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차력사였다
아이고 내는 힘이 한 개도 없다, 그래놓고
녹천탕 이태리 타월만 두 손에 끼우면
때를 민다는게 등껍질까지 발갛게 벗겨놓지 않았겠어
엄마는 마법사였다
돈 만원 갖고 장 볼 만한 게 없다, 그래놓고
부엌에 들어가 칼과 냄비만 꺼냈다 하면
평생 그리운 집밥이 한 상 차려져 나왔으니
엄마는 연금술사였다
이번 달은 생활비가 정말 없다, 그래놓고
수학여행 떠나는 문간에서 의뭉한 눈망울을 꿈뻑이면
으이그 조심해서 다녀와라, 꺼내주시던 오만 원
엄마는 허풍쟁이였다
엄만 정말 다 알고 있나 봐 모르는 게 없다, 싶었는데
피를 흘리기 시작한 그때부터였을까
티브이가, 책이, 교수님들이 더 큰 세상을 알려주었지
엄마는 거짓말쟁이였다
산후조리 이번이 마지막이다 다음엔 느그 알아서 해라, 그랬으면서
딸들이 출산하고 난 뒤 결코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네
엄마는 그렇게, 종종 거짓말을 해왔어서
버릇이 된 걸까
손주 보고 싶다더니 왜 못 와
자주 가서 네 살림 봐주마 그러더니 왜 안 와
좋은 데 모셔가마 했는데 왜 아파
고왔던 청춘 어데 몰래 감춰놓고
나 모르는 새 흐르는 세월 급행선에서 유람 중인가
태산이 무너지는 허구를 꾸며내는가
주방의 불빛마저 꺼지고 주황색 미등만 홀로 밝힌 채
거실 한 켠 쌓아 놓은 빨래를 개려 쪼그려 앉는데
하필 엄마가 남겨두고 간 양말 한 짝이다
엄마, 평생 잘하던거 있잖아
그거 좀 해봐
거짓말같이
엄마가 내일 여기 있으면 좋겠다