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보험을 들고, 도박하고, 복권을 살까

사람들은 왜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가

by 지능의 여백

어릴 적부터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들이 있었다. 가령, 미래를 걱정하며 매달 거액의 보험료를 내는 어머니, 당첨 확률이 거의 없는 복권을 매주 사는 사람들, 그리고 인생이 무너졌음에도 도박을 놓지 못하는 실제 인물들.
나 자신을 합리적이라 믿었던 내 관점에서 그들의 행동은 늘 비이성적으로 보였다.


그러던 얼마 전, 친구와의 대화 중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는 해외여행을 2024년 12월 25일 떠났고 30일에 귀국했다. 그런데 29일은 181명의 사상자를 낸 제주항공 무안국제공항 참사가 있었던 날이었다. 친구는 귀국 비행기에서 극도의 불안을 느꼈다고 했다. 출발하는 날에는 그저 조금 긴장될 뿐이었지만, 귀국하는 날 착륙할 때는 손에 땀이 맺히고 머릿속은 온갖 상상으로 가득 찼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2025년 3월 24일, 강동구에서 싱크홀이 발생했던 날. 나는 평소처럼 동네를 걷고 있었지만, 뉴스 이후 며칠간 “혹시 내가 걷고 있는 이 땅이 무너진다면?”이라는 근거 없는 불안이 나를 휘감았다.
이런 감정은 왜 생기는 걸까?

놀랍게도 보험, 복권, 도박, 공포… 이 모든 건 뇌의 한 부위와 연관이 있었다. 바로 신피질(Neocortex), 특히 주요 기능인 시뮬레이션 기능과 관련 있다.


이 뇌 부위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상상해,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한다. 예를 들어 A와 B 중 어떤 선택이 더 나을지를 미리 시연해 보는 것이다. 이 능력 덕분에 포유류는 초능력을 부여받아 지구의 주인이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부작용도 나타났다.


복권을 사는 사람은 “당첨된다면?”을, 보험에 드는 사람은 “큰 사고가 난다면?”을 시뮬레이션하고, 이에 따른 기대감 혹은 두려움을 실제처럼 느낀다.

문제는 이 시뮬레이션이 너무 자주, 너무 생생하게 반복된다는 점이다. 그 결과, 1%의 확률조차 뇌는 과대평가하며, 99퍼센트의 확률조차 과소평가하게 된다.

경제 이론에서는 이를 가능성 효과(낮은 가능성을 과대평가)와 확실성 효과(높은 가능성을 무시)라 부른다.

예를 들어 8,145,060분의 1의 당첨 확률이 있는 복권은, 실제 확률보다 훨씬 더 큰 기대감으로 다가온다.


반대로, 확률이 낮은 각종 사건사고들은 그 낮은 확률이 마치 현실처럼 무섭게 느껴진다.


이 두 감정은 뇌가 시뮬레이션을 통해 만든 착각이다.

당시 이 원인을 정확히 몰랐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는 이 현상을 다음의 네 가지 유형으로 정리했다:


1. 1만 달러를 딸 확률이 95% 일 때, 사람들은 95%가 아닌 나머지 5%를 시뮬레이션하며 두려워한다.


2. 1만 달러를 딸 확률이 5% 일 때, 사람들은 95%를 무시하고 5%만을 시뮬레이션하며 희망을 본다.


3. 1만 달러를 잃을 확률이 95% 일 때, 사람들은 남은 5%를 시뮬레이션하며 여전히 희망을 본다.


4. 1만 달러를 잃을 확률이 5% 일 때, 사람들은 그 5%를 시뮬레이션하며 불안을 느낀다.


이 네 가지 경우는 읽기만 해도 아이러니하고 낯설게 느껴진다.
실제로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비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고 구조는 우리가 보험에 가입하고, 빚이 있는데도 도박을 하며, 복권을 사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보험은 4번에 해당하며, 최악의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며 마음의 평화를 사는 선택이다.


빚을 잔뜩 진 사람의 계속되는 도박은 3번에 해당하며, 한 방을 꿈꿔, 낮은 확률에 과도한 기대감을 부여한 결과다.


복권은 2번에 해당하며, 0.0001% 확률을 현실처럼 받아들인 뇌의 시뮬레이션이 만들어낸 희망이다.


결국 복권을 사는 사람과 보험에 가입하는 사람은 겉보기엔 반대지만, 둘 다 가능성의 왜곡된 체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자는 희망의 렌즈, 후자는 공포의 렌즈를 쓰고 동일한 뇌 부위를 작동시킨다.

흥미롭게도, 이 뇌의 작동 원리는 단지 개인의 선택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국가, 미디어, 기업들 역시 사람들의 ‘시뮬레이션 본능’을 잘 알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예컨대, 일부 미디어는 특정 정당이 집권하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공포를 조장하며 사람들의 불안을 자극한다.
반대로, 어떤 투자 광고는 “이 주식 하나로 인생 역전!”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희망을 판다.

이처럼 공포와 희망을 자극하는 정보들은 우리의 ‘시뮬레이션 뇌’를 움직이게 하고, 결국 사람들은 확률이 아닌 감정에 기반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그 결정은 종종 누군가의 이익이 된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최근에 읽은 두 권의 책 덕분이었다.
하나는 AI 회사 CEO 이자 연구원인 맥스 베넷의 『지능의 기원』, 다른 하나는 상기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이다.

두 책 모두 인간의 사고 메커니즘과 판단 오류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고 있었고,
나는 그 안에서 내가 오래도록 품고 있던 질문—
“왜 사람들은 보험을 들고, 도박을 하고, 복권을 살까?”(왜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이제 확률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감정이라는 왜곡된 렌즈를 벗고 선택할 수 있는 기준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희망과, 불안, 두려움의 시뮬레이션을 객관화하는 것이다.

불안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많은 분께 이 글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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