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여행의 낭만을 심어준 것
연재를 시작하며 여행에 대한 제 개인적인 로망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어린 시절 운이 좋게도 많은 가족 여행을 다닐 수 있었던 것도 분명 영향을 미쳤겠지만, 저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역시나 어린 시절부터 읽어왔던 책들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책을 매우 좋아하는 학생이었습니다. 학교 도서관은 제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 중 하나였고, 도서관에서 책 두 권을 빌려 하루 안에 모두 읽은 후 바로 다음 날 다시 도서관을 찾아 책을 반납하고 또다시 두 권을 빌려 나오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의 1인당 대출 한도는 두 권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읽었던 책은 메리 포프 오스본의 <마법의 시간여행> 시리즈와 엘리자베타 다미의 <제로니모의 환상 모험> 시리즈였습니다.
<마법의 시간여행>은 펜실베이니아 주에 사는 남매 잭과 애니가 집 근처의 숲에서 찾은 오두막집을 타고 다양한 모험을 하는 내용을 다룹니다. 아서 왕 신화에 나오는 마녀 모건 르 페이의 소유인 이 나무집은, 오두막 속에서 책을 펴고 "이곳에 가고 싶다."는 주문을 외면 그 때 그 장소로 갈 수 있는 마법의 오두막집입니다. 잭과 애니는 이 마법의 나무집을 타고 공룡 시대부터 고대 이집트, 아메리카 대평원과 르네상스 시대, 전설 속 캐멀롯 왕국과 미래시대 달 기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공간을 오가며 많은 여행을 합니다.
<제로니모의 환상 모험>은 쥐토피아 신도시에 사는 생쥐 제로니모 스틸턴이 겪는 다양한 모험들을 전합니다. 제로니모는 주인공이자 작가로서 1인칭으로 모험을 전달하는데, 이 설정의 몰입감을 위해서인지 책에는 "제로니모 스틸턴" 명의의 저자 설명만 존재합니다. 어릴 때도 물론 진짜 생쥐가 책을 썼다고 믿지는 않았지만, 작가가 자신의 이름을 주인공의 이름으로 썼겠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실제 작가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꽤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제로니모는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거나, 꿈속 판타지 세계로 가서 놀라운 모험들을 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아틀란티스를 방문하고, 판타지 세계에서 요정과 용도 만납니다.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이 두 시리즈는 어릴 적 제게 여행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었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그것을 잘 인지하지 못 하고, 단지 재미있는 책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에도 물론 그와 비슷한 모험을 하고 싶다는 상상을 했지만, 당시에는 그저 막연한, 망상에 가까운 상상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꽤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생각해 보니 지금의 제가 여행이라는 단어, 여행이라는 개념에 대해 가지고 있는 "모험"에 가까운 낭만적인 느낌과 환상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이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후부터 중학교 때까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J.K.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가 되었습니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물론 이미 전술했거나 후술할 다른 책들과는 달리 본격적인 모험물은 아닙니다만, 그러한 성격을 충분히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모험이라고 하면 공간의 변화만을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머물고 있더라도, 우리는 낯선 시공간에 도착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일종의 여행으로 여겨지기 충분한 개념입니다. 작가 김영하는 저서 <여행의 이유>에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겪었던 경험을 하나의 여행과도 같았다고 설명합니다. 물리적으로는 같은 공간에 머물고 있었지만,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사회적인 시스템이 변화하며 전혀 다른 곳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해리 포터 시리즈 역시도 이야기의 전개 배경은 대부분 "호그와트"라는 제한적 장소입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매 학년 새로운 모험을 겪습니다. 7권 <죽음의 성물>에서는 '호크룩스'를 찾기 위해 정말로 물리적 여행을 떠나기도 합니다.
지금은 해리 포터 시리즈의 책을 자주 다시 읽거나 영화를 자주 돌려 보지는 않지만 중학교를 다니던 당시에는 정말 여러 번 돌려 보았던 시리즈였습니다. 지금의 저는 <해리 포터>가 가장 잘 쓰인 판타지라고 생각한다거나 가장 좋아하는 책이 <해리 포터>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지는 못하지만, 그 당시 수없이 읽고 또 읽었던 이 책이 지금의 저를 형성하는 데 아주 많은 영향을 준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해리가 호그와트로 향할 때마다 매년 반복되는, '익숙하지만 단조롭고 불편한 장소를 떠나, 예상하기는 어렵지만 즐겁고 놀라운 일이 가득한 곳으로 향하는' 플롯은 제가 여행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도 거의 비슷합니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J.R.R. 톨킨 교수의 <호빗>과 <반지의 제왕>이 앞서 언급했던 다른 책들의 자리를 대체하게 되었습니다. 호빗 실사영화 시리즈 1편의 부제인 "뜻밖의 여정"이라는 표현은 지금까지도 제가 꿈꾸는, 가장 떠나고 싶은 이상적인 형태의 여행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계획하지 않은 채 뜻밖의 여정을 떠나 예상치 못한 멋진 모험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것. 제게 여행과 모험에 대한 이런 구체적인 환상을 심어준 작품은 바로 이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위 두 책을 비롯한 톨킨 교수의 작품들에서는 지속적으로 '여행' 또는 '모험'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합니다. 이 내용은 별개의 글로도 다시 다뤄볼 가치가 있다고 느껴, 추후 다시 다뤄보겠습니다.
이처럼 제가 지금 여행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올리는 "모험"에 가까운 가슴 뛰는 느낌은 어렸을 적 읽었던 책들로부터 형성된 무언가임에 분명합니다. 저는 MBTI로 이야기하자면 P 성향이 한없이 높은 사람인데, 이는 특히 여행을 떠날 때 더욱 두드러집니다. 이 역시도 어릴 때 제가 동경했던 모험들은 계획을 세우고 안전하게 떠나 관광지를 보고 돌아오는 형태의 여행이 아니라, 의도와 다르고 예상을 벗어나며 때로는 다소 위험할 수도 있는 모험들이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왜 여행을 떠나는가? 그 답이 어린 시절 읽은 모험담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저에게는 무척 흥미롭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여행이란, 어릴 적 책에서 배운 대로, 예상하지 못하는 모험입니다. 계획한 것보다 계획하지 않은 일이 많고, 머릿속에 그려둔 풍경과는 전혀 다른 장면을 만나는 것. 어쩌면 저는 어릴 적 책장을 넘기며 느꼈던 그 두근거림을, 지금도 여행에서 찾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