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는 인간이다.

기술이 창작을 침범할 때,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

by 지능의 여백
2011년 여름 『사피엔스』 집필을 마무리하면서, 이 이야기로 다시 돌아올 일은 없을 거라 확신했다....(중략: 인류의 역사와 상상 속 질서에 대한 고찰)... 국민 국가나 자유시장 또는 개인의 주권이나 자연의 지배에 기초하지 않은 채로 세계적인 규모로 새로운 상상 속의 질서를 만들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이 책에서 내가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이다. -『사피엔스』 발췌.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 출간 10주년을 맞아, 위와 같은 특별 서문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글은 그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 GPT-3라는 인공지능이 그의 문체를 학습해 작성한 것이었다. 하라리는 이 글을 “잡동사니를 조합한 잡탕”이라 혹평하면서도, 그 완성도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실제로 많은 독자들은 이 글이 인공지능이 쓴 것이라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저작권은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에 대해 창작자에게 부여되는 배타적 권리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면, 그 표현물에 대한 권리는 자동으로 창작자에게 주어진다. 그러나 이처럼 단순해 보이는 정의조차 인간들 사이에서도 종종 논란이 되어 왔으며, 최근의 빠른 기술 발전은 그 개념을 더욱 흔들고 있다. 아래 AI관련 판례를 보자.

AI 패소 사례:
2025년 3월, 미국 D.C. 연방항소법원은 Stephen Thaler의 AI 시스템 ‘DABUS’가 생성한 이미지에 대해 저작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는 ‘창작의 주체는 인간이어야 한다’는 법적 기준을 명확히 한 사례로 평가된다.
AI 승소 사례: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이어진 NYT(뉴욕타임스)와 OpenAI 간의 소송에서는, OpenAI가 ChatGPT 모델 학습에 NYT의 콘텐츠를 사용했다는 혐의로 피소되었지만, 법원은 “생성된 텍스트가 NYT 기사와 실질적 유사성이 없다”라고 판단했다. 이 사례는 법이 단순한 모방이 아닌, 변형적 이용에 대해서는 저작권 침해로 보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법적 판례 역시 엇갈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엔 AI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들여다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을 이긴 바둑 AI인 알파고는 수많은 기보를 학습한 후, 스스로 새로운 수를 만들어냈다. 이는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기존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창조적 재구성이었다. 뛰어난 인풋을 바탕으로 더 창의적인 아웃풋을 산출해 낸다는 점에서 인간의 창작 방식과도 유사하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모방과 창작’의 경계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게 된다.

피카소는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고 말했다.


창작은 무(無)에서 생기지 않는다. 기존의 형식과 아이디어를 반복하고 흉내 내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조합이 탄생한다. 기술은 이 과정을 가속화하며, 결국 창작의 정의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

기술의 발전은 창작자에게는 위협처럼 보일 수 있지만, 수용자에게는 더 풍부하고 저렴한 콘텐츠를 빠르게 제공하는 수단이 된다. 실제로 기술은 역사적으로 창작자보다는 수용자의 편에 서 왔다. 산업혁명 당시 노동자들이 기계를 두려워해 그것을 파괴했던 것처럼, 오늘날 일부 예술가들은 AI를 경계한다. 그러나 결국 기술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창작물을 전달하는 도구가 되어 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까?

나 역시 창작자의 길을 걷고 있다. 취미인 글쓰기뿐 아니라, 내 목표인 캐릭터 모델러 역시 무(無)에서 형태를 만드는 창작의 작업이다. 그런데 최근,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AI 툴은 상상을 초월할 속도로 3D 모델링과 텍스처를 구현하고 있다. 그 퀄리티는 아직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하지만, 언젠가는 우리의 스타일과 창작 습관마저 학습하고 재현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내가 밤새 붙잡고 만든 캐릭터와 비슷한 얼굴들이 줄줄이 쏟아진다고 상상하면, 솔직히 허탈하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깨닫는다.
이 허탈함은 곧 기술의 진보가 창작의 영역에 깊이 침투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이 흐름을 완전히 거스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 문제에 대해 사회가 명확한 해답을 당장 내놓기는 어렵다. 다만, 저작권 보호를 단순히 법적 장치 강화에만 의존할 경우, 오히려 창작의 자유와 가능성이 위축될 수 있다.

『사피엔스』의 저자 하라리는 도덕을 “인간 사회를 유지시키는 믿음의 체계”라고 정의했다. 저작권 역시 그러한 도덕적 체계의 일부다. 우리는 법 이전에, 타인의 창작을 존중하는 감수성을 길러야 한다.

실제로 과거에는 콘텐츠 불법 다운로드가 흔했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정식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를 이용한다. 이는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 덕분이다. 또한 오늘날의 창작자들은 무언가를 만들 때마다 자신에게 되묻는다. “이건 혹시 어디선가 본 것을 무의식적으로 모방한 건 아닐까?” 그 질문 자체가 도덕적 진보의 증거다.


물론 모든 창작자들이 감수성을 갖추기를 바라는 건, 모든 인류가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절대 버리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감수성을 많은 이들의 무의식에 새기는 노력은 결코 멈추어선 안 된다. AI는 이런 성찰을 하지 못하지만, AI를 다루는 인간은 가능하다. 이런 글쓰기 공모전 역시 단순한 경쟁이 아니다. 우리가 창작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작은 움직임이다. 비록 미약할지라도, 그것이 누군가의 마음에 울림을 남기고, 이 글이 그 움직임 안에서 의미 있는 한 걸음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