미카(中島美嘉)와 하이도(HYDE)의 CD앨범을, 한참이나 들여다봤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일본에 대한 호기심이 폭발하기 시작한다. 나카시마 미카의 앨범 속 노래는 내가 그때까지 들어오던 한국 가요들과는 조금 다른, 설명할 수 없는 분위기의 곡들이었고 (당시 수록됐던 곳이 눈의 꽃, 雪の華이었다) 이 나라에는 어떤 가수가 어떤 노래를 부를까를 찾아보며 X JAPAN, 라르크앙시엘(L'Arc〜en〜Ciel), 비즈(B'z), 글레이(GLAY)와 같은 J-Rock 음악에 빠지고 말았다.


일본의 대중문화를 접하면서 자연스레 그 나라에 대한 관심도 커져갔고, 학교에서 신문부 활동을 하며 미디어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장래 희망을 품고 있던 나는 일본의 대중문화를 전달하는 미디어에 대한 관심 또한 남달리 부풀어갔다. 그들의 신문, 잡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방대한 규모의 산업이었고 방송 콘텐츠 또한 그랬다. 용돈을 모아 대형 서점에 들어오는 일본 잡지를 사 모았다. 이 나라는 도대체 뭐 하는 나라인데 아시아의 작은 섬나라에서 이런 텐츠를 생산해 내고 있는 걸까. 지금은 한국의 문화가 전 세계적인 열풍이라지만 당시의 일본은 나에게 매우 신기한 동경의 대상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던 중, 아버지께서 작은 팸플릿을 들고 오셨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 일본유학시험(EJU)에 관한 팸플릿이었는데, 한국에서 시험을 치르고 일본의 대학으로 진학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아버지는 오랫동안 근무했던 출판사를 그만두고 일본과의 무역업으로 본인 사업을 시작했고 일을 위해 종로의 일본어 학원을 다니고 계셨다. 그 학원에서 일본 유학 시험에 대한 정보를 얻어 오신 것이었다. 이런 길도 있으니 한번 생각해 봐라. 해 볼 마음이 있다면 필요한 지원은 해주겠다.


유학이라니. 유학. 내 인생 첫 번째 전환점. 이때를 기준으로 내 인생은 바뀌고 말았다. 바뀌었다고 할까 내가 한 선택이니 스스로 방향을 틀었다고 할까. 이때는 몰랐다 내가 한국을 (적어도 현시점에서는) 영영 떠나게 될 것이라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