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ink Of Me Oct 14. 2024

'나'의 다중자아는 무엇? 핵개인시대를 읽고

다중자아를 가진 핵개인 성시경


“요리랑 음악 중 선택하라고 하면 뭘 선택할래?” 유튜브 채널 <슈퍼마켙 소라>에서 이소라는 본업이 가수인 170만 구독자 성시경에게 물었다. 그 질문을 들은 성시경의 답이 오묘하다. “근데 꽤 울림이 있다. 난 그 만큼 요리를 좋아하는 것 같다” 책의 가장 끝부분에 “다중 자아” 라는 언급을 한다. 책에서는 위계가 존재하는 수직적이고 권위 아래있는 (즉, 조직아래 있는)개인들이 다중자아를 만들어 낸다는 대안적 행동으로 언급한다. 꼭 권위와 수직적 위계와 조직에 구속된 개인만 다중자아를 만들어 낼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다중자아를 갖고 있지는 않을까? 성시경 처럼말이다. 그는 요리를 정말 사랑한다. 그가 올린 요리 레시피와 요리 영상 개수만 봐도 알 수 있다.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다중자아”는 너무 당연한 소리다. 성시경이 가수라고해서, 365일 24시간, 노래만 부르고 콘서트만 할 수 없다. 요리 하고, 수다를 떨고, 운동도하고, 맛집도 가고, 술도 마시고, 반려견과 산책하고 놀기도 한다. 실제로 위에서 언급한 모든것이 <성시경 SUNG SI KYUNG> 유튜브 채널의 컨텐츠다. 성시경을 지우고, 컨텐츠 내용만 보자. 글을 쓰는 ‘나’도 일상에서 다 할 수 있고 하는 것 들 아닌가? 인간을 정의할 때, 특정 하나의 요소로 다 설명할 수 없다. 성시경은 유튜브 채널을 만들기 전에 이미, 요리를 좋아했고, 반려견과 즐거운 일상을 보내고, 술도 즐겨 마시는 사람이다.다만, 유튜브를 통해서 가수가 아닌 자신의 자아를 하나하나 꺼내 전시했다. 


 그 옛날 다모임, 싸이월드 등의 웹기반 SNS때를 돌이켜 보더라도, SNS는 본디 일상을 공유하는 기능을 하지 않았나? 의식주에 관한 것 말이다. 의식주에 각자 자신의 색을 덧입히고, 그런 색이 대중에게 물들 때, 하나의 문화가 탄생한다. 성시경 콘서트의 대다수가 여성이었지만, "유튜브"를 통해서 유통한 "국밥을 사랑하는 성시경”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남성들도 자신의 콘서트에 참여하게하는 통로가 되었다. 성시경이 소개한 맛집들은 영상이 공개된 후 몇시간 씩 줄서서 먹어야하는 기이한(?) 현상을 만들어 냈다. 술을 마시는 법을 소개하면, 구독자들은 그것을 똑같이 따라한다.


 처음 언급한 영상에서 성시경은 유튜브와 가수 중 선택 하라고 하면 "무조건 가수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요리와 가수 중에서 고르라는 질문에서는 "꽤 울림이 있다"고 말했다. 이 언급을 조금 바꿔서 생각해보자. 이름을 걸고 운영하는 채널이지만, 유튜브 채널 자체가 성시경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요리는 성시경에서 빼놓을 수 없다. 이름을 걸고하는 유튜브 채널(플랫폼)은 버릴 수 있지만, 다중자아 중 한 가지인 요리하는 자아는 버릴 수 없다는 뜻이다. 새로 성시경을 소비하는 개인들은 요리만 하는 성시경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국밥을 사랑하는 성시경만 좋아 했다면, 그 남성들은 유튜브채널의 구독자로만 남았을 것이다. 돈을 써서 성시경 콘서트 티켓을 결제 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튜브를 통해 다층적인 성시경을 듣고 보고 접한 개인들은 노래만 부르는 성시경이 아닌, 가수 이면서, 국밥을 사랑하고, 요리를 좋아하는 복합적인 성시경을 좋아한다. 독특하고 고유한 자신의 이야기는 하나의 자아가 아닌 일상을 살아가며 나오는 무수히 많은 자아들의 결합이다.


 유튜브를 비롯한 다양한 SNS 플랫폼 덕분에 개인은 쉽게 컨텐츠 생산자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자신의 컨텐츠를 대중에게 노출 시킬수 있다. 연예인이 아니어도, 방송국을 거치지 않고도 이제 유튜브를 비롯한 다양한 플랫폼으로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서사, 자신의 세계관을 유통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러나, 플랫폼 자체를 우선시 하는 개인은 생존할 수 없다. 유튜브 구독자만 늘리기 위해서, 단순한 인스타 팔로워를 늘리기 위해서, 페이스북 친구를 늘리기 위한 것들 말이다. 누구나 할 법한, 차별성 없고, 고유성이 없는 컨텐츠들은 생존이 안된다. 생산자로 선 개인은 남과 다른 자신의 특별한 이야기와 서사를 들려 줄 수 있어야 한다. 고유성을 갖는 방법이라고 해야할까? 자신의 다양한 자아를 발견해 조화롭게 내 삶에 녹여내는 작업중에 생기지 않을까? 노래만 하는 가수는 많지만, 노래도 하고, 술에 진심이면서, 요리하길 좋아하고, 특히 국밥을 좋아하면서, 반려견과 지내는 솔로이면서 결혼을 바라는 40대의 남성 가수는 성시경 혼자가 아닐까?


 나의 다중자아를 생각해 볼까. 사랑하는 나의 아내의 남편이고. 뱃속에 있는 나의 아들의 아빠이고, 현재는 목수로 일하지만, 목수가 인생의 끝이 아닌, 농촌으로가서 농부로 살고 싶다. 나의 브랜드를 만들고, 직원들과 좋은 조직을 만들고 싶다. 또한, 그런 현장의 경험을 지역개발이라는 이슈로 선교와 연결하여, 나름의 신학적인 학문도 이어가고 싶다. 가능하다면, 이런 나의 다중자아 역시 유튜브로 기록하고 전시하고 싶다.한 여성의 남편, 아이의 아빠, 예수인, 신학, 목수, 농부, 조직의 리더, 어느하나도 나의 요소에서 배제하고 싶지 않다.


 앞에서 언급한 다중자아의 다채로운 색들이, 나의 의식주를 물들일 것이다. 다채로운 일상을 살아내며, 핵개인시대라는 예보에 잘 대비하는 삶이 되기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