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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빵 Oct 24. 2021

[리뷰] 다큐멘터리 : 미디어 재판

마이크를 쥔 손

it doesn't matter about the law

법은 중요하지 않아요

it's about being able to tell a story

중요한 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느냐죠

다수의 관심을 받을 만한 일이라면 누군가 그 냄새를 맡고 마이크를 들이민다. 물론 그들은 그저 말을 전하는 매체일 뿐 직접 말을 하지는 않는다. 실은 그렇게 보이도록 만든다. 무엇에 마이크를 켤지, 누구에게 마이크를 건넬지, 뱉어진 말 중에서 무엇을 헤드라인으로 뽑을지. 모두 마이크를 쥔 손들이 결정하지만 일단 전달만 했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책임은 마이크에 말을 담은 사람들에게 돌아갈 뿐이다. 앞에 놓인 마이크에 연결된 폭탄을 모른 채 말을 뱉었다는 이유만으로.




when you turn a courtroom into a studio

법정을 스튜디오로 바꾸면

you have to turn reality into a story

현실을 이야기로 바꿔야 해요




그들은 전문가다. 교묘하게 잘 짜인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을 훈련받은 전문가. 다큐멘터리에서 한 전문가는 말한다. 무지성한 사람들의 정신을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우리를 억압하려는 것은 엘리트주의며 모두에게 공정하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자신이 존재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들은 시청률을 위해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길 좋아한다. 그 과정에서 과연 '공정한'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있는지 의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왜 일반인이 공인이 되는 일의 위험성을 알려주지 않았는지, 내용의 정확성보다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는 이야기를 더 강조했는지, 자신들은 왜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처럼 모습을 감추고 있는지 설명해 줘야 한다.


비난보다 무서운 게 무관심이라고들 한다. 이러한 맥락에 따라 다수의 비즈니스가 그러하듯 미디어 역시 관심을 받지 못하면 경쟁에서 밀려 사라진다. 문제는 미디어가 관심을 끄는 미끼가 실시간으로 살아 움직이는 현실이라는 사실이다. 영화나 드라마의 인물들은 명확하게 부여받은 역할에 맞춰 행동하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은 겨우 2시간, 길어야 몇 달에 함축해서 다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지 않다. 실시간으로 살아가는 현실의 인간은 오직 실시간으로 그 생애 전체를 겪어보지 않는 이상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자 노력하게 되는데, 이때 제한된 시간과 정보를 이용해 예측을 한다. 이 법칙은 미디어 전문가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은 각자의 머릿속에서 예측을 통해 이야기를 만든다. 단, 여기서 주목할 차이점은 가장 합당한 가설을 택해야 한다는 마음 위에 가장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with good guys, and bad guys, drama

좋은 놈과 나쁜 놈이 등장하는 드라마로요




물론 그들이 가진 소재는 그들이 아니라면 우리가 알 수도 없었을 수 있는 것이었을 수 있다. 우리의 알 권리를 위해서 그들의 특권은 어느 정도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돈과 권력을 가지고 휘두르는 이들을 견제하려면 그들의 돈과 권력이 부당하게 쓰이고 있지 않은지 감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늘 그렇듯 이 특권이 특정 소수에게 몰리면 결국 감시자들에게도 권력과 돈이 따라붙으며 문제가 생긴다. 우리와 별 다를 바 없는 이 사람들이 쥔 마이크에 권력자들의 힘이 실린다. 단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그들의 존재를 유지한다거나, 사람들의 더 많은 사람이 자신들에게 집중하게 만들어 그들이 가진 정보를 널리 퍼뜨린다는 것만으로 합리화될 수 없을 정도의 힘이 어쩌다 보니 실렸다고 넘어가도 될까. 이 고민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예시가 바로 이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미디어 재판이다.




if everybody in the building likes these guys,

여기 있는 모두가 어떤 사람을 좋아한다면

they must be the good guys, right?

그 사람은 좋은 놈이 되는 거잖아요?




마이크에 말을 뱉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처음 우리가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을 하던 때를 기억하는가. 그 어색하고 당황스러움에 어버버 이상한 말을 뱉던 모습을 말이다. 말은 내 생각과 마음을 다 대변해주지 못한다. 말과 언어는 우리가 만든 산물이라 이것을 배우고 사용하는 데에는 많은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친한 사람과 가볍게 나누는 대화와 많은 사람 앞에 서서 연설하는 법은 완전히 다르다. 토론 수업만 들어보더라도 사실 여부를 따지는 법이 아니라 상대의 주의를 돌리고 나의 말이 중요해 보이는 법을 배운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을 하는 법은 그런 것이다.


미디어 재판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훈련을 전혀 받은 적 없는 사람들은 주인공으로 세워두고 만약 그들이 신문이나 방송에 내보내지 않았다면 이 일이 존재하는지조차 몰랐을 이들을 방청객으로 세워 그들이 제작, 기획, 연출한 쇼를 평가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쇼가 진행되는 동안에 사람들을 붙잡아 두기 위해 눈을 뗄 수 없는 불안 요소를 공급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조종하기도 한다. 어쩌면 덕분에 사람들은 반짝이는 조명 속 화려한 쇼를 보느라 극장 밖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렇게 감동적인 하나의 극이 끝나면 새로운 주인공을 찾아 다음을 준비하는 그들이 인종차별주의자 같은 고집불통이 아니라는 점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하필 그들에게 캐스팅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and ratings are money

시청률이 돈이니까요

let's stop right here

여기까지 하죠

https://youtu.be/2DVpSHeF6ZI

https://www.netflix.com/kr/title/80198329?s=i&trkid=13747225&vlang=ko&clip=81072065

가짜 뉴스 문제가 심각하다는 기사를 종종 보곤 한다. 기사를 보면 종종 의문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내가 이제까지 본 뉴스들은 모두 진짜인가. 진짜를 판단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오보와 가짜 뉴스를 내가 구분할 수 있을까. 흔히 우리가 방송국, 신문사라고 부르는 이들이 전하는 이야기가 진짜인지는 누가 판별해 줄 수는 있는 걸까. 나는 언제 그들이게 그런 권력을 줬는가. 청와대까지도 출입증을 받아 출근하는 사람과 그저 청와대에 관심이 많은 3자가 각각 뉴스를 만든다면 전자의 작품이 더 신뢰할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은 판단인가. 겨우 착시현상에도 속는 나의 눈이 진실을 제대로 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가짜 배고픔도 만들어 내는 나의 머리가 하는 판단을 그동안 너무 의심 없이 믿어왔던 건 아닐까. 증명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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