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윌리엄스의 <타격의 과학>

가장 완벽한 4할 타자의 야구 이야기

by 여행하는살별
실력과 그 증거인 기록 하나만 놓고 본다면 테드 윌리엄스는 단연 당대 최고, 아니 역사상 최고의 타자임이 분명하다. 그는 당대의 라이벌 디마지오와 뮤지얼에 비해 타율, 장타율, 홈런, 볼넷 수에서 단연 앞선 기록을 남겼으며 스탠 뮤지얼에게 타점과 득점 기록에서만 약간 뒤졌을 뿐이었다.... (중략)... 물론 베이브 루스에 비해서는 홈런이 적었고 타이 콥에 비해서는 안타 수가 적었다. 하지만 그는 '베이브 루스에 버금갈 정도로 많은 홈런과 장타를 날리는 동시에, 타이 콥에 버금갈 정도로 많은 안타와 높은 타율을 기록한' 완벽한 타자였다.
- <타격의 과학> 서문 中

지난겨울, 친구와 함께 서점에 들러 책을 몇 권 샀다. 평소에 사고 싶었던 몇 권의 소설과 과학 교양서를 고른 후에는, 자연스럽게 스포츠 코너로 발을 돌려 야구에 관한 책들을 훑어봤다.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책은 테드 윌리엄스가 쓴 <타격의 과학>이었다. 제목에 들어있는 '타격'과 '과학'이라는 워딩에 끌렸던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작가의 이름이 더 내 주의를 끌었다. 메이저리그의 전설, 테드 윌리엄스. 사실 스카우팅 리포트 정도를 제외하면 야구에 관한 책에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기에, 동네 서점에서 야구 역사상 한 손에 꼽히는 전설적인 선수가 직접 쓴 책을 발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조금의 고민도 하지 않고 이 책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이 책의 공식적인 원래 부제는 <메이저리그 마지막 4할 타자의 야구 이야기>이다. 실제로도 테드 윌리엄스라고 하면 "마지막 4할 타자"라는 타이틀이 가장 유명하다. 1941년, 반올림해서 4할이 되는 .39955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던 중에, 당시 감독이 마지막 날에 테드를 출전시키지 않으려 하자 "오늘 안타를 치지 못해서 4할이 깨진다면 나는 4할 타자가 아닌 것이다."는 멘트를 남기고 마지막 더블헤더 두 경기에 출전해 여덟 타석에서 6개의 안타를 치며 4할 6리의 최종 기록을 남겼다는 스토리는 메이저리그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매우 유명하다. 하지만 지난 2020년 니그로리그의 기록을 메이저리그 공식 기록으로 편입하는 것이 결정되면서, 테드는 더 이상 메이저리그의 마지막 4할 타자는 아니게 되었다. 테드가 4할을 기록한 지 2년이 지난 1943년, 니그로리그에서 조시 깁슨이 4할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드 윌리엄스를 이야기하면서 "4할 타자"라는 타이틀 없이 이야기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제를 민하던 중 이 책의 서문에 나오는, 이 글의 첫머리에 인용한 부분이 떠올라 글의 부제를 <가장 완벽한 4할 타자의 야구 이야기>로 정했다.

테드 윌리엄스의 가치는 단순한 4할 타자에 그치지 않는다. 타자로써는 통산 .482의 출루율(MLB 역대 1위), 1.116의 OPS, 130.4의 fWAR을 기록하면서, 여전히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타자를 꼽을 때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당연히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된 선수다. 또, 지금은 메이저리그와 KBO 모두에서 수비 시프트가 금지되면서 보기 힘들어졌지만, 좌타자 상대로 수비수를 오른쪽으로 당기는 시프트의 명칭인 '테드 윌리엄스 시프트'라는 말에서도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테드 윌리엄스는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서 파일럿으로 복무하기도 했다. 1943~1945년과 1952~1953년 테드의 출전 경기수가 매우 적거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5년 간의 참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테드는 야구 역사상 손에 꼽히는 통산 성적을 기록했다. 4할 타자라는 타이틀이나 출루율이 높은 타자라는 인식 때문에 장타율이 상대적으로 저조했을 것이라는 오해도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위의 OPS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장타율 역시 .634로 매우 뛰어났다. 글의 첫머리에 인용한 대로, 또 글의 부제에서 언급한 대로 테드 윌리엄스는 '베이브 루스에 버금갈 정도로 많은 홈런과 장타를 날리는 동시에, 타이 콥에 버금갈 정도로 많은 안타와 높은 타율을 기록한', 야구 역사상 가장 완벽한 타자였던 것이다.

