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le of Two Philosophers
독서모임에서 한 철학자를 만났다.
‘철학자’라고 주변 사람을 칭해본 적이 없어서
조금 어색함에도 그를 철학자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가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박사과정까지 밟고 있는 데다가
집필하고 번역한 책이 많아서다.
사실 철학적인 고찰을 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 모든 이가
철학자라고 생각하지만서도,
이렇게 본격적으로
철학을 업으로 삼은 사람을
처음 마주하니 꽤나 신기했다.
어느 날, 독서모임에서
에리히 프롬의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를
읽었다. 이미 소장하고 있는 책이라서
새로 사거나 도서관을 갈 필요가 없어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어서 일단 좋았다.
에리히 프롬을 한때 광적으로 좋아하여
국내로 들어온 저서는 모두
소장하여 읽어보곤 했는데,
오랜만에 꺼내든 그의 책은
이해하기엔 꽤 어려워져 있었다.
분명 처음 읽었을 때는 술술 잘 읽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우울증 약 때문에
머리가 많이 둔해졌음을 느꼈다.
독서모임의 철학자는 말했다.
‘이 책을 선정해 줘서 고맙다’고.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의 책은
일반인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게 쓰여 있는데,
쉬운 말로 풀어져 있으면서도
프롬의 사상을 매우 잘 다룬 책이라서
본인도 새로운 세계를 만난 것 같다고.
그 얘기를 듣자
‘철학자들이 읽는 철학 책'이 궁금해졌다.
얼마나 어렵기에 한 줄도 못 읽을 거라고 하는지.
사실 내게도 철학자 친구가 있다.
그는 나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는진 몰라도,
나는 친구라고 생각한다.
그 철학자 친구는
내 인생에서 처음 본 유형의 인간이었다.
평범한 이들보다 너무 뛰어나서
주변에 충분히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을지,
외롭지는 않을지
괜한 걱정 아닌 걱정을 해본 적도 있다.
정작 그는 주변에 대화가 잘 되는
동료 철학자들이 많아서
쉴 새 없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즐거워할 수도 있는데 말이지.
이럴 것 같다 저럴 것 같다
나 혼자 넘겨짚는 행위가 사실
무례한 것 같다는 생각을 방금 했다.
독서모임의 철학자는 말했다.
주변에 ‘나쁜 사람’이 없다고.
그런데 본인은 이것이 싫다고.
하도 철학적인 얘기만 하다 보니
주변에는 철학자들만 남았고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떠났다고.
그래서 주변에 ‘나쁜 사람‘도 있었으면 한다고.
나는 제발 내 주위에 나쁜 사람이 없었으면 하는데,
역시나 철학자의 시선은 다르구나 싶었다.
철학자들은 머리에 철학 주머니가 있는 것 같다.
밥을 배불리 먹어도 디저트 배는 따로 있듯이.
내일은 ‘소유냐 존재냐’를 좀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