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양, 관광, 모험 그리고 여행

우리는 무엇을 위해 여행을 할까

by 여행하는살별

우리는 여러 가지 형태의 여정을 모두 “여행”이라는 단어로 단순화하여 부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행의 세 형태인 휴양과 관광, 모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애정하는 유튜브 채널 '이종범의 스토리캠프'의 캠장이신 이종범 작가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정의 압력”이라는 개념이 이 세 가지를 나누는 기준이 됩니다.


유명 휴양지 몰디브

세 유형 중 압력이 가장 낮은 것은 휴양입니다. 우리가 휴양지를 찾는 것에는 다른 목적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바다를 보고 편히 쉬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전부입니다. 휴양에서는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가하는 일이 좀처럼 발생하지 않습니다. 휴양지에서의 우리는 그저 주어지는 상황을 즐기기만 하면 됩니다.


역사적 명소로 유명한 관광지 로마

관광은 휴양에 비해서는 압력이 확연히 높습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보기 위해 관광지를 찾습니다. 역사적 명소일 수도 있고, 하늘 높이 솟은 마천루일 수도, 힙한 번화가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관광지를 방문하는 경우에는 많은 것을 보기 위해 바쁘게 움직입니다. 그러다 보면 휴양을 떠났을 때에 비해서는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러나 패키지 관광을 비롯해 오로지 관광만을 목표로 하는 여정을 떠난다면, 세밀하고 빡빡한 계획이 짜여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잘 짜인 계획에 따라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예상에서 벗어난 일을 마주할 확률이 그리 높지는 않습니다.


어니스트 섀클턴의 인듀어런스 호

모험의 경우에는 대개 여정의 압력이 가장 높습니다. 보통 휴양지나 관광지에서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는 무엇인가를 만난다는 것은 대개는 불행한 일입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은 불운입니다. 물론 때로는 관광을 떠났을 때 예상하지 못한 장소에서 기대보다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할지도 모릅니다만, 일반적으로는 기차가 연착된다거나, 보고 싶었던 유명 장소가 휴관 중이라든가 하는 등 계획이나 예상을 벗어나는 일을 만나면 피로해지고 짜증이 나기 쉽습니다. 그러나 모험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모험은 오히려 예기치 못한 일을 마주하기 위해 떠나는 것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모험을 떠납니다. 모험을 떠날 때 우리는 목적을 가지고 떠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모험은 우리에게 그 목적과 다른 것을 가르쳐줍니다. 모험의 목적을 달성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지만 모험의 진정한 가치는 목적 달성의 여부와 다른 곳에서 옵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탐험가 중 하나인 어니스트 섀클턴은 남극 횡단을 목표로 제국 탐험대를 꾸려 모험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그의 배 인듀어런스는 해빙에 갇혀 부서지고야 말았고, 섀클턴은 남극 횡단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는 이미 이전에도 한 차례 남극점 도달을 목표로 탐험에 떠났다가 실패하고 돌아온 경험도 있었습니다. 섀클턴이 위대하다고 불리는 이유는 그가 남극점 정복에 성공해서도, 남극 횡단에 성공해서도 아닙니다. 오히려 섀클턴은 그 두 가지 모두에서 실패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는 그를 위대한 탐험가로 기억합니다. 그가 위대해진 이유는 바로 그 끔찍한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전 대원의 생환이라는 기적을 일구어 냈기 때문입니다. 섀클턴은 배를 잃고 무인도에 갇힌 절망적인 상황에서 조각배를 타고 전 세계에서 가장 거친 바다인 드레이크 해협을 건너 1300km에 가까운 거리를 지나 구조 요청을 했고, 덕분에 제국 탐험대의 모든 대원은 단 한 명의 이탈도, 사망도 없이 구출될 수 있었습니다. 섀클턴은 원래의 계획과 전혀 다른 상황을 마주했지만, 결국 이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위대한 탐험가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모험에서 우리는 원래의 목적과 전혀 다른 것을 마주할지도 모르지만, 그 나름대로 무엇인가를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대개는 그렇게 배우게 된 것은 원래 목적을 달성하는 것만큼의, 때로는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집니다. 모험의 진정한 가치가 목적 달성의 여부와 별개라고 언급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섀클턴뿐 아니라, <호빗>의 빌보를 비롯해 모험담을 다룬 수많은 문학작품들의 주인공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행을 떠날 당시의 여행자의 심리상태는 이러한 여행의 형태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휴식을 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떠난다면 그 여행은 휴양에 가까운 형태가 되겠지만, 보고 싶었던 명승지를 직접 보기 위한 목적으로 떠난다면 관광에 무게가 실릴 겁니다. 특별한 계획 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해 잘 모르는 곳으로 떠난다면 모험에 가까운 여행이 될 것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형태의 여행은 모험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섀클턴의 제국 탐험대처럼 목숨이 걸린 모험을 하고 싶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제가 여행을 떠날 때 갖는 기대는 대부분 "예상하지 않은, 계획하지 않은 상황"에 놓이게 되리라는 기대입니다. 유명 도시로 떠날 때도 저는 이미 널리 알려진 관광지를 방문하는 것에 대한 기대보다는 그 도시에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계획에 없는 낭만적인 여행지를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이렇게 예기치 못한 상황을 추구하는 것은 아마도 항상 "낭만"을 찾는 저의 성향으로부터 생긴 습성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평소 일상에서는 루틴화된, 계획이 짜여 있고 매일이 반복되는 예측가능한 삶을 살게 되는 만큼 일상에서 벗어난 여행에서는 그러한 계획이나 예측과는 반대되는 방향의 경험을 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물론 우리가 이 휴양, 관광, 모험 중 단 한 가지 목적만 가지고 여행을 떠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휴양지로 떠나서도 휴양지 인근의 관광지를 방문하기도 하고, 유명 관광지를 보는 것을 목표로 여행을 떠나더라도 모험심을 가진 채 예기치 못한 경험을 기대하며 가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휴양도, 관광도, 모험도 섞인 형태의 여행을 합니다.

결국 여행은 단순히 목적지에 도달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계기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결정된 한 가지 형태의 여행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에서 만나지 못하는 ‘우연’을 만나기 위해 떠납니다. 그렇다면 진짜 여행이란 모험의 압력을 조금이나마 감수하면서, 예상치 못한 순간들을 겪기 위해 떠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여행을 계획하며 보통 ‘어디로 갈지’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더 중요한 질문은 ‘어떤 형태의 여정을 원하는가’ 일지도 모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여행이란 결국 예상과 일상의 궤도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금요일 연재
이전 02화책장 속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