우리는 야구 역사상 가장 완벽한 타자가 직접 쓴, "타격의 절반은 머리로 하는 것"이라는 선언을 남긴 이 책을 통해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타자의 타격 어프로치에 대해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워런 버핏의 투자 원칙을 설명하는 데 인용되기까지 한 이 책이 과연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놀랍게도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감상은 "너무 당연한 내용 아니야?"였다. 책에서 말하는 내용의 대부분이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한 너무 상식적인 내용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야구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이나 재밌고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로 "타격"에 대한 진지한 분석이 담긴 책이다. 이 책이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타자 가운데 한 명이 작정하고 분석해서 쓴 타격 이론서임에도 불구하고 상식적이라고 느껴지는 이유는, 이 당시에 테드가 썼던 선구적인 내용들이 너무도 합리적이고 합당한 내용인지라 현대 야구에 와서는 이미 상식으로 굳어진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3-1 상황에서는 직구를 노려라.", "직전 타석에서 커브에 당했다면 그다음 타석에서는 커브를 노려라.", "대기 타석에 루 게릭을 세워 둔 베이브 루스라면 투수의 공을 적극적으로 노려야 하지만, 1할 타자가 즐비한 팀 타선의 유일한 3할 타자라면 볼을 골라내는 것이 현명하다." 따위의 내용들 말이다. 지금은 야구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너무나 당연한 상식과도 같이 여겨질 내용들이지만, 이런 내용들에 분석적으로 접근하면서 야구를 재능과 요령의 문제에서 논리와 분석,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최초의 시도를 한 사람이 바로 테드 윌리엄스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러한 테드의 타격 이론들을 집대성한, 그야말로 타격의 바이블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물론 테드가 이 책을 집필한 것은 1970년대이고, 그 이후 5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며 당시 테드의 이론 가운데에는 현재 이론과 다른 내용 또한 많다. 하지만 최초로 타격에 대해 분석적으로 접근했던 이 선구적인 책의 가치는 다른 어떤 야구 서적들과 비교해도 독보적인 위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상식적인 이야기도 많긴 했지만, 또 그와 동시에 새롭게 느낄만한 내용들 역시 많았다. '야구팬'으로써는 생각해 보기 힘든, '타자'로써 생각해 볼 법한 내용들이었다. 평소 투수 중심으로 야구를 보는 습관이 들어 있는 나에게는 꽤나 새롭게 느껴졌다. 스트라이크존을 세분화하여 좋은 공을 선택하는 것의 중요성이나, 타격 자세에 관한 구체적 조언, 스윙 메커니즘에 대한 부분이 그러했다.


1970년의 테드 윌리엄스와 2024년의 독자 간 관점의 차이로 인해 보이는 재밌는 포인트들도 존재했다. 테드는 1941년 올스타전에서 상대한 투수 클로드 파소의 구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빠르지만 마치 슬라이더처럼 살짝 휘는 공", "슬라이딩패스트볼". 이 설명은 우리가 커터 혹은 컷패스트볼이라고 부르는 구종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1970년은 커터의 창시자인 마리아노 리베라가 메이저리그에 지명되기 20년 전이기 때문에, 아직 커터라는 명칭이 없던 것이 당연하다. 커터라는 명칭이 생겨나기 이전, 슬라이더도 아니고 직구도 아닌 이 요상한 구종을 '슬라이딩패스트볼'이라고 표현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로웠다.


평소 스스로를 가벼운 야구팬이라고 여긴다면 이 책은 다소 어려울 수 있다. 야구에 관한 개론서가 아니라 진짜 타격 이론서이기 때문이다. 타격 메커니즘에 대한 구체적 조언이 담겨 있고, 타석에서 타자가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역설한다. 그러나 이 책의 진짜 가치는, 이전에는 그저 몸으로 하는 요령과 타고남의 영역인 "운동"이었던 야구를 합리적인 과학의 영역으로 바꿔놓았다는 점이다. 이 책은 야구 팬에게 타자의 시선에서 야구를 볼 수 있게 해준다. 야구를 즐기는 새로운 시야를 트이게 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테드는 이 책에서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타격만큼 어려운 것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사실 스포츠 뿐 아니라 어떤 분야를 보더라도 전체의 30퍼센트만 성공했음에도 잘 한다고 여겨지는 일은 드물다.) 그리고 그 어려운 타격을 누구보다도 잘 해냈던 사람인 테드의 이 책은, 야구를 넘어 워런 버핏의 투자 이론을 설명하는 데 인용되기까지 했다. 테드 윌리엄스의 이 책은 단순한 야구 기술서가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과 통찰이 어떻게 위대함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증거이다. 그가 타격을 과학으로 승화시킨 이 책은 야구의 영역을 넘어, 오늘날 데이터와 분석이 중시되는 모든 영역에 통찰을 제공한다. 그가 말했듯, 30퍼센트의 성공조차 위대함으로 여겨지는 타격처럼, 이 책은 우리에게 실패 속에서도 나아갈 길을 찾는 법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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