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출신 영화의 미래, 그것에 대한 답
브누아 블랑 탐정?
Benoit blanc, the detective?
초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I cannot overstate my gratitude to be here
살인 추리극은 언제 시작해?
When's the murder mystery start?
영화 아바타가 영화관과 영화 사이에 이어진 탯줄에 혈기를 불어넣으며 13년만 관객을 찾았다. OTT의 확산으로 개인 공간에서 홀로, 혹은 익숙한 사람 몇몇과 영화를 소비하는 모습이 더 익숙해진 요즘. 굳이 타인 사이에 끼어서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는 곳으로 가기 싫은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게다가 심심하면 가격이나 올려대는 이들의 심보가 괘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말이다.
영화는 현실을 그대로 기록하고자 한 인간의 욕심으로부터 시작됐다. 실물 같은 그림의 가격이 비쌌던 만큼, 빛을 그대로 기록하는 사진 필름도 비쌌고, 그것을 이어 붙여놓은 영화 필름 뭉텅이의 가격도 비쌌다. 그 희귀하고 귀한 자원을 살 수 있던 누군가는 ‘상영비'를 받아 필름보다 큰돈을 벌어들일 생각을 했다. 결국 영화가 영화관에서 태어난 이유는 돈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이후, 방송이 등장하며 집에서도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배급자는 소수였다. 영화는 그저 예술이라는 명목하에 영화에 더 깊이 집중할 수 있는 영화관에 틀어지면 되었다. 문제는 지금. 배급사가 늘어나고, OTT에서 그 소비에 맞춘 영상들을 제작하며 집에서 영화를 소비하게 된 지금이다. 영화관까지 갈 이유. 아바타는 그것을 ‘영상미’로 답했다. 물론 단지 영상미가 모든 해답은 아니겠으나 분명 하나의 중요한 명분이 된다는 걸 증명해 냈다.
우리 이 뜬금없는 방 안 코끼리에
대해 이야기할 거야?
Are we gonna talk about
the elephant in the room?
내가 그 코끼리야?
Am I the elephant?
그래. 네가 그 코끼리야!
yeah. you're the elephant!
아바타가 영화관 영화의 미래를 보여줬다면, 나이브스 아웃의 후속작 ‘글래스 어니언’은 OTT 영화의 미래를 보여줬다. 차이는 전자는 긍정적인 미래를, 후자는 부정적인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영화는 제목 그대로 유리로 된 양파 같다. 겹치고 겹쳐서 복잡한 척 하지만 분명하게 속이 보인다. 미스터리한 상자를 풀며 시작된 영화는 넷플릭스라는 거대 자본을 등에 업고 만들어진 만큼 추리 말고도 다른 미스터리 요소를 추가했구나 예상하게 한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상자를 만든 보람도 안 느껴지게 문제를 빠르게 풀어내는 인물들 사이로 한 명이 망치로 상자를 부순 때다.
복잡한 한 꺼풀을 벗기고 보면
몇 꺼풀이 더 나오고 실속은 없죠
Why every complex layer peeled back
has revealed another layer and onother layer
and come to naught
저는 복잡한 것을 예상했고, 지적인 것을 예상했고,
퍼즐과 게임을 예상했지만, 이건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I expected complexity, I expected intelligence
I expected a puzzle, a game.
But that's not what any of this is
어몽어스를 하며 등장하는 탐정. 이미 유명한 배우들의 출연. 어그로를 끌기 좋은 논란거리가 될 소재. 개인 맞춤 광고를 위한 알고리즘의 등장. 조회수를 끌기 적당한 해시태그는 미디어 세계의 무기로 자리 잡았다.
영화관처럼 실존하는 공간을 제공하지 않는 OTT 입장에선 해시태그에 목을 매달아야 하는 것이다. 대세를 잡은 OTT지만 점점 더 짧은 미디어가 인기를 얻는 소비자의 대세에 올라타지 않으면 뒤쳐지는 건 한 순간이다.
그 부담감 때문인지, 오리지널 시리즈로 결제를 유도하던 OTT들은 이제 해시태그와 함께 사람들의 시선을 끌 시리즈를 대량 생산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해시태그가 많을수록 많은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다.
‘나이브스 아웃’은 머리를 짜내는 추리극이 효율성 측면에서 다른 장르들에 밀려갈 때 반짝 나타난 영화다. 짧은 호흡과 클래식한 화면 연출이 타당한 논리력과 함께 버물어졌다.
그 영화의 감독을 맡았던 ‘라이언 존슨’이 후속작을, 넷플릭스와 함께, 만든다는 소식에 추리와 미스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설레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 추리극을 만들지 않았다. 겹겹이 쌓은 모호한 스토리 한가운데에 범인을 놓았다. 그 마저도 어그로성 스토리만 이어지다가 겨우 후반부에 욱여넣어진 반전극 정도만 있다.
영화 곳곳에서 이 영화는 추리극이 아니라는 자조가 나온다. 부와 명예를 누리는 인물들의 멍청함을 강조하는 건 어떤 분노에서 온 걸까. 그럴듯하게 꾸며진 자본의 번지르르함 속에 찍어내지는 스토리들에 대한 감독의 항성일까. 아니면 그러길 바라는 나의 마음일까.
혹은 전편의 부담감에 미스터리 추리극이라는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고는 혁신이라며 합리화하는 감독의 게으름일까.
마일스 말처럼 저는 진실만 말해요
어떤 사람들은 못 받아들이지만요
Like Miles said, I'm a truth-teller
Some people can't handle it
생각 없이 말하는 걸 진실로 착각하는 건
위험한 일입니다
It's a dangerous thing to mistake speaking
without thought for speaking the tru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