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주의 작품과 흥행위주 마켓팅의 비극적 간극
어쩔 수가 없다. 이러면 CJ E&M주가는 다시 떨어진다. 근본적인 원인은 ‘작가적인 감독’의 작품을 ‘대중적인 감독’의 작품인냥 홍보한 언론과 제작,배급사때문이다. 박찬욱감독은 굳이 그의 필모를 살펴보지 않더라도 이미 전 세계를 대표하는 작가주의적인 감독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그리고 이번 작품 역시 정확하게 그런 깊이와 아우라를 보여준다. 비극적 현실을 비틀어 적나라한 인간들의 욕망을 밑바닥까지 다 훑어버리면서도 그것을 결코 무겁지 않게 연출하는 그의 아우라는 이전의 작품들만큼이나 단 한 치도 흔들리지 않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영화를 홍보하는 지향점은 지나치게 대중적이고 세속적인 목표를 이미 제시하고 있었다는 데 비극이 있다. ‘CJ를 살릴 하반기의 기대작’이라는 표현이 아마 대표적인 것일 것이다. 이 문구를 구태여 해석해 보자면 ‘숱한 대작영화들에서 실패를 맛본 CJ가 회심의 역작으로 박찬욱감독의 차기작을 준비했으니 대중 여러분들은 준비를 단단히 하고 그 흥행몰이가 얼마나 대단할지 기대하시라!’는 뜻이다. 하지만 언론과 제작사에서는 혹 이런 마켓팅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을까? 마치 몸에 안맞는 원피스를 억지로 입혀놓고 런웨이를 하도록 모델을 무대로 내미는 모양새가 되리라는 우려는 하지 않았을까?
사실 박찬욱감독의 작가주의적이면서도 동시에 대중적인 지향은 이미 초창기 작품들에서 궁극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공동경비구역 JSA>나 <올드보이>같은 작품들은 강력한 내러티브와 극적인 클라이막스를 통해 영화사의 한 획을 그은 작품들이 되어 버렸지만 사실 그 이후의 작품들, 예를 들면 <박쥐> <아가씨> <헤어질 결심>등은 확실히 작가주의적인 경향이 훨씬 강화되었다. 그리고 이번 작품 역시 그 궤에서 벗어나지 않는 강력한 작가주의적 시선이 작품전반을 지배하는 영화이다. 이렇다보니 극장을 찾아 영화를 감상한 관객들 일부는 자신들이 기대했던 바와 다른 영화의 결을 두고 괴리감을 느끼는 말들을 쏟아낸다. “그렇게 웃기지는 않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좀 어렵지 않냐?” 즉 언론에 자주 등장했던 기사나 홍보자료를 통해 이미 <어쩔 수가 없다>가 베니스에서 기립박수를 몇 분동안 받았고 현지 관객들이 한국의 블랙코미디를 이해하며 웃었다는 등의 정보를 통해 기대감을 갖고 영화관을 찾았던 관객들이 느낄 수 있는 괴리감인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감독이 지향하는 바와 언론이나 제작 및 배급을 맡은 CJ가 지향하는 바의 차이로 인한 현실적인 누수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영화가 개봉하는 첫 날, 단 한 상영관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이런 식의 시사후기를 쓴다는 것이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니냐는 비난을 받을 여지도 충분히 있다고 본다. 자칫 이런 글로 인해 관객들의 기대감을 오염시키지는 않을까하는 걱정도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본질에 관한 이야기는 꼭 하여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궁극적으로 한국 영화계의 경쟁력을 보존하는 길이고 영화산업 전체의 질적인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길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헤어질 결심>은 자본주의신화를 근본적으로 뒤집어 한바탕 광풍이 몰아치는 부조리극으로 만들어버린 감독의 역량이 돋보이는 수작이지만 대중들에게는 호불호가 크게 갈릴 수 있는 작품이라고 보는 것이 맞고 홍보나 마켓팅도 당연히 그런 관점에서 하는 것이 맞았다고 본다. 즉 영화속 주인공처럼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어버려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 된다면 과연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이 대중에게 어떤 식으로라도 어필을 하는 콘텐츠가 필요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영화제에서 스폿트를 받은 스타들의 면면이나 수상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했던 몇몇 기사들 그리고 개봉을 앞두고 연이어 다뤄진 주연들의 예능프로그램들이 그 자리를 채우는 동안 본질은 잊혀지